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호박덩이 같은 삶

박희욱 2012. 12. 3. 07:27

며칠전에 나는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트를 탔다가 고등학교 10년 선배님과 마주쳤다.

선배님은 씁슬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시면서 세월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별말씀 다하신다는 듯한 표정으로, 세상에 어디, 미련을 가질 만한 것이 있느냐고 했더니

미련을 가질 만한 것이 많지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별 생각없이, 일찍 가셔서 주무시는 것이 훨씬 낫지 않으냐고 반문하였더니,

선배님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시더니 왈,

"이상한 말씀을 다 하시네!"라고  하는 거였다.

나는 엘리베트를 내려서 청사포 가는 길에 자전거 페달을 밟으면서 생각해 보니

심각히 말씀 하시는 선배님에게 내가 경망스런 실수를 했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제는 인터넷에 광안대교를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승객이 갑자기 차를 세워서 다리위에서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기사가 났다.

나는 조금 장난스레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멋진 마무리! 축하합니다! 평안히 주무시기를!"

욕을 먹지 않을까 조금 우려한대로 추천은 다섯인데 비추는 아홉이었다.

 

간밤에 나의 집에 자전거 타는 친구들 몇몇이 방문하였다.

잠시 내가 볼일에 열중하다가 뒤돌아 보니 그들은 맥주 한 병을 가져와서 종이 컵에 나눠 마시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손님대접하는 것을 깜박했구나 싶어서 급히 가까운 시장통에 나가서 닭백숙을 사서 들고

맥주를 사러 다른 곳으로 갔더니 늘 있어왔던 가게가 사라지고 폐허로 변해 있었다.

그래서 되돌아오면서 목이 말라서 닭백숙 국물을 좀 마시려 하는데 닭고기는 온데 간데 없고 국물만 바닥을 보이고 있는게 아닌가.

나는 가서 항의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그 시장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께어 보니 그것은 꿈이었다.

나는 밤중에 자리에 일어나 앉아서 생각했다.

옛부터 인생은 일장춘몽이라고 했지 않았던가.

나비의 꿈을 꾼 장자가 말했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가, 아니면, 지금 나비가 장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진정, 탄생과 죽음 사이에 일어나는 우리의 삶이란 이런 허망한 꿈과 다를 바가 도대체 무었인가.

 

이제, 나는 산꼭데기 위에 올라가서

호박덩이 같은 내 삶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고 굴러버려야겠다.

그것이 굴러가다가 돌팍에 부딫혀서 께어지든,

그것이 굴러가다가 계곡에 쳐박히든,

그것이 굴러가다가 강물에 빠지든,

그런 것은 내가 알바가 아니다.

나는 내 삶이 이리 저리 튕기면서 산 아래로 굴러가는 모습을

이제는 지켜보고만 있으리라, 언제까지나!

 

 

나는 산꼭대기에서 굴러떨어지는 호박덩이를

지켜보는 자이다

아니다, 지켜봄이다

아니다, 그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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