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XNHhkyGZ7Tk?si=gXeT02hM2B8g0155
이성!
인간들은 이성을 따먹고 낙원에서 추방당하였다.
이성은 여타 동물을 제압하기 위해서 갈아놓은 도검이었다.
그 도금이 자신들의 목을 겨냥하고 있다.
이성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질문하는 것은 신에 대한 항명이다.
안다는 것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리 신의 소관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이성(인식)을 벗어던져야 한다.
특히 좌파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는 당달봉사다.
아무 소용이 없는 사념으로써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절대로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지 마라, 속는다.
오로지 경험에 의존하라.
이성에 의존하는 철학자들은 예외없이 개똥철학자들이다.
이성은 언어에 의존한다.
언어는 사물의 실체가 아니라 포장지에 불과하다.
이성으로써 세상을 알려고 하는 것은 포장지에 현미경을 갖다대는 행위다.
이성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라.
직관이 안되면 이성도 아무 소용이 없다.
이성은 기껏해야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
이성은 실존을 그려낼 수 없다.
이성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질문하는 것은 신에 대한 항명이다.
안다는 것은 인간의 소관이 아니리 신의 소관이다.
이성은 논리적이다.
감히 논리로써 세상을 기술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밤하늘의 별이 경이로운 것은 존재하기는 하지만 형태가 없기 때문이다.
이성은 그런 별의 형태를 그려내는 행위다.
철학이 하는 짓이 바로 범주화이다.
신이 하나님인 것은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다는 의미다.
범주화하는 것은 신을 자르겠다는 짓이다.
궁극적으로 말하면, 실체와 현상도 하나의 범주화이다.
범주화가 이성의 실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생각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백날 생각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낭비다. 강물을 따라 그냥 천방지고 디방지면서 흘러가라.
'그냥'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시 하는 사람이 문제다.
인간이 80억명이라면 세상은 80억개다.
80억개를 하나의 논리로 묶는다는 것은 바보짓이다.
철학이란 그런 어리석은 짓이다.
유신론은 가짜다.
무신론도 가짜다.
論이 가짜이기 때문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인과법칙은 허구다.
결과가 원인을 만들어낸다.
과인법칙이 맞다.
자유란 지 하고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모든 책임을 지는 것이다.
자유와 책임도 둘이 아닌 하나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자유는 무념이다.
이성을 포기하고 아무 생각없이 자신의 경험에 따라 사는 것이다.
이성의 포로가 된 철학자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라.
자유가 이성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라고? 칸트가 점점 어리석어지네!
그래서 칸트는 사방 100km를 벗어나지 못하고,
시간에 자신을 얽어매고 살았구나!
기업주는 노동자를 이용하고, 노동자는 기업주를 이용한다.
보너스? 그것도 노동자를 이용하기 위한 것이다.
초과근무? 그것도 짤리지 않기 위한 것이거나 오버페이를 받기 위한 것이다.
목적과 수단, 이것도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하나이다.
不二! 분별심을 버려라.
그것은 인간의 이성이 하는 짓거리다.
시간과 공간과 마찬가지로 보편도 없고, 일반도 없다. 수학적 논리에만 있다.
인간들은 보편과 일반이라는 이름을 내새워서 서로 싸운다.
무념으로 가라.
도덕이란 유용한 지팡이 일 뿐이다. 필요없으면 내버려도 된다.
도덕이란 경험의 보편적인 법칙이다. 그런데 보편이란 없다.
도덕이란 어린아이의 보행기다.
신에게는 도덕 따위는 필요없다.
인간이 존엄하다? 미신이다.
신조차 존엄하지 못하다.
겸손? 모두들 겸손해라.
그러나 나는 겸손을 모른다.
겸손은 기껏해야 타인의 질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보호막이다.
나는 보호할 나가 없는 사람이다.
칸트는 13분 10초부터 나와 빗나가네!
자신이 싫어하는 정언명령이라는 개념어를 제작하네.
옳고 그름이 바로 금단의 열매다, 인간의 이성이 생산한 물건이다.
필연이냐 우연이냐 하는 것은 관측자의 문제다.
당연한 얘기다. 시간과 공간도 인간의 인식이 만들어낸 허상이다.
그 허상을 이용하는 것이야 각자 알아서 할 일이다.
책임도 벗어날 수 있다.
책임을 져버리면 책임은 사라진다.
칸트 이양반 잘 나가다가 왜 이러나!
존엄이니 인권이니 이런거 없다.
이런거 가지고 지랄떠는 좌빨들 보고도 모르겠냐!
존엄이니 인권이니 하는 것을 누가 부여한 적이 없다.
미신이라니까!
인권이 있다면 개권도 있다.
원한다면 스스로 만들어 가라.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을 출판한 57세부터 맛이 가기 시작했다.
이성의 한계가 칸트의 한계다.
파르테논의 여사제는 아무것도 모르는 소크리테스가 현자라고 했다.
알려고 하지마라, 어리석은 철학자들에게나 맡겨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