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ia(1997)

프롤로그

박희욱 2010. 8. 6. 08:03

  인도여행은 1997년 6월 29일 김포공항을 출발하여 7월 27일에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인도여행을 계획하고 나서 10여권의 여행기와 가이드북을 읽어본 결과, 인도에는 특출할만한 관광거리 특히,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별로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행기에 나타난 인도인의 삶은 무척 고달파 보였다. 그래서 여행 컨셉을 인간이 얼마만큼이나 비참한 환경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 하였다.

 

  과연 인도에서는 그러한 비참한 삶을 영위하는 모습을 많이도 목격하였다. 민망스러워서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는 경우는 허다했고, 비참함에 차마 눈뜨고 처다볼 수 없어서 외면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뭄바이 시장에서는 그 비참한 모습에 혼비백산하여 들어가자마자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인도의 국토는 지도상에서 보는 것보다는 더 넓어서 서유럽 전체면적과 같다. 그래서 인도 국내이동은 비행기로 하였고, 시내와 그 주변 교통은 자전거를 이용하였다. 택시나 릭샤 운전사와 운임시비로 인한 피곤함이 두려워서 자전거를 선택한 것이었다. 철도여행도 생각해보았으나  예약이 쉽지가 않고 무척 피곤할 것 같아서 포기하였다.

 

  아내는 나의 인도여행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다른 한 사람을 대동하라는 거였다. 마침 식당을 하시는 주사장님이 선뜻 따라나섰다. 나는 그님에게 인도여행의 고역을 충분히 설명하면서 일종의 지옥순례라고 일러 주었는데,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답게 자신 있어  하였다. 자전거도 쌀자전차를 오랬동안 탔었고, 쌀을 두가마니 싣고서 대연고개를 오르다 체인을 끊어먹은 것을 얘기하면서 자전거 타기를 단련하라는 나의 권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나는 부산KBS방송국에서 황령산 정상까지 십여번 논스톱으로 오르는 연습을 하였고, 이것이 내가 MTB를 시작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여행중에 몹시 피곤해 하여서 난처하게 하기도 했다. 더구나 배탈을 만나서 고생하기도 했는데, 인도여행기의 저자 중에는 돌아가신 법정스님과 동학사 학승들 외에는 모두 감기나 위장탈로 빈사상태로  귀국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건강에 아무런 탈이 없었던 나는 운이 무척 좋았다. 나는 그 에게 조기귀국하라고 권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끝까지 버텼다. 그는 출발할 때 아마도 나도 하는데 자기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도여행은 그렇게 힘든 여행이었다. 각오하고 갔지만 7월의 더위가 굉장하였고, 카주라호 공항의 활주로에서 겪었던 더위는 나로 하여금 악을 받히게 하였다. 그 다음에 불결함이다. 싸구려 숙소의 화장실은 때때로 구역질을 일으킬 지경이었고, 식당의 불결함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다행한 것은 중국음식점을 많이 이용할 수 있었는데, 여기는 비교적 깨끗하고 저렴할 뿐만 아니라 입맛에도 맞아서 오히려 집에서 보다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을 수 있었다. 또 하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박시시의 요구이다. 어디를 가나 끊임 없이 달려드는 박시시를 요구하는 손들이 사람을 매우 피곤하게 하였다. 나보다 마음이 약한 주사장은 짜증을 낼 수 밖에 없었고, 짜증내는만큼  힘들어 하였다. 나는 단호하게 무시하고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태도로 대처하였다.

 

  여기에 올린 사진은 인도여행앨범의 사진을 방하원 실장님이 케메라로 복사하여  주신 것이다. 귀찮은 일을 손수하여 주신 방실장님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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