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mir Highway

Bishkek

박희욱 2017. 9. 7. 16:46

8월 18일(금)~8월 25일(금)

여기 Sakura Guesthouse에서 일곱 밤을 지냈다. 1일 숙박료는 1,500 소모니

한국인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 투숙했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조기귀국을 하고자 익스피디어에 문의를 했더니 가능한 가장 빠른 날자는 25일이라고 했다.

변경 챠지를 400 싱가포르 달러를 요구했고, 도리가 없어서 승낙을 했더니 170 싱가포르 달러를 더 올려서 요구했다. 

그렇다면 변경하지 않겠다고 했더니 처음 그대로 400 싱가포르 달러에 변경을 해주었는데 매우 불쾌했다.

저가 여행사는 이런 부가적인 수입으로 회사운영의 수지를 맞추는 것 같다.

두번 다시 익스피디어에서 항공권을 구입하지 않겠다.


몸살로 인하여 면역력이 떨어지자 감기가 들었다.

처음 한동안은 마른 기침만 나오다가 점차 심해졌다. 

열이나거나, 오한이 나거나, 콧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가져간 감기약을 복용했으나 별로 효력이 없었다.

어느 교민이 권하는 현지의 감기약을 복용하고 나니 효력이 발생하기는 했지만 그 감기는 귀국하고서도 한동안 기침이 나왔다.


귀국일 25일까지는 아직 시일이 많이 남아서 한 탱그리봉 헬리곱터 투어($500)나 해볼까 싶어서 Ak-say 여행사를 찾아갔더니 22일부터 있다고 한다.

3일은 소요될 터이니 시일이 부족해서 포기하고 말았다.

카라콜에 3박4일간 다녀올까 했는데 가봤자 내가 만족할 만한 경관은 못될 것 같았다.

그곳의 알틴아라샨 하이킹에 관심이 있었지만 교민의 말로는 여름이라 눈이 없기 때문에 경치가 그렇게 좋지는 못할 것이라 했다.

가고자 한 날 저녁에는 기침이 심하여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

비쉬케크 남쪽으로 40km 거리에 있는 알라아르차 국립공원도 파미르고원을 본 나에게는 더 이상 흥미를 끌지 못했다.

결국 귀국하는 날까지 몸조심 하면서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내기로 했다.





이 여인은 조금 먼저 귀국한 남편과 함께 1년간의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오늘 자전거를 포장하고 있었다.

그 자전거여행이 즐거웠든지 힘들었든지 간에 오늘이 얼마나 기쁠까!

이 여인의 자전거를 보라, 앞샥이 없는 철티비다.





하루종일 게스트하우스에서 누워 있기도 그렇고 해서 밖으로 나와 봤지만 

비쉬케크에는 관심이 없었다.










키르기스스탄인들은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도부터 러시아어가 다시 공용어로 되었다 한다.

러시아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폐기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그러니 보통 사람들은 영어까지 배울 여력이 없을 것이고,

그만큼 세계화에 불리할 수 밖에 없겠다.











한국식당 호반

h72006960@mail.ru


한국인 식당을 찾아간 것은 한국음식보다는 대화할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찾아갔으나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00소모니를 주고 된장찌게를 먹었는데 텁텁하고 맛이 없었다.










건축 중인 모스크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숙소 가까이에 중국식당이 있어서 들어갔다.

545소모니






솔향아, 할아버지다.

이쁜 솔향이보러 곧 갈께!

오늘 처음으로 면도를 했다.





오쉬 시장





카레야스키를 만날 수 있을까 했지만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2~3번 물어서 찾았더니 요행히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반가웠으나 정작 그들은 오히려 외면하는 것 같았고 관심은 오직 내게 반찬거리를 파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았다.

한국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금 실망했지만 그것을 표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손올력 씨의 말 그대로였다.

말아 놓은 모밀 비빔국수를 200소모니치를 샀는데 세끼를 먹을 수 있었다.





이들은 나에게 눈길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카레야스키를 중앙아시아로 이주시킨 것은

러시아가 연해주나 사할린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일본에 동조하는 것을 염려해서 이주시켰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반대로 일본이 러시아와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조선인들의 항일투쟁을 염려해서 일본이 러시아에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후자의 말은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러시아 정부는 한인들의 일부를 일제 스파이로 보고 감시했던 사실을 보면 그렇다.





반면에 현지인의 태도는 180도 달랐다.

나에게 사케도 따라서 주고, 토마토, 그리고 앞에 보이는 튀김도 한봉지 건네 주었다.

일반인들은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





보통의 경우는 이 사람과 같이 이방인에 대한 조금의 호기심은 있는 법이다.





오쉬시장 입구





지나가는 현지인















키르기스스탄인은 완전한 몽골인이었고,

과거 소련연방 시절에 이주한 러시아인들이 제법 많이 보였다.










국립미술관






기대하지 않았지만 소장품은 무척 빈약했다.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서 미술품과 공예품을 특별전시하고 있었는데

그 수준은 나라꼴과 다를 수 없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그들은 독일이 낳은 두 바보들이다.

