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gland

On Leaving From England(잉글랜드를 떠나면서)

박희욱 2018. 10. 8. 16:20

잉글랜드 여행은 7월 31일 Workington을 시작으로 해서 9월 5일 런던에서 끝마침으로써 37일이 소요되었다.

본래 잉글랜드는 약 1 개월 반으로 예정하였지만 스코틀랜드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줄어들었다.

잉글랜드 여행을 길게 잡으려 했던 것은 영국인들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들여다 보고 싶어서였다. 

그것은 한국인들을 알려면 많은 다른 국가의 국민들과 비교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잉글랜드에 들어가 전에 이미 무망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1년을 영국에서 지낸다 하여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실재로는 개인이 있을 뿐이지 보통의 영국인이니 보통의 한국이니 하는 것은 없다.

나는 어떤것을 범주화해서 보려는 태도를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버릇을 그만두지 못하고 있다.



잉글랜드 여행은 론리 플래닛의 '베스트 잉글랜드'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서 계획을 짰다.

이 책에는 런던, 스톤헨지, 바스, 옥스포드&코츠월즈,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븐, 캐임브리지, 여크셔, 레이크 디스트릭트, 스노도니아 등이 소개되어 있다.


여행중에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Lake District 국립공원과 Snowdonia 국립공원을 대단한 곳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였는데 실망했다.

단지 흐리고 비가 와서 그렇게 느낀 것만은 아닐 것이다. 산새가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이미 전세계의 많은 유명산을 보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대단하다고 한 유럽인들은 멋진 산들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특히 전 국토가 평원이라서 산이라면 무슨 산이라도 좋아하는 네델란드인이라면 나와는 느낌이 다를 것이다.

아니면 겨우 일면만 본 나의 섣부른 판단일 수도 있다.


요크 데일스 국립공원을 가로질러서 하워드 성까지의 도로경관은 좋았지만 그 외의 잉글랜드 도로경관은 그다지 매력적이지느 않았다.

그것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는 것은 아니고 변화가 없은 비슷비슷한 경관이 변화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본 것만으로 말한다면 잉글랜드의 자전거여행은 별로 권하고 싶지가 않다.

잉글랜드의 국토는 얕은 구릉으로 이루어진 더넓은 평원으로 되어 있어고, 

그 평원에 끝없이 펼쳐진 풍요로운 누런 밀밭을 보면 영국은 농업만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옛날부터 여러 민족이 브리튼섬을 탐내어서 침공함으로써 혼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York는 중세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관광도시였다. 이 도시가 관광객을 많이 끌어모으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축물로 꼽히는 거대한 York Minster 대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근교에는 Howard Castle이 있는데 개인소유의 성이 그렇게도 장엄하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어떻게 하여 개인이 그런 엄청난 부를 가지고 있을 수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지금도 이 성은 개인소유로 되어 있다고 한다.


Straford-upon-Avon은 세익스피어의 탄생지라서 흥미가 이끌려 가보았는데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 들었지만 딱히 볼만한 것은 없었다.

사실 대개의 관광지가 관광객 서로를 보려고 몰리는 곳이 아니겠는다.

이번 기회로 세익스피어의 대표작들을 읽어볼까 하는데 이나이에 새삼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을런지 모르겠다.

Cotswolds는 많은 옛마을들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었다. 이런 곳은 나처럼 홀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동행자들과 함깨 먹고 마시면서 천천히 여유롭게 산책하듯이 구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수많은 마을들이 있는데 내가 본 명소 중에서는 Bourton-on-the-Water가 최고였고, 그 다음이 Lower Slaughter였다.

Bath도 많은 사람들이 권유했던 도시인 만큼 관광객이 대단히 많았지만 Roman Bath 외에는 딱히 볼만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Bristol은 생각지도 않았던 곳이었는데 여행객들어 추천으로 들렀는데 Bath보다는 흥미로운 곳이었다.

 

내가 본 잉글랜드 최고의 명소는 Seven Sister였다. 거기서 200장 이상의 사진을 찍었으니 내가 얼마나 매료되었는지 알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는 런던 다음으로 꼭 들러봐야 할 곳인데, 갈 때는 반드시 좋은 날씨를 선택해야 한다.



나는 영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과히 좋은 편은 아니었다. 세계를 여행하다보면 대국인데도 불구하고 영국인들과 마주치는  경우은 잘 없다.

마주쳤을 때도 별로 친밀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영국인들은 한 방에 1주일을 함께 지내도 누가 서로를 소개하지 않으면 말도 걸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인들은 너무 격식을 차려서 까다롭고,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지례짐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을 통하여 그런 이미지는 많이 불식이 되었다.

오랜동안 런던에서 살다가 지금은 독일 함부르크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는 어느 이란출신의 요리사는

영국인들에게는 상당히 호감을 가지고 있는 반면, 독일인들에게는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나와는 반대였다.



나는 영국이 섬나라로서 유럽에서는 후진적인 지역이었는데 산엽혁명으로 뒤늦게 부상한 국가일 것이라고 여겼는데,

오크니 제도에서 본 BC 3,000년경의 직립거석 유적과. BC 1,500년 경의 스톤헨지를 보면 이 섬의 문명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그리고 비록 로마문명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AD 1세기~3세기의 Roman Bath를 보아도 그렇다.

그런 오랜 문명의 전통없이 AD 1215년의 마그나 카르타(권리장전)와 같은 민주주의 초석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우연은 없다. 산업혁명도 바탕없이 그냥 이루어진 것이 아닐 것이다. 그 바탕에는 경제적인 부가 뒷바침 되어야 한다.

영어가 세계어가 된 것도 영국문명의 우수성의 증거가 아닐까 한다.


영국은 분명히 인류문명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근대문명의 근원지였고,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몇몇 한국의 젊은이들이 영국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가 있었다.

영국은 일찌기 온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도처에 식민지를 건설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영국은 해가가지지 않는 나라로 일컬어졌다. 

세계 도처의 영국령 중에는 반드시 해가 떠 있는 곳이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진 것이다.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그런 식민지 정책도 문명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일본과 조선의 문명의 수준은 엄청난 낙차를 이루고 있었는데 이것을 아무도 인정하지도 않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낙차가 어마어마한데 폭포가 조용히 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 당시 영국은 진화론을 믿고 있었고, 우수한 문명이 열등한 문명을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로 보고, 그것을 백인의 책무(White Burden)로 보았다.

역사의 흐름을 선과 악으로 분리해서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과연 역사만 그러한가? 나는 선악과를 따먹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신의 뒷모습은 악마이다.


상대방을 알게 되면 좋아지는 것일까?

나는 일본을 알게 되어서 좋아졌고, 이번에는 영국을 조금 알게 되어서 역시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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