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김해공항에서 베를린(From Gimhae to Berlin)

박희욱 2013. 8. 6. 23:15

 

5월 3일, 맑음

어제 자전거박스를 승용차에 싣는데 윗층에 사시는 선배님이 나의 여행을 간곡히 만류하신다. 혼자서 하는 그런 장기간 여행은 외로워서 안된다, 친구가 있어야 하고, 사고시 도와주고 연락해 줄 동행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옳은 말씀이다.

 

짐을 모두 꾸려놓고 보니 슬며시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내가 스스로 마음을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닌가 보다. 여행을 시작할 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것은 처음 여행을 하겠다고 결정할 때, 항공권을 구입할 때, 짐을 꾸리고 나서, 그리고 목적지 공항에 도착할 때 등이다. 상당한 여행전력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은 여전하다. 다만, 그 강도는 좀 누그려졌기는 하다. 해외 배낭여행의 선구자 김정미씨의 말이 생각난다. 그녀는 배낭을 등에 지고 김포공항으로 가는데, 후회가 막급이라 누가 등 뒤에서 배낭을 잡아당기면서 말려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술회했다. 그 당시에는 해외여행자율화가 되기 이전인데다가, 요즘처럼 여행에 관한 숱한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가 아니어서 충분히 그랬으리라고 짐작이 간다.

 

그냥 적당히 1개월 정도의 여정을 잡아서 중요한 몇군데만 둘러보면 될 것을 모든 곳을 다 보겠다고 쓸데 없는 욕심을 부려서 생고생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항상 나는 항공료가 아까워서 끝내는 욕심을 부리고 만다. 이왕 비싼 항공료를 지불하였으니 본전을 뽑자는 얄팍한 생각이 사고를 치는 것이다. 처음 장기간의 여행을 시도할 때 즉, 미국과 캐나다 자전거여행을 계획할 때는 그 외로움을 극복해 보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내가 홀로의 여행을 견딜 수 있는 한계가 3개월 정도일 것으로 여겨서 그렇게 여행기간을 잡았다.

 

그렇게 외로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은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이 없는 나는 어차피 언제나 홀로 살아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만 그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비록 친구가 많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음속깊은 곳에서는 누구나 홀로이지 않을까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의 세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 상호간의 소통과 교감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에게해 로도스 섬의 소크라테스 거리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외로워해야 했다

 

 

이제는 나에게는 외로움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외면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찾아야 할 것도 없고, 내면세계는 어차피 홀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행중에도 외로움은 별로 느끼지 않는다. 어쩌면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의 기회가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서양인들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내가 자전거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동행자가 있다면 그들은 나에게 말을 붙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가 인간은 죽음이 두려워서 종교를 만들었으며, 삶이 두려워서 사회를 만들었다고 했다. 삶과 죽음은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는 자는 삶도 두렵지 않다. 사람들은 왜 삶을 두려워하는가? 먹고 사는 것이 두려운가? 아니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는 것이 두려워서인가? 내가 볼 때는 후자인 것으로 보인다. 소외는 홀로의 외로움과 직결된다. 그러므로 홀로임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삶도 두렵지 않고 죽음도 두렵지 않다. 죽음은 영면이며, 그것은 영원히 홀로가 되는 것이다.

 

오늘 새벽에서야 유레일 패스와 스칸디나비아 패스를 챙기지 않은 것이 생각난다. 여권, 신용카드 다음에 가장 중요한 것이 2가지 패스인데. 그 다음에는 카메라가 중요하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중요도의 순서가  역순으로 바뀐다.

 

아내는 나더러 살빠지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를 한다. 첫 유럽 배낭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몸무게가 무려 7kg이나 빠져서 아내를 놀라게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마치면 언제나 몸무게가 빠진다.

 

공항 체크인 카운터의 중량계에 자전거 박스를 올리니 34kg이다. 오버챠지는 이미 각오한 것이다. 담당직원은 32kg인 것으로 계산하여 운임 $95를 내란다. 32kg을 초과하면 운임을 훨씬 더 증가하는 모양이다.  아내가 넌즈시 가리키는 곳을 보니 자전거 박스 한 쪽이 중량계의 턱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정상적으로 계량을 했드라면 38kg은 좋게 되었을 것이다. 그 턱이 가난한  여행자를 도운 것이다.

 

비행기는 예정대로 오전 8시 20분 경에 가볍게 날아올라서 쾌청한 하늘을 날고 있다. 아래는 마치 눈 세상처럼 하얀 구름바다이다. 지상에서 하늘을 올려본다면 구름이 가득한 음산한 날씨일지도 모른다. 옛날 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을 보내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할 때 누군가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던 것이 기억난다, 온 세상이 먹구름으로 가득하다 하여도 나는 그 먹구름을 뚫고 올라서 맑게 빛나는 늘푸른 하늘을 쳐다보겠다고. 당시에는 그것이 나의 희망이었지만 그 희망이 이루어졌다. 온 세상이 폭풍이 몰아쳐도 나의 내면으로는 침투할 수 없다. 세상은 연잎 위의 물방울처럼 나늘 적시지 못한다. 그때 겪었던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눈시울을 적실 때가 있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으로 말미암은 고통이었지만 그런 고통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베이징공항에 도착하여 입국심사를 거치고, 환승하는 SAS항공을 찾아 공항청사를 나와서 셔틀버스를 타고 15분 쯤 달려서 터미널3에 도착하였는데 마치 별개의 공항인 것처럼 여겨진다. 왜 이렇게 번거롭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다. 신설 전철공사 중인가? 여기서 점심식사를 하였는데 65위안이다. 공항에서는 중국물가가 아니다. 샹차이 향도 거슬리고  맛도 별로다. 여행중에는 왠만하면 음식물을 남기지 않고 모두 먹어치우는데 결국 남기고 말았다. 중국음식을 주문할 때는 자칫하면 너무 많은 음식이 나오기 십상이다.

