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Nat'l Park

프롤로그(Prologue)

박희욱 2014. 8. 1. 06:48

또 여행이 끝나고 안전하게 귀국을 하게 되어서 무척 기쁘다.

그런데 자전거여행 때와 같은 그런 벅찬 감동과 기쁨은 없다.

왜 그러한 지는 딱히 설명하기가 곤란하다.

내 몸을 사용하여 이동하는 것과 자동차에 몸을 싣고서 하는 여행의 차이일까.

 

여행은 조기귀국을 하게 되었으나 대체로 계획대로 별다는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7월 25일에 LA로 귀환을 해서 28일에 멕시코시티로 날아가려고 항공권까지 구입해 놓았는데

내가 만난 모든 교민들이 멕시코 단독여행은 위험하다고 이구동성이었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나 같은 빈티나는 여행객에게 무슨 강도가 달라 붙겠는가 하는 생각이었고, 그럴 경우라도 $100~$200 쯤은 희사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덴버 교민신문에 멕시코의 30세 이하 실업율이 40%라는 기사를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

이렇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치안상태를 전혀 믿을 수 없다.

 

즉각 멕시코여행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결정하고, 혹시나 싶어서 조금 기다렸다가 탑승 20일 정도를 남겨두고서 www.cheapOair.com 에 전화를 해서

항공권 취소를 요청했는데 환불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자사의 환불규졍이 그렇다는 것이었다. 28만원이 날아간 것이다.

억울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값싼 항공권을 구입한 댓가로 그런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 싶다.

아마도 그런 여행사는 싼 가격의 항공권을 판매하는 대신에 이런 취소의 경우에 얻는 수익으로 경영수지를 맞추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귀국날짜 8월 19일까지 미국서부에서 더 이상 여행하고 싶은 곳도 없고 해서

탑항공사에 7월 28일 경에 귀국할 수 있도록 날짜변경을 요청하였더니 남은 좌석이라고는 7월 22일 좌석 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섭섭한 면도  없지는 않았지만 일찍 귀국하게 된 것이 기쁘기도 했다. 

이런 경우를 시원섭섭하다고 할 것이다.

 

 

이번 여행에는 렌트카를 이용하기는 했으나 힘들기는 자전거여행 때와 별로 차이가 없었던 느낌이다.

나의 여행은 힘들 수 밖에 없다. 도시가 아닌 국립공원을 비롯한 대자연을 경험하는것이기 때문이고,

그리고 한가한 여행이 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본적으로 하루 10만원 가까운 비용이 지출되고 있는데 남의 나라 땅에서 홀로인 내가 슬금슬금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일 뿐만 아니라,

하이킹과 자전거 라이딩을 하고싶은 곳이 널려 있는데서야 느릿느릿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게 된다.

아무래도 렌트카여행이라 초조해야 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그만큼 마음이 여유로웠던 것은 사실이다.

 

숙소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호스텔, LA에서는 민박집, 덴버에서는 한인 가정집을 이용하였고,

그외는 거의 모두 국립공원이나 국유림의 캠핑장에 텐트를 쳤고, 간혹 사설캠핑장과 부득이한 경우 몇 번의 모텔을 이용하였다.

캠핑장 사용료는 최저 $10 짜리도 있었으나 이런 곳은 급수조차 되지 않는 특별한 곳이었고 보통 $20 정도였으며,

고급 사설캠핑장인 KOA는 $37였는데, 91년도에는 $25였던 곳이다.

모텔은 보통 $80 정도였는데 91년도에는 $45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최저 $43 모텔과, 본의 아니게 최고 $130 짜리 모텔을 이용한 적이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힘들고 피곤했던 것은 몸을 닦는 일이었다.

사설캠핑장 외에 국립공원이나 국유림 캠핑장에는 키친시설과 샤워시설이 없다. 전기콘센트도 화장실에만 있다.

국립공원 캠핑장의 화장실은 대게 수세식 화장실이고, 국유림 캠핑장은 모두 수세식이 아닌 볼트(Vault)라고 하는 변기이다.

화장실 수도꼭지도 손씻는 용도이기 때문에 세수하기도 매우 불편하다.

화장실 바깥에 급수전이 있으나 여기서는 물만 받아갈 수 있고 몸을 씻는 것은 물론이고 식기를 씻거나 양치질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어린시절에는 목욕하는 일이 1년에 몇번 밖에 없을 정도로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는데, 그 당시 농촌에는 모두가 그랬다.

그런데 어찌된 것인지 이제는 몸을 닦지 않고서는 잠을 잘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하이킹이나 라이딩을 마치고 텐트장에 돌아오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몸을 닦은 다음에 취사를 하고,

식사를 하고 설거지를 한 다음에 원두커피를 만들어서 몇 모금 마시지도 못하고 곧바로 몸을 뉘면 곧 잠이 들어버린다.

그 시각이 보통 저녁 9시를 넘지 않는다. 그러고는 오전 5시가 될 때까지 화장실 갈 때 외에는 잠에서 께지 않는다.

