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베를린1(Berlin)

박희욱 2013. 8. 6. 23:16

 

 

5월 4일(토) 맑음

 

Amstel House 호스텔은 1박에 25유로, 아침식사비는 5유로. 인터넷으로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학생들의 단체손님이 매우 많아서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뻔했다. 4인실인데 룸메이트는 폴란드 사람들이고, 그들의 집은 베를린에서 100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4일간의 휴가차 베를린에 구경왔다고 했다. 남자의 이름은 표트르, 부인은 나탈리아, 부인의 친구는 에바. 각각 2명의 자녀가 있다고 했다.

 

바웬사를 좋아하는지를 물어보았는데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는 분명히 폴란드의 민주화에 공헌하였으나 그의 이상이 자신의 생각과 맞지가 않고, 그는 더 이상 폴란드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란다. 과거에 한국의 민주화에 조금 공헌이 있는 자들이 계속 신물나는 민주화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정권투쟁을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뒷전으로 물러나 앉았으면 좋으련만. 제발 과거를 되씹지 말고 새로운 비젼을 제시하던가 할 것이지 흘러간 옛노래는 너무 지겹다. 그러나 그들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은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이 한국의 민주화에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어쩌면 한국의 경제력이 일등공신이 아닐까. 아무튼 이재는 민주라는 말만 들어도 두드러기가 일어나려 한다.

 

나이도 조금 먹어 뵈이는 사람이 혼자서 자전거를 끌고 여행을 하겠다고 나선 내가 철없어 보이는지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돈보다는 자유로운 삶을 위하여 직업을 팔아먹어버렸다고 하자 나탈리아는 사람들은 언제나 돈을 더 좋아한다고 하면서  웃는다. 옆에 있던 에바는 내가 프리 소울(free soul)을 가진 사람이란다. '야아~! 이것 참!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ㅋ'

 

에바가 말한 자유로운 soul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soul이란 단어에는 영혼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정신 또는 마음이란 의미도 있다. 자유로운 정신으로써는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없다. 물속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팔을 마음껏 휘둘러 봐야 팔만 아프게 된다. 팔다리를 뻗고 가만히 누워 있어야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마음이니 정신이니 하는 것은 이와 같이 항상 자기 스스로 자신의 뒷통수는 친다.

 

자유로운 영혼이란 아무런  개념이나 관념이 없이 매 순간 있는 그대로를 사는 것이며, 또한 그것은 색갈이나 분술물이 없는 순수한 물과 같으며, 아무런 걸림없이 흘러가는대로 흐르는 것이다. 사람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사랑이라는 관념조차도 내버려야 한다. 예수가 말한 사랑이란 순수한 영혼자체를 두고 한 말이다. 내가 그런 자유로운 영혼까지는 아닐지라도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며, 언젠가는 그 지향조차도 내버리게 될 때가 왔으면 한다. 영혼이란 침묵의 울림(Sound of Silence)  같은 것이다.

 

아침을 호스텔에서 5유로 짜리 식사를 했는데 호스텔은 어디서나 자유배식이다. 서양인들은 아침과 점심은 매우 가볍게 먹는다. 아침을 breakfirst라고 하지 않는가. 말하자면 간에 기별만 갈 만큼 먹는다는 것이다. 나는 일은 하지 않으면서도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사람이다. 나는 체면은 잠시 뒷전으로 밀어 놓고 눈치도 없이 잔뜩 먹어 두었다. 그래야 점심값과 저녁밥값을 조금 절약할 수 있을까 해서다.

 

아침식사를 하고나서 자전거를 조립한 다음에 필요한 자전거 용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베를린에서 제일 크다는 자전거 샾 Sadler를 찾아 나섰다.

독일의 거리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무척 조심스럽게 주행을 하여야 한다.

조심 조심, 또 조심! 살살!

 

 

 

벼룩시장

 

 

 

 

 

 

 

 

 

비스마르크 슈트라세

 

 

 

그 유명하다는 슈타츠오퍼 오페라하우스

 

 

 

베를린 최대의 자전거 마트 Sadler

 

도착하고 보니 과연 매장은 엄처나게 크서 마치 한국의 대형마트만 하다.

얼마나 팔아야 수지를 맞출지 염려스러울 정도다.

 

자전거 퀵스탠드를 하나 살려고 했는데, 수많은 종류가 있었으나 카본프레임에 붙일 수 있는 제품은 없다고 한다. 카본 프레임에는 퀵스탠드를 달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쩌면 그만큼 카본프레임 엠티비도 없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발 레인카바를 $19에 하나 사고, 헬멧을 하나 지르고 말았다. 무려 $235! 내가 미쳤다.

전시된 수많은 헬멧 중에서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이 하나도 없다. 조금 마음에 드는 것은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

그런 비싼 헬멧을 쓰고 다니는 현지 사람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멋도 모르는 사람이나 쓰고 다니는 아주 저렴한 것을 쓰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 북유럽에서만 해도 매일 쓰고 다닐 물건이니 최고품으로 사고자 한 것이 실수였다.

그 헬멧은 결국 귀국중에 귀퉁이가 깨지고 말았다.

