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자전거여행

16년 04월 봄꽃과 함께한 섬진강종주길4

박희욱 2016. 4. 7. 04:23






















누가 설계하고 시공했는지 존경스럽다.










구례의 섬진대교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멋져 보였던 벚꽃의 만개도 자꾸 보니 좀 식상해진다.















산사태로 인하여 높은 고개를 넘어서 둘러와야 했다.





한 순간 피었다가 떨어지는 꽃잎같은 인생

무엇이 아쉽고 무슨 미련이 남겠는가!

잘 가라, 꽃잎아!





화개장터의 남도대교에서 하류측으로 본 모습

화개장터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30분이었는데 관광객이 엄청 많았고

곳곳에서 교통순경이 안내를 하고 있어서 캠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경찰관에게 싼 숙소를 찾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노우!

 할수 없이 모텔을 만날 수 있을 때까지 더 주행하기로 했다.




4월 6일(수) 흐림

어제 오후 6시 10분 도착

저녁 8시 10분 취침

오늘 아침 5시 50분 기상, 9시 10분 출발



이런 멋진 호텔이 공짜라니! ㅋ

개울에서 세수와 세족을 하고 몸은 물수건으로 닦았다.





하수일수록 상대방 상수의 묘수가 꼼수로 보인다.

그리고 억울해 한다.















소나무숲 뒷쪽에 매각마을이 있었다.











스님 두 분이 여기서 상주를 하고 있었다.





완전 한 살림이다.

전기는 공용화장실에서 전선으로 끌어다 사용했다, 공짜로.

아침공양을 같이 하자고 권하였다.

쑥과 토란으로 만든 국에 밥을 말아서 먹었는데 자연산 갓김치기 맛있었다.

잘 먹는 나를 보고서 한 통을 주셨다.

주거비용이 전혀 들지 않고, 식비는 쌀값만 있으면 되지싶다.


두 분 중 한 분은 박정희 대통령 예찬자였는데 영국의 어느 석학의 말을 빌려서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내가 이전에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주장인데, 생각해보니 옳은 말은 아닐지라도 일리는 분명 있어 보였다.

박정희 정권시절 핍박을 받은 사람들은 반공법을 위반한 체제전복을 꿈꾸는 자들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때는 민주투사들이 절대적 정의로 보였는데, 민주화 이후 그들의 행태를 보면 아니올시다이다.

게다가 그들의 뒤에는 북한간첩들의 은밀한 교사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니까 그들의 행태가 스스로 진실을 보여준 것이다.

그때는 콧웃슴치면서 열을 받게 했던 소위 말하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에 이해가 간다.

비록 '한국적 민주주의'가 민주주의는 아닐지라도 적화통일이라는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예방약으로 필요한 악이었다.


미국의 철군으로 인한 월남의 패망을 보면서,

그리고 주한미군 철군의 위협을 받은 박정희는 자라보고 놀란 가슴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조금 일찍 김종필에게 정권을 물려주지 않았던 것은 박정희의 최대실책이지 않았을까.

그렇게도 억압적인 시대에 위안이 되었던 김영삼, 김대중에 대한 애정은 점차 식어져 간다.


이래 저래 생각해 보면 지나간 역사를 판단한다는 것은 무리한 짓일 것 같다.

내가 그렇게도 증오했고, 일찌기 합천 산도적놈이라고 멸시했던 전두환이조차도 어쩌면 필요했던 산도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위 말하는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복사꽃과 배꽃

나는 매화보다는 하얀 배꽃이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