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944

무화과

인간은 사실상 유일한 호기심의 동물이다.크게는 우주까지, 작게는 원자의 내부 쿼크까지 호기심을 가지고 파고든다.모든 아름다움의 근원도 신비감이다. 하지만세상만사에 관하여 의문을 가지거나 질문은 하지 마라.인간이 낙원에서 따먹은 무화과에는 그런 '의문'과 '질문'이 들어 있었다.감히 신에게 그런 의문과 질문을 들이대지 마라.낙원으로 돌아가려면!

천국과 유아독존

예수는 천국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한다고 했다. 즉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인도에서는 다시 태어난 사람을 드위즈(dwij)라 부른다.어떻게 하면 드위즈가 될 수 있을까?일단, 죽어야 하는가? 그렇다! 그런데 죽는다는 것은 모든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이 세상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는 것이다.그렇다고 수도원에 들어가거나 머리 깎고 산속으로 도피할 필요는 없다.관계를 끊는다는 것은 홀로가 되는 것이다, 즉 我獨이 되는 것이다.我獨은 존엄하다. 고로 천국에서 거닐 수 있는 자격을 가진다.天上天下唯我獨尊이다.

天上天下唯我獨尊

부처는 태어나자 마자 일곱 걸음을 걸은 뒤에천상천하유아독존( 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일갈했다.보통, '이 세상에서 나만이 홀로 존귀하다'라고 번역되어진다. 하지만나는 이렇게 번역하고 싶다. 즉, '이 세상에서 오직 홀로인 내가 존엄하다.'다시 말하면, '내가 홀로가 될 때만이 존엄하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본원적으로 관계에서 오는 것이다.그 관계라는 것은 개인간이나 사회나 국가나 세상과의 관계 일 수도 있다.그러므로, 광야에서 홀로일 때는 행복도 없고 불행도 없다.행복을 원하면 관계를 맺어라. 그러나 불행도 동행하게 될 것이다.오직 홀로가 될 때만이 천국에서 신과 함께할 수 있을 것이다.천국은 관계가 없는, 홀로 존엄한 곳이다, 그 외에 다른 곳이 아니다.

건강과 무아

서양의학에서는 신체의 건강은 이렇게 정의한다.'질병이 없는 상태가 건강이다.'  한편인도 아유르베다에서는 이렇게 정의한다.'몸을 느끼지 않는 상태가 건강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건강은 어떻게 정의되어야 하는가. 정신과의사라면'불행하지 않는 상태가 정신적 건강이다.'라고 정의할지 모르겠으나, 나는 '나(我)를 느끼지 않는 상태가 정신적으로 건강한 상태다.'즉, 無我가 건강한 상태라고 정의하고 싶다. 무아는 나(我)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나(我) 없는 타인없고, 타인없는 나(我)도 없다.自와 他는 함께 간다. 서로 독립적으로 존립할 수 없다.無我 라는 것은 自와 他의 경계가 사라진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누구나 왕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거주할 수 있는 충분한 크기의안온한 왕국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아무도자신의 왕국을 찾아주지 않으면 괜히 불안해서 이웃 왕국을 기웃거린다.자신의 왕궁보다 더 크고 좋은 왕궁을 가진 왕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이웃나라의 왕이 받는 박수소리가 요란하면 무엇인지 궁금해서 기웃거린다.이런저런 이유로 자신의 왕궁은 늘 비워져 있으며, 그럴수록자신의 왕궁은 점점 그늘이 지고 먼지가 쌓이기 시작한다. 결국은돌보지 않는 자신의 왕국은 황폐해지고 마는 것이다. 결국이웃나라를 돌아다니는 거지신세가 되고.자신이 왕이라는 사실도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죽음을 맞이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알라고 한 것은스스로가 왕국을 가진 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말이다.

철학과 사념

인간은 사념에 의존하는 동물이고,진작, 동물은 직관에 의존한다.그 사념으로 인하여 인간만이 낙원에서 추방당하였다.철학과 지식은 그런 사념에 봉사함으로서 개똥냄새가 나는 것이다.그 개똥이 바로 낙원의 금단의 열매였다.인간의  문명이란 것은 그런 사념으로 인하여 덧붙여진 의족이다.무념으로 가라, 그러면튼튼한 두 다리를 회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