 

식사후 탑승장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나니 개운하다. 나는 잠을 7시간 30분 정도는 자야하고 거기서 30분이라도 적으면 좀 찌부둥해 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서 밤잠이 적은 사람이 부러웠다. 사실 무엇을 성취한 사람들 중에는 잠이 많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3시간 밖에 자지 않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는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눈을 감았을까. 잠이 많은 히틀러를 연상할 수 있는가. 옛 직장의 어느 동료는 자신은 5시간 이상 잠을 자 본 적이 없다는 좀 놀라운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에게는 잠자는 시간이 제일 좋은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말이 아니고, 지금도 잠을 무척 잘 잔다. 내가 장기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무거나 잘 먹고  아무데서나 잠을 잘 자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잠이 적은 사람이 부럽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취한 것들이 잠자는 만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발명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던 발명왕 에디슨도 잠을 아껴 가면서 노력했던 사람일 것이다. 그는 80세가 넘어서 새로이 생물학 공부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이 발명한 전등은 밤세워 공부하는데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전등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편안한 밤잠을 앗아간 것이 아닐까. 나는 별빛을 보면서 잠이들고 아침의 여명을 보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다. 사실, 비행기 덕분에 내가 세계를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이 비행기가 없었다면 나는 세계여행을 모르고 부산 해운대 장산의 싱글코스에서 바위너구리나 혹멧돼지들과 함께 자전거나 타고, 거기서 파전에 막걸리나 마시고 있을 것인데 나는 왜 돈들여서 고생길로 접어들려고 하는가.

 

 

 

 

 

 

 

 

 

 

 

 

 

 

 

김해공항

 

 

 

베이징 공항


베이징 공항 터미널3


나를 코펜하겐까지 실어나를 SAS


 

 

비행장 탑승구 앞에서

3개월 후에는 얼굴모습이 어떻게 변해 있을까.

 

 

 

 

 

 

 

 

 

 

 

 

 

 

 

 

 

 

 

 

코펜하겐 행 비행기는 베이징 현지시각 오후 3시 쯤에 이륙을 하였다. 앞좌석에는 아기를 않은 젊은 부부가 탑승을 했다. 아기의 이름이 베드만이라 하는데, 베드만은 엄마 아빠의 왕자로서 사랑을 덤북 받고 있다. 아랫니 두개가 하얀 쌀알처럼 머리를 내밀고 있고, 아직까지 자신의 입으로 즐겨 자기 발가락을 빠는 아기다. 돌이켜보면 나도 요런 놈이 하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나는 좌석 등받이 뒤로 눈길을 주는 그녀석과 눈을 맞추는 것이 큰 즐거움이다. 사실 나는 여행중에 어린아이들을 보는 것이 크다란 즐거움의 하나이다. 서양의 아기들은 인형보다 더 인형같이 생겼다.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나의 성향이 조금은 유별난 것같다. 나는 매일 해운대 백사장을 지나다니면서 항상 사탕을 몇개 가지고 다닌다. 그것을 빌미로 아이들과 접촉을 하기 위해서다.

 

 

배더만

 

 

지금 이 순간 비행기는 우랄산맥을 지나고 있다. 그러니까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이것이 네 번째이다. 기내에서 옆좌석이 비어 있어서 훨씬 편했다. 예전에는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 지옥 같은 고통이었는데 근래에는 한결 수월한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여 또 입국수속을 하고, 환승을 한다음에 베를린 공항에 도착한 것은 해가 지평선 너머로 막 내려간 이후인 오후 8시 30분 경이었다. 자전거 박스를 실을 카트를 사용하려고 하니 1유로 동전이 필요하다. 체면불구하고 구걸하였는데 흔쾌히 적선을 하여준다. 인심이 괜찮다. 자전거를 싣고서 입국심사장으로 가려고 하니 바로 옆에 택시승차장이 있었다. 그러니까 유럽공동체는 마치 하나의 나라인양 코펜하게에서 입국심사를 했으니 독일 공항에서는 그냥 프리패스이다. 화끈해서 좋다.

 

 

 

코펜하겐 카스트루프공항 탑승대합실

 

 

 

 

비행기 좌석에서 촬영한 베를린 공항

 

 

 

유로화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ATM에서 300유로를 꺼내고서 택시에 짐을 싣고서Amstel House 호스텔로 가자고 하니까 운전사는 한 참 지도를 보다가 다른 운전사에게 물어보고나서 출발을 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도 흔한 네비게이터가 칠칠 맞게도 택시에 없는 것이다. 나도 없지만. 호스텔에 도착한 것은 저녁 9시 30분. 요금은 12.5유로. 크다란 박스를 실은 죄로 20유로를 인심쓰자 운전사의 태도가 확 달라져서 얼른 박스를 내려준다.

 

 

 

Amstel House 호스텔 리셉션

나의 자전거 박스

 

 

호스텔 리셉션에서 자전거 박스를 옆에 놓고 나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학생들인 둣한 젊은 친구들이 나를 보고서 자기네들 끼리 수근거린다. 내가 자전거여행을 할 때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독일 사람이다. 그래서 자전거여행이 일상적인 일이라고 믿어지는 독일인이 나에게 관심을 두는 그들의 태도가 조금 의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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