잡글

이집트문명의 멸망

박희욱 2021. 4. 7. 10:38

내가 둘러본 나일강변의 농촌 실정은 마치 고대 이집트를 방불케 하였다.

그야말로 주거가 누옥이라서 바닥과 벽체가 그대로 흙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그렇게도 찬란했던 고대 이집트문명은 어떻게 되어버린 것일까?

토인비는 역사의 전개를 도전과 응전으로 보았다.

나일강은 사방이 사막으로 둘러쌓여져 있다. 그래서 나는 외부의 도전이 없는 이집트문명이

그대로 도태된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을 하였으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정설은 없으나 학자들은 기후의 변화로 인한 것으로 추측을 하기도 하나 나는 동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기후가 변한다 할지라도 지금 2020년 추계로 1억에 달하는 인구를 부양하는 나일강의 젖줄이

그 당시 겨우 수백만에 달했던 인구를 지탱 못했다는 것은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고대 이집트의 번성기는 신왕국 시대(B.C 1570~1070년)라고 한다.

그 이후 외부의 침입이 여러번 있었다. 나일강 상류의 누비아인,

서쪽의 리비아인, 동쪽의 히타이트,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고 그리스의 알렉산더, 그 뒤를 이어서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고대 이집트 최후의 왕조는 알렉산더의 부관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장군이 만든 왕조이다.

그는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파라오로 인정받아서 B.C 305년부터 B.C 30년에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할 때까지 이어졌고, 이로써 고대 이집트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버렸다.

클레오파트라는 여왕의 이름이 아니고 여성 파라오를 그렇게 명명한 것이었다.

 

그러면 고대 이집트문명의 멸망 원인은 무엇일까?

주제넘은 일이지만 감히 나의 생각을 펼쳐 볼까 한다.

첫째의 가능성은 신격화된 파라오의 절대적 전횡으로 백성들이 정신적으로 노예화된 것이 그 원인이 아닐까 한다.

현대의 이집인들을 보아도 그런 흔적이 엿보인다. 즉,

나태하고, 안이하고, 무책임한 노예근성이 민족성으로 고착된 것이다.

더구나 인민들은 젖줄 나일강만 붙들고 있으면 먹고 사는데는 걱정이 없으니까 안이함이 습성이 될 수 있다.

현대 이집트는 나일강 대신에 관광에 젖줄을 대고 있으므로 현실에 안주하고 발전의 욕구가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어느 관광가이드는 고대 이집트 유적을 모조리 때려 부숴버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는 것이다.

 

나의 가설이기는 하지만 또 하나의 원인을 들 수 있다. 즉, 이집트의 상형문자이다.

말할 것도 없이 문자는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문자가 없으면 기록을 할 수 없고, 기록을 할 수 없으면 정보의 축적이 되지 않고

정보의 전승도 되지 않으니 결국 문명의 발생과 발달이 있을 수 없다.

문자는 대개 그림문자(상형문자)로 출발해서 기호문자로 변하고 종래에는 표음문자로 발전한다.

 

카메라 배터리가 떨어져서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룩소르의 왕가의 계곡에서 여러 지하무덤을 들어가 보았는데 벽면 빽빽히 상형문자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이것은 그들의 삶이 단순하지만은 않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상형문자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고, 사용법에 있어서는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재능이 없으면 배우기가 무척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고대 이집트에서는 학생들을 두들겨 패면서 가르쳤다고 한다.

일단, 배우고나서 필경사가 되면 왕권에 버금가는 권위를 가졌다고 한다.

 

그 필경사들은 대부분 사제들이었다.

그런 사제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려면 상형문자를 아무나 배울 수 있게 발전시켜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집트의 상형문자는 기호문자 또는 표음문자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본다.

실재로 수메르문명의 쇄기문자는 세월이 흐러면서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

점점 어려워지니까 결국에는 역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중국의 한자는 B.C 2000년 이전에 상형문자로 출발해서 B.C 1500년경에 기호문자로 전환하기 시작해서

현대의 중국 한자는 B.C 200~AD 200년 사이에 지금의 글자모양으로 고착되어서 

표음문자로 발전할 수 없었다. 그것은 넓은 중국대륙에서 수많은 방언를 가진 지역을 

표음문자로서는 상호간의 의사전달이 되지 않기에 단어문자가 유용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의 전자컴퓨터시대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구시대에서는 표음문자가 아니면 문명의 발전에 심대한 지장을 받는다.

나는 이집트문명과 동시대인 B.C 3000년에 발생했던 황하문명의 중국이

서양문명에 무참히 짓밟힌 것은 열등한 문자 한자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실재로 중국이 청일전쟁에 패하자 당시 중국의 선각자 노신은 그 원인이 열등한 한자에 있다고 했다.

 

나의 지론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일본이 발전한 것도 10세기에 완성한 히라카나를 널리 사용한데 있다고 본다.

조선은 어떠했는가? 온 세상이 부러워하는 한글을 만들어 놓고서 옛 수메르의 필경사들처럼, 또

이집트의 사제들과 같은 옹졸한 심보로 그것을 창고에 쳐박아서 썩히고 말았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한민족이 그렇게도 증오하는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지배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도 한자가 빽빽한 책을 읽고 있을지 모른다.

아직도 한자혼용을 주장하는 무리들이 있는 것을 보면, 50여년 전에 한글전용정책을 실시한

박정희 대통령의 혜안과 결단력은 놀랍지만 이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그가 일본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다면 결코 이런 결단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한글전용정책은 표면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의 경제개발정책만큼이나 대단한 업적인지도 모른다.

 

세계최초의 표음문자 즉, 알파벳은어디서 발생한 것인가?

그것은 지금의 레바논 지역에 살았던 페니키아인에 의한 페니키아문자이다.

그들은 지중해의 해상무역활동을 하면서 표음문자가 매우 절실했을 것이다.

B.C 11세기에 그 틀이 완성된 페니키아문자의 단점은 모음이 없다는 것이다.

이 페니키아문자를 가져간 그리스는 여기에다가 모음을 넣어서

실질적으로는 세계최초의 표음문자인 알파벳을 만들었다.

 

어떻게 문명의 변방 그리스가 폭발적인 문명을 이룩할 수 있었던가?

지금 그 찬란했던 그리스문명은 서양문명을 넘어서 전세계문명의 뿌리가 된 것이다.

내가 본 그리스는 매우 건조하고 척박한 땅으로 보였는데 어찌해서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나는 세계최초의 표음문자 사용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아테네의 파르테논신전은 B.C 447년 공사가 시작되었고 건물 자체는 B.C 438년에 완성되었다

인류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파르테논신전은 동시대의 이집트 신전과 비교한다면 어른과 아이의 차이다.

두 문명의 정신문명을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두 문명의 격차는 어디서 오는가? 나는 감히 그들이 사용한 문자에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집트문명의 멸망은 열등한 상형문자로부터 탈피하지 못한데 있다고 본다.

 

 

 

 

 

 

 

 

 

 

 

 

 

 

 

 

 

 

 

 

 

 

동서냉전이 종식되면서 새로운 도전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로인해서 응전 또한 을 못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