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등산

지리산종주(꼬릿말)

박희욱 2010. 5. 8. 11:09

꼬릿말

 

  노고단에서 세석평전까지는 양산 통도사의 영취산 능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고, 대원사 코스는 정말 험난하고 힘든 코스였다. 사람들이 한결 같이 이 코스를 지겹다고 하길래 밋밋한 내리막이 끝없이 길기 때문에 그런가보다고 여겼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치악산, 월출산, 계룡산 등지에서 겪은 험난한 코스도 있었지만 내 기억으로는 대원사코스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코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이 코스에서 울었다고 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이 코스는 나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대원사 계곡은 숨겨놓은 보석과 같은 멋진 계곡이었다. 폭우에 의한 인명사고와 환경파괴를 우려하여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신발과 수영복만 착용하고 아래쪽에서 위쪽까지 물의 흐름을 따라서 걷고 수영을 하면서 올라가고 싶었다. 보석을 금고에 넣어 놓은 꼴이다. 나는 개인의 안전과 보호보다는 개인의 자유를 더 우선시한다. 

 

  철쭉은 만개는 아니더라도 꽃봉우리가  터질 찰라가 아니겠느냐는 예상은 전혀 아니올씨다였다. 아직 꽃망울이 생기지도 않았고, 5월말이나 6월초가 되어야 만개한다고 했다. 6월 초에 철쭉을 보러 2박3일의 지리산 산행을 다시 해야겠다.

 

  고산에서의 아침노을과 저녁의 석양 그리고, 운무의 현란한 춤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다. 그러한 것이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므로 다음 기회로 미뤄야겠다. 목적지 대피소에 늦지않게 오후 5시경에 도착하였지만, 혼자서 버너 1개로써 저녁밥과 찌게 그리고, 다음날 점심밥까지 3번을 지어서 식사를 하고, 간단하지만 설거지를 하고,  몸을 닦는데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가져간 MP3로 한가로이 음악을 들어볼 시간이 없었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밤을 지내고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강풍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천왕봉 일출은 이미 2번이나 보았기 때문에 굳이 비를 맞으면서 정상을 올라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부산고팀, 대안학교팀, 미스 정, 서울에서 새벽 3시 40분에 백무동에 도착하여 3시간 40분만에 장터목에 도착한 나와 동년배로 보이는 부부 등, 모두 비를 무릅쓰고 천왕봉에 오른다는 거였다. 그들은 나와는 달리 먼곳에서 왔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나는 마음으로 몇번이나 갈팡질팡한 끝에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여서 중산리로 곧바로 하산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대피소를 나섰다. 그찰나 곽선생팀 여성 4명도 정상에 올라서 거기서 대원사쪽으로나 법계사쪽으로 기상상태를 보아서 하산을 결정한다는거였다.

 

  50대 여자들도  하는데 내가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여 용기를 되찾고 정상등정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비를 싫어할 뿐만 아니라, 대학때 양산의 천성산에서 비를 맞고서 엄청 떨면서 고난을 격었던 기억이 있어서 산에서 비맞는 것을 무척 두려워한다. 천왕봉을 오르고 대원사코스로 내려옴으로써 지리산종주를 깔끔이 끝낼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 덕분이다.

 

  역시 세상만사가 세옹지마라서 비를 맞으며 강풍과 함께 운무에 휩싸여 등정을 하는 것도 또하나의 등산백미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등산중 비를 맞는 것에 대한 공포도 약간 씻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고, 이것과 함께 치밭목대피소에서 유평리까지의 험난한 코스가 아니었다면 이번 지리산종주는 그저 평범한 등산으로 끝났을 것이다.

 

  대원사에서 RV를 히치하여 주차장까지 가고, 거기서 버스로  진주에 도착하고 보니 피곤하여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부산 사상행 버스가 진주를 벗어나자 나는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1시간 25분만에 낙동대교에 이르렀고, 사상 서부터미널에서 버스에 내리려하니 너무 피곤하여 울고싶은 지경이었다. 몸이 이렇게 피곤했던 기억은 군대생활때를 제외하면 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좋은 경험이 되었다.

  지리산종주 만세!

 

P.S

Hill Tex: 이번에 처음으로 힐텍스 바지를 입어봤다.

               해외원정등반을 다니는 친구가 고어텍스보다도  기능이 더 우수하다고 하였던 것이다.

               고어텍스의 명성이 워낙 대단한지라 그의 말에 대하여 긴가민가하였다.

               비싼 고어텍스를 입어본 적이 없어서 직접비교는 할 수는 없으나

               아주 만족하였고, 그래서 적극 권하고싶다.

               가격도 겨우 76,000원!

               거품을 싫어하는 척하면서 거품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이 믿어주기나 할까.

               한국인들은  전세계의 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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