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사우디아라비아

박희욱 2016. 11. 9. 09:51

오늘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날이군요.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멋진 날씨겠지만 직업에 따라서는 불만인 사람도 있겠지요.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무척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이왕 고생할 바에야 돈이나 벌어보자고 중동근무를 자청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습니다.

나는 그 곳에서 얼마나 괴로움이 심했던지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릴 것 같은 두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실재로 사우디에서는 머리가 그렇게 되어버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곳의 근무는 아침 5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 건설현장에 도착하고 오후 10시에 퇴근하였고,

숙소에 돌아와서 저녁을 먹고 샤워를 끝내고 잠자리에 드러누우면 그 시각이 오후 11시 30분이었습니다.

대신에 점심시간 겸 오침시간이 2시간 30분이 있었지요.

그 당시에는 전 세계인들인 일본인들을 경제동물이라고 손가락질 하던 때였는데,

내가 본 한국인들은 경제벌레더군요.

젊은놈이 그까짓 근무조건으로 괴로워한 것이 아니라 나의 앞날이 암담했기 때문이었지요.

그 시각에 드러누워도 잠은 오지 않고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 생각은 나에게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은 조금 늦잠을 자서 오전 5시 30분에 일어나서 아침식사도 하지 못한 채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나도 모르게 설움이 북받혀 올랐고, 나는 옆좌석의 운전사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소리내어 울고  말았습니다.

내가 굶어 죽을까 봐서 사우디에 돈벌러 왔던 것인가 하는 자괴감도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렇저럭 1년간의 근무시일을 떼우고 귀국길의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서 결심을 했습니다,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고.

그리고 비록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 먹구름을 뚫고서 햇빛 찬란히 빛나는 구름 위에 서 있겠노라고.


나는 비행기를 타면 창가에 앉아서 푸른 하늘과 새하얗게 빚나는 구름들이 펼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것을 즐겨합니다만,

사람들은 불편해서인지 창가에 앉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구름위에서 발 아래로 쳐다보면 구름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것이 되어버리지요.

사람들은 하늘이 언제나 청명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인류문명 1만년이 흘러갔지만, 그 1만년이 또 한 번 다가와도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사우디에서 1년을 근무하는동안 모든 희망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알고 보니 희망이란 욕망을 보기 좋게 포장한 것에 다름 아니더군요.

나는 욕망이 당의정을 입으면 희망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란 것은 지금 이순간의 내 삶을 갉아먹는 벌레였습니다.


결국 나는 비행기 속에서 또 하나의 결심을 했지요.

결코 내일이 오늘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기대는 버리기로.

지금 나에게는 행복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은 혐오스런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을 즐겨하지만, 그럴 때면 나는 속으로 그냥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말들은 하나의 진통제이거나 진정제에 불과합니다.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좌파들  (0) 2016.11.11
민중  (0) 2016.11.10
한국인  (0) 2016.11.08
노블레스 오블리제  (0) 2016.11.02
11월의 광안리  (0) 201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