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퀴레 제3막의 포문을 여는 음악인 '발퀴레 기행'은 많은 사람들이 '아, 그 곡' 하며 무릎을 치는 몇 안 되는 관현악곡 중 하나다.
* 바그너의 정수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건 <파르지팔> 녹음 가운데 전설로 회자되는 한스 크나퍼츠부슈의 음반을 듣고서였다.
* 바그너는 순수 기악음악의 가능성이 <합창 교향곡>의 첫 세 악장에서 그 정점을 찍었다고 진단했고,
향후의 음악이 지향해야 할 유일한 노선은 詩라는 비료를 뿌린 음악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바그너의 우상 베토벤이 괴테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공작 일행을 맞닥뜨리고도 옆으로 비켜서서 모자를 벗지 않아 위대한 사상가를 겸연쩍게 하였다.
* 20세기 독일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1885~1977)는 '우리가 음악을 들을 때 정말로 듣는 것은 우리 자신'이라고 설파한 바 있다.
* <방황하는 네델란드인>은 한 편의 심리드라마다.
* 자연을 묘사한 음악은 바그너 이전에도 많았다. 그러나 그가 그려낸 바다에는 선배들의 위업을 능가하는 힘과 대담한 창의력이 있다.
(바그너와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유일한 상대라면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중 '폭풍우 악장' 정도일 것이다.
* 바그너는 베버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열정의 불을 지핀 진정한 자신의 아버지라고 하였다.
* 우아한 목소리를 과시하는 것에 집착하지 않고 노랫말의 소리와 의미에 집중하는 새로운 종류의 노래 선율이 탄생할 것임을 예견하고 있다.
따라서 음악적 모티프 또한 그것이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 및 감정과 긴밀한 연관을 지녀야만했다.
모티프가 자체적인 독립성을 획득하게 되면 그 의미 전달을 위해 굳이 성악가들에게만 의존할 필요도 없어진다.
오케스트라만으로도 전개가 가능해지는것이다. 바그너 오페라의 '라이트 모티프'로 알려지게 되는 개념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로써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단순히 반주 움악 제공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을 설명하고 논평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된다.
결정적인 순간에 특정한 모티프를 환기시킴으로써 그 모티프와 연관된 생각과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것이다.
* <라인의 황금>전주곡은 멘델스존의 악상과 솜씨를 월등 뛰어넘는 힘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그 독창성은 가히 숨을 멎게 한다.
* 위대한 철인 헤겔은 역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멈춤없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설파하였다. 그러나 쇼펜하우어는 헤겔의 사상에 콧방귀를 날렸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갈망을 채우려는 시도는 새로운 고통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라고 말하고,
갈망케 하는 의지를 향해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 즉, 포기와 체념의 길 밖에 없다고 하였다.
* 쇼펜하우어는 음악이 최고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맹목적인 갈망을 인식하고 거기에서 한 발 떨어져 나와 명상에 잠길 수있게 하는 예술은 오조지 음악뿐이었다.
음악은 그 자체로 구원을 이루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쇼펜하우어는 고통은 불가피한 것이며 오로지 세상으로부터의 단절만이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파하였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접한 바그너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간절한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던가.
*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주곡의 강렬하면서도 절묘한,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불협화음이 나열되는 음악은 당시 관객들의 수준을 한참 압선 것이엇다.
심지어는 위대한 혁신가 베를리오즈마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 바그너의 도덕적 취약점은 누가 봐도 명백한 사실이었지만, 인간 바그너의 마력과 음악은 일단 그의 영향력 내로 편입된 사람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 니체는 1888년에 탈고한 그의 저작 <바그너의 경우>에는 이런 문장도 등장한다.
"바그너를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차라리 하나의 질병이자 병폐가 아닐까?"
재담에도 능했던 니체는 바그너가 정치인이 되지 않고 음악가가 된 것이 전 인류를 위해서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 <지그프리트> 제3막은 아주 빼어난 음악을 담고 있으며,
브륀힐데가 지크프리트의 입맞춤을 받고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장면은 특히 아름답다.
* 바그너는 소규모 관현악곡인 <지크프리크 목가>를 작곡해 아내에게 결혼 기념 선물 및 생일 선물로 선사했다.
그가 쓴 곡 중 가장 사랑스런운 작품이다. 평화롭고 부드러운분위기가 지배적이며, 환희를 향해 치닫는 클라이맥스 부분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숲 속의 새소리 모티프가 방점을 찍는다.
<반지>가 좀처럼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도 이 '위성' 작품은 수월하게 받아들이고 또 좋하곤 한다.
* 미망이라는 개념을 직시하고 연민을 통해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한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제대로 인식할 수만 있다면,
바그너의 마지막 오페라 <파르지팔>을 이해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니다.
* <뉘를 베르크의 명가수> 제3막 초입, 인간들의 끊임없는 자기기만과 자학 성향을 곱씹으면 뇌까리는 한스 작스의 위대한 독백
'미망이군, 미망이야, 어디나 다 미망이야!' 역시 그 핵심 개념은 바로 쇼펜하우어의 사상이다.
* <반지>라는 작품은 대단히 복잡한 도덕률이 어지러이 엇갈리는 우주 그 자체다.
바그너가 그러한 복잡한 차원의 문제를 도대체 어찌 이토록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고 또
예술을 통해 이를 절묘하게 표현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 <반지>는 원래 부르주아 계층의 물질주의적 가치관에 경종을 울리는 의미로 착상된 작품이다.
* 바그너 음악에 경도된 토마스 만(1875~1955)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한 명의 사상가이다. 인격체로서의 바그너는 수상쩍은 인물이다. 그러나 예술가로서의 바그너를 거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바그너가 구사하는 모종의 화음, 혹은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프레이즈가 전혀 예기치 못한 시점에 내 귀를 때릴 때마다 나는 아직도 기쁜 마음에 흠칫 놀라곤 한다.
갈망과 간계로 가득한, 바로 그러한 교활하고 기발한 묘기는 아직도 내 영혼을 무릎 꿇리고 만다."
"극장에 운집한 관중 속에서 홀로 깊은 고독 속에 빠져 보낸 수많은 시간들,
전율과 찰나의 행복으로 채워진 수많은 시간들, 몸과 머리로 느낀 기쁨들이 함께한,
그리고 돌연 심오하고 감동적인 의미를 엿보게 한 수많은 시간들, 그것은 모두 이 비길데 없는 예술이 아니었드라면 누릴 수 없었을 터!"
* 그러나 바그너를 혐오하는 쪽과 숭앙하는 쪽이 의견일치를 이루는 부분이 있다.
그의 작품이 남긴 막대한 영향력이 그것이다.
그의 음악이 없었더라면 서양음악의 괘도는 지금과는 크게 다른 길을 걷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 정도로 그가 남긴 영향력은 결정적이었고 치명적이었다.
1841 <방황하는 네델란드인>
1845 <탄호이저>
1847 <로엔그린>
1856 <발퀴레>
1859 <트리스탄과 이졸데>
1868 <뉘른베르크의 명가수>초연(1845년 작곡, 1861년 퇴고)
1871 <지크프리트>
1882 <파르지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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