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철없었던 결단

박희욱 2023. 3. 16. 12:05

마산고 1학년 때, 나는 방바닥에 몸을 뉘기만 하면 그대로 가버리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유로운 나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당시에 마산고 1학년 5반의 박영수군은 겨울방학동안에 자살을 감행하고 말았다.

진영대창국민학교 때 어린이회장을 했고, 나와는 급이 다르게 영리했던 친구였는데,

운명을 달리한 것은 용기의 차이가 아니면 차남과 장남의 차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때로부터 근 10년이 흐른 후, 군복무 후 복학을 해서도 동일한 이유로 심히 고뇌했다. 

 

우리 사회가 영화 '뻐꾸기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보여 주듯이 마치 정신병동처럼 보였다.

주인공 잭 니콜슨은 정신병원에 강금당하여 뇌수술을 당하여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동에 수용되어 벙어리 흉내를 내던

추장은 그런 주인공을 보고서 마침내 어느 비오는 날 병원 담장을 부수고 탈출한다.

뒤에 남은 환자들은 탈출하는 그를 보면서 병원 창밖으로 괴성을 지르면서 절규한다. 

신기하게도 이 영화는 당시의 내 심정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사람들은 사회라는 기생충에 감염된 좀비달팽이처럼 진정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다.

최소한 내 눈에는 그렇게 절망적으로 비춰졌다.

졸업학년이 되었을 때 김성시라는 친구가 희욱이 니는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다.

나는 식물인간처럼 산다고 대꾸했는데, 그만큼 나는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에게 그러면 안된다고 말했던 그 친구는 졸업식을 한두달 앞두고 캠프스앞 저수지에

몸을 던져서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대전에서 유학온 그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내 경험으로는 아무리 자유롭다 할지라도 삶이 힘들기는 매 한가지다.

그래서 키에르 케고르는 인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했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즐거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여행을 해도 힘들고, 조깅을 해도 힘들고,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힘들고, 클래식기타를 배워 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일 나름이겠지만, 자유롭지는 않을지라도 차라리 일을 하는 것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을 썼을 것이다.

사실, 대개의 사람들은 자유가 버거워서 스스로를 구속하면서 자유를 갈구한다.

일은 자신을 구속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이고, 또 돈을 마다할 이유가 없기도 하다. 

나는 괴로운 나머지 내 스스로에게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고 되뇌이곤 했는데,

그때는 내가슴에 피땀이 맺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고, 나 자신 외에 아무도, 아무것도 나를 구속할 수 없다.

알고보면 자유를 찾는 것은 물속의 물고기가 물을 찾는 것과 같았지만

나는 내 스스로를 그렇게 옥죄고 있었다.

 

나는 기타를 한다는 것은 평생 치유되지 않는 지병을 하나 가지는 것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못하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노력이 아까워서다. 

그러고보니, 내가 죽지 못하는 것은 지금껏 힘겹게 살아온 것이 억울해서가 아닌지 모르겠다.

평생 바위덩어리를 산꼭대기에 밀어올리기를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그처럼 신은 얄궂다. 그러나 신이 얄궂은 것은 내가 신을 그렇게 길들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 취직하고 보니

출근은 오전 7시, 퇴근은 오후 7시 반이었다. 북쪽의 별보기 운동이 별것 아니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고 공휴일도 없었으며, 단지 한달에 이틀의 휴가가 있을 뿐이었다.

이럴바에야 돈이나 벌어보자 싶어서 사우디에 갔더니 새벽 6시출근, 밤 10시반 퇴근이었다.

그 당시에 우리는 일본인을 경제동물이라고 비웃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경제버러지였다.

퇴근해서 밤 11시 30분 쯤에 침대에 몸을 누이면 절망감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괴로운 심정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어서 300km, 500km 멀리 떨어진 대학동기들을 찾아가

보았지만 아쉽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그 절망감을 극복하는 길은 모든 희망을 버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그 절망은 미래에 행복해보겠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사우디에서 귀국하면서

나는 굶어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귀국행 비행기 창밖을 희망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내던저버렸다.

지금도 나의 사전에는 희망이니 행복이니 하는 단어는 없다.

따라서 절망도 없고 불행도 없다. 모든 것은 不二이다.

 

드디어 2006년도에 학교에 사퇴서를 쓰고 영원히 생업을 버리고 말았다.

생업을 버리면 예상치 못한 힘든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그 고난을 과감히 경험해 보겠노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박평흠이는 기억할지 모르겠다. 나는 집에 장문의 유서(?)를 써놓고

아내의 반응이 두려워서 밀양 얼음골의 평흠이 사과농장으로 피신했다.

돌아와보니 다행스럽게도 아내는아무 말이 없었다, 쉽지 않는 일이었을 것이다.

(참고로 아내는 여지껏 돈을 벌어본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비의 뜬금없는 짓에 자식들이 긴장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일로 6남매의 장남이었던 나는 입신양명의 가치관에 투철하셨던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셈이지만, 아무도 나의 인생을 대신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손가락만 빨아도 살아갈 수 있다고 안심시켜드리려고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도리어 심기를 더 불편케 해드린 것이었지 싶다.

내가 백수가 되자 김영모와 이규호도 우려를 했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애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삶은 때때로 고공의 비행기에서 점프하듯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그래야만 무중력의 자유를 누릴 수 있지 우물쭈물하면 아무것도 안된다.

임종환자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도전하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지만

진정으로 가치있는 도전은 자유를 위한 도전이며, 그것이 진짜 자신의 인생이다.

 

마산중학교 정문에 있었던 비문이 생각난다.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

어쨋거나 간에 결국은 누구나 다 자신의 뜻대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한다.

알고 보면 세상이 바로 나 자신이며, 다른 세상은 없다. 즉, 범아일여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부처만 유아독존인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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