나는 옆에 있는 독일인에게 "Two stupid!"라고 말을 던졌다.


인간들이 자랑하는 지성도 실재를 보는 눈을 상실하면 한갖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몽상으로 인하여 인류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그 몽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대한민국에는 건재하고 있다.

물론 이제는 그 몽상을 자신들의 권력쟁취에 이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Vladimir Illch Lenin

민중들은 이런 자들을 원한다.

팔을 높이 치켜들고서 눈먼 그들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자들이다.

레닌은 스탈린을 낳은 것만으로도 목에 밧줄이 걸려야 한다.

그의 목청은 얼마나 크고 당당했을까!


민중의 힘을 빌려서 그가 살해한 러시아제국 마지막 황제의 영정이 이제는

 헬싱키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는 페리의 사무장실에 모셔져 있었다.






주진수 씨(+996558405288) 

참으로 이상타!

부산에서 평생을 함께 살아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먼 타국에서 끼룩이를 만난 것이다.

오래전에 자전거 동호회에서 함께 탔었던 분인데, 호반에 두번째 왔을 때 만났다.

한국의 경기침체로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들어서 사업 형편이 그렇게 좋지 못하다고 한다.


나는 우동을 시켰는데 입맛이 없어서 한 그릇을 비우지 못했다

우동 한 그릇을 비우지 못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나는 주진수 씨에게 카레야스키 이야기를 꺼냈다.

카레야스키들은 주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의 정체성을 러시아인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카레야스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카레야스키들은 여기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모른체 한다는 것이다.


나는 중국의 조선족처럼 사람은 작은 우산(한국)보다는 큰 우산(러시아) 속으로 들어가려 하나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국하는 비쉬케크 마나스공항에서 만난, 어느 키르기스스탄을 잘 알고 있는 분의 말은 이랬다.

"카레야스키 사람들은 억척스럽게 살아왔고 비교적 잘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국인을 보면 99%가 사기꾼이고, 나머지 1%는 멍청한 사람으로 봅니다."


생각해보면 알만 하다.

조진수 씨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여기까지 돈벌러 오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여기에 놀러 오는 관광객 또한 아무도 자신을 모르는 객지에서는 스스로 가진 것이 많다고 객기를 부릴 것이다.

안그래도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허풍이 심한 한국인이 오죽하겠는가.

한두번은 그려느니 하겠지만 거듭되는 허풍을 못 알아차릴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흐린물 속에서는 물이 흐린지 어떤지를 잘 모르고 그 밖으로 나와 봐야 알 수 있다.

그렇듯이 한국인의 심성을 알려면 해외에 나와 봐야 안다.




사쿠라게스트하우스 정원

이곳은 배낭여행자, 자전거 여행자, 오트바이 여행자들의 터미널격이다.





네델란드 자전거여행자

나보다 3살 연하인데 형님으로 보이지 않는가? ㅋ

내년에 한국에 자전거여행을 오겠다고 해서 사전에 이메일로 연락하라고 하였다.

페달을 분리하는데 내 렌치가 작아서 당황하였는데 이 사람이 그 알맞는 렌치를 빌려주었다.






비쉬케크 마나스 공항

항공편의 출발 시각은 오후 7시 55분이었으나 나는 택시(600소모니)를 타고 일찌감치 11시 쯤에 공항에 도착하였다.

자전거 박스는 자저거샾에서 얻어다가 하루 전에 패킹을 하였다.

9시간을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나는 이제 그런 일에 이력이 붙은 모양이다.

싸구려 항공권은 환승하는 시간간격이 매우 긴 경우가 많다.


이제는 익스피디어의 경험으로 저가 항공을 이용하는 것을 삼가야 할 것 같다.

항공권 110만원, 출국날짜변경에 $200 싱가포르 달러, 출국시 오버챠지 16만원(38kg), 귀국날짜변경에 $400 싱가포르 달러, 귀국시 오버챠지 8만원(27kg)

가히 배보다 배꼽이 컸다고 할 수 있다.

고백하자면 분통이 터졌다, 지금 껏 10만원 이상의 변경챠지와 10만원 이상의 오버챠지를 물은 적은 없었다.





마나스 공항에서 알마티까지는 50분





알마티 공항에서 2시간 25분 대기





알마티 오후 11시 10분 출발





옆좌석에 앉은 나이가 들어보이는 일본인에게 말을 붙여보려고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더니 도쿄에 산다고 했다.

그러나 그뿐, 그는 말없이 책만 읽고 있었다.

이렇듯이 일본인들은 한국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다.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혐한증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일본경제의 대외의존도는 10%이고,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80%인 것으로 알지만 믿기지가 않는다.


강아지가 짖어대 봐야...

지 목만 아프다!

그러다가 물리면 개망신 당한다. 구한말처럼





5시간 40분만인 26일 오전 7시 5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였다.





공항에서 오전 10시에 출발한 버스는 노포동 터미널에 오후 3시에 도착했다.

나의 아내는 내게 있는 듯 마는 듯하다.

내게는 그것이 최상의 아내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저 뜬 구름과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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