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blesse Oblige>
지금 대한민국에는 아무도 책임을 지려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의무조차도 법을 선용(?)하여 기피하려 든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한민국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주창하고 요구하는 사람은 많다.
그것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은 고귀하게 행동해야 한다.
대한민국에는 고귀하게 태어난 사람도 없고 이제는 고귀하게 행동하는 사람도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들먹이는 것은 상대적으로 무능력한, 소위 말하는 서민들이 잘나가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 전락했을 따름이다.
나는 순진한 이상주의자였다.
그래서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순리적으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었다.
학교다닐 때 배운, 민주주의란 중우정치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매우 의아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로 판명되었다.
알고보면 민주주의란 허황된 말이다.
모든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지만, 어떻게 국민이 주인이 될 수 있는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투표권이 유일한 권리이다.
그 권리가 대단하다 하여도 그것으로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자신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자처한다.
투표를 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자신의 의사표시는 자유이다.
하지만 폭력적인 수단을 통해서 위임한 권력을 간섭하려 든다면 그것은 월권행위이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다.
우리나라에는 노블레스가 없다. 그러므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수많은 동상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에는 그런 동상을 사실상 볼 수 없다.
동상 뿐만 아니라 공공건물이나 도로이름이 등, 수많은 시설물의 명칭이 사람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관행이 오블리제를 양성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김대중 도서관이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한국인들은 타인을 칭찬하는 것에 매우 인색하다.
그러다가는 자신으 쭈그려 드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타인이 잘 되는 것을 곱게 보지 않고 사시의 눈으로 본다.
내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타인의 눈동자 속에는 머리털까지도 찾아낸다.
타인을 비판할 때면 신이 난다.
우리말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런 류의 속담은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어느 재벌이 3천억을 재단에 투척해도 시큰둥해 한다, 그 정도로서는 적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 대학에 가면 대부분의 건물 이름이 기부자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부자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부를 해도 개인의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
터어키에 가면 국부 아타튀르크의 수많은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런 동상들을 보면서 나도 감동 받았던 적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나는 아직도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동상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는 민중정치 또는 대중정치가 되었고, 그것은 중우정치이다.
왜? 정치인들이 아무리 미친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것은 정치인들이 24시간 유권자들의 눈치를 살핀 결과다.
이런 상태에서는 국민을 이끌고 갈 정치가가 나타날 수 없는 풍토이다.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는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노블레스가 탄생할 수 없다.
국민소득 80달러에서 3만달러로 높이는 동안에 과연 노블레스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이 정말로 없었단 말인가?
전세계에서 지금의 대한민국만큼 민주적인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단, 반세기만에.
(나는 그것이 민주투사들의 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중들이 하였다고? 그들은 임금 받고 일만 했을 뿐이다.
우리 속담에 꿩잡는 것이 매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꿩은 잡았는데 매가 없다는 것이다.
까마귀가 잡았다는 말인가?
예전에는 고위공무원이면 그나마 조금의 오블리제 의식이 있었다.
비록 부정을 해서 치부하는 자들이 많았다 해도 전부를 사시의 눈으로 보면 곤란하다.
거듭 말하지만, 이제는 오블리제 의식을 가진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은 발을 붙일 수가 없다.
이런 비유를 하면 어떨까.
외국의 오블리제를 수입한다면, 과연 한국의 정치판 선거에서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보건데는 우수한 국민을 수입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