 

 

 

 

Sadler 매장을 나오니 세워 놓은 나의 자전거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

터키계 독일인인데 그는 터어키에서 아시아 대룩을 횡단하여 한국까지 자전거 여행을 했단다.

그래서 속초, 강릉, 부산 등지를 알고 있었고, 내가 여행할 북유럽도 자전거 여행을 했단다.

 

 

 

 

 

 

관광은 뒤로 미루고 조금 일찍 숙소로 돌아와서 잠시 잠을 청했는데 표트르 일행이 들어오는 소리에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10시가 넘었다.

할 수 없이 저녁을 거러게 되었다. 에바는 내가 장기간 해외여행을 하면 아내가 반대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내 아내는 결코 만류한 적이 없다고 하자 남편과 동행한 친구 나탈리아 더러 이 사람이 지금 너를 곤란하게 하고 있다고 농을 했다.

나는 흔히 이와 같은 질문을 받는데 그럴 때면 나는 아내에게 3개월 동안의 휴가를 주었다고 말하곤 한다.

그들은 다시 아래층으로 놀러 나갔고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5월 5일(일) 맑음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오전 5시, 10시간 이상을 잠을 잔 셈이다. 어제는 기분이 좀 가라앉아 있었다. 대형 마트도 눈에 띄지 않고, 소형마트에는 내가 찾는 쌀을 비롯한 식품도 보이지 않고, 더우기 가져온 가스버너에 맞는 부탄가스도 찾지를 못했다. 시차적응도 하지 못했고, 3개월을 버티어 낼 생각을 하니 앞이 까마득하게 보여서 그랬던 것 같다.

 

호스텔 방을 나가려 하는데 엊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들어왔던 나탈리아는 나의 블로그를 보았다면서 손가락을 치켜세워 준다. 표트르는 자신의 명함을 한 장 찾아주면서 폴란드에 오면 자기 집에 꼭 들러라고 하면서 자신들은 오늘 귀국한단다.

그들과 작별을 하고, 전승기념탑을 지나서 브란덴부르크문으로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시내에 인파가 별로 없고 관광객만 움직이고 있다. 베를린의 건축물은 그들의 이미지대로 표정이 없이 무뚝뚝하다.

2차대전 후에 파괴된 잿더미에서 서둘러 건축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인가.

아마도 연합군이 그들의 분노만큼이나 베를린에 소나기처럼 폭탄을 퍼부었을 것이다.

시내의 많은 도로가 파헤쳐저서 공사중인데가 많고 건물들도 비계를 세우고 수리중인 건물이 많았다.

아무튼 베를린은 그렇게 매력적인 도시가 아닌 듯하다.

 

 

 표트르 부처

 

 

 

 폴란드에서 온 룸메이트 나탈리아와 에바

Friendly Polish peoples

 

 

 

 

암스텔하우스 호스텔

출발을 대기하고 있는 깜장야크

 

 

 

 

호스텔 근처의 겹벗꽃

 

 

 

 

호스텔 부근의 교회

언제나 문이 닫혀져 있었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강

 

 

 

지게스조일레

독일의 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의 전승 기념탑이다

1873년에 건립한 높이 67m의 빅토리아 여신상

 

 

 

 

 

 

 

 

 

 

 

 

직선으로 나아가면 브란덴부르크문이 나온다.

 

 

 

 

 

 

 

 

옛소련의 2차대전 전승기념탑

 

 

 

 

 

 

러시아어로 세겨져 있다.

 

 

 

 

인민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

낫과 망치를 잘 간수해야겠지만

낫과 망치가 주인행세를 하려들면 모든 것이 찢어지고 깨진다.

 

 

 

 

브란덴부르크 문

첫 베를린 방문 때 기억에 남는 것은

브란덴부르크 문과 베를린 필하머니, 그리고 페르가몬 박물관밖에 없다.

 

 

 

 

부란데부르크문 앞에 다다르니 그 문앞에서 북을 든 악대가 단순한 리듬으로 북을 치고 있다.

마라톤 선수들이 그 문을 통과하는데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연주다.

그 연주를 듣는 내가 가슴이 뭉클했으니 선수들은 그 소리를 듣고 피가 끓는 듯했을 것이다.

 

 

 

나찌들은 사람들의 이러한 심리를 잘 이용했을 것이고, 전쟁터에 나서는 독일군들은 히틀러의 명령에 최면이 걸렸을 것이다. 사람은 군중이 되면 어린아이처럼 변하고, 히틀러는 어린아이처럼 변한 국민을 마음대로 주물렀다.

 

저 앞쪽에서 마라톤 선수들이 달려오고 있다.

 

 

 

 

이 북소리가 태아적에 자궁속에서 들었던 모체의 심장소리와 닮았기 때문인 것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

히틀러 무리도 독일 젊은이들을 전장터로 내모는데 야간의 횃불뿐만 아니라 이 북소리를 이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작은 횃불 즉, 촛불을 애용하고 있다.

북소리를 들려주고, 횃불이나 촛불을 들게 하는 것은 마음에 제복을 입혀려는 술책이다.

일단 마음에 제복을 입히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어린아이 다루듯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

사람들 또한 제복에 매력을 느낀다.

그 속에서 아무 생각없이 정어리떼처럼 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