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가 가진 대학자로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 청렴결백한 것을 넘어서 빈한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로는 당대의 양반들이 으레 그러했듯 퇴계 역시 재산 치부에 꺼리낌이없었으며 조금 부유한 정도가 아니라 한 지역의 대부호에 가까웠다.이황이 죽고 나서 자식에게 상속한 재산의 분재기(分財記)에 따르면 이황 집안의 토지는 전답(논밭)이 합계 3000두락으로 약 36만 4천 평에 달하였고 노비가 남녀 합쳐 376명에 달하였다. 당대 사림 지주들의 평균적인 재산이 논밭 300두락에 노비 100여 명이었음을비교해 보면 당시 기준으로도 꽤나 부유했던 편인 것일 뿐만 아니라 이황은 직접 집안일에 나서서 재산 치부에도 여념이 없었는데, 가령 집안의 노비들을 양인과 결혼시켜 자식을 낳게 하고 노비의 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