그만큼 잠을 잘 잔다는 얘기다.

 

내가 몸을 닦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화장실 세면기에 머리를 쳐박고 한 손으로 급수전 꽂지를 눌러가면서 머리를 대충 씻고, 다리도 그런 방식으로 씻는다.

화장실 사용이 곤란한 경우는 물주머니에 물을 받아 텐트사이트의 야외식탁이나 나무에 매달아서 실날 같이 나오는 물줄기에 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키친타올이나 수건에 물을 적셔서 화장실 간막이 안에 들어가서 옷을 모두 벗고 몸을 닦아낸다.

말은 쉽지만 실제로 해보면 다른 사람 눈치도 보아야 하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하루 이틀 정도면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매일 이런 날이 계속되면 피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의아스러운 것은 현지인들은 아무도 나처럼 몸을 닦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캠핑카를 이용하는 사람들이야 문제가 없겠지만 텐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몸을 닦는지 몹시 궁금하다.

하도 궁금해서 어떤 교민에게 물어봤더니 여기 사람들 중에는 여행을 출발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세수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나 뭐라나.

 

이번 여행만큼 잘 먹고, 잘 마시고 다닌 적이 없었다. 렌트카 덕분이기도 하고 미국의 식품이 저렴하기도 한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스박스에 식품을 가득 싣고 다닐 수가 있어서 무척 편리했다. 다만 한 자루에 $2 내외 하는 얼음값이 제법 많이 들었다.

해물탕을 해먹느라 가져간 미역은 거의 손대 대지 않고 도로 가져 왔으며,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젖갈 6통도 다 먹지 못하고 2통을 남겨서 귀국하였다.

LA와 덴버에서 구입한 라면과 김치 또한 아낌없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

 

아침 저녁은 예외없이 취사를 하였고, 점심은 패스트푸드 점이 없는 경우는 빵과 보관이 편리하고 사용이 용이한 슬라이스치즈를 이용하고

조금의 간식도 이용하기도 했다. 패스트푸드 점은 내가 좋아하는 서브웨이를 주로 이용하였는데 롱풋 하나에 보통 $8~$10였다.

집에 있을 때보다 밥을 더 많이 먹었는데도 불구하고 귀국을 해서 체중계에 올라서니 무려 4kg 이상이나 줄어 있었다.

오전 6시경에 일어나서 저녁 8시 넘어서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도로 사정은 1991년도와는 사뭇 달라진 느낌이었다.

그때는 크루즈 컨드롤을 켜고 다리를 운전대에 올려놓고서 한적한 고속도로를 편안히 달릴 수 있었던 곳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운전할 수 있었던 곳은 없었다.

그동안 미국의 인구도 많이 늘고 교통량도 늘었겠지만 사람들의 마음도 바빠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속도제한을 준수하는 편이었는데 지금은 반대로 준수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인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프리웨이의 속도제한도 최고 65마일이었는데 지금은 보통 70마일, 또는 75마일로 상향조정되어 있었다.

프리웨이 80번의 특정구간은 속도제한이 무려 80마일이었다.

나는 주로 속도제한에서 시속 5마일 정도를 넘어서 주행하였는데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그 정도, 또는 그 이상의 속도를 내었다.

 

내가 이용한 렌트카 AVIS의 네비게이터 하루 챠지가 $15여서 포기하고 지도에 의존하여 운행을 하였다.

서너 번 길을 잘 못 들어선 경우도 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대도시를 진출입할 때, 교통량도 많은데다가 모두들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때문에 초행길에 수많은 표지판을 확인해 가면서 운전하기에는

상당한 위험 부담감을 느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80마일이면 시속 128km이지만 훨씬 더 속도가 빠른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자동차 계기판은 안전운행을 위하여 실제속도보다 더 높게 표시되도록 되어 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다.

미국에서는 실제속도 그대로 계기판에 나타난다.

나중에 알았지만 LA 가자민박집 주인장 말로는 $100 정도면 네비게이터를 장만할 수 있다고 한다.

 

렌트카는 LA의 AVIS에서 폭스바겐 2.5를 선택했는데 누적마일리지 33,864마일에서 출발하여 41,653마일에서 차를 반납하였으니까

7,789마일 즉, 12,549km를 주행한 셈이다. 휘발유 가격은 갤런당 $3.6~$3.9 정도였고, 사용 총연료비는 예상대로 $800 쯤이었다.

 

2개월의 여행중에 외로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산악자전거 라이딩 중에, 하이킹 중에, 그리고 관광지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보여준 친절과 친밀감 때문인 듯하다.

그들 중 많은 이들에게 이번에 촬영한 사진들을 내 블로그에 포스팅한 다음에 블로그로 초대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하고, 특히 이것저것 먹거리를 챙겨주신 덴버의 M마트 사장, 정의파 이주봉 사장님께 감사를 전하고,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이틀 밤을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게 잠자리를 제공하여 주신 김상권 선생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꼭 부산에서 다시 해후하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들어갈 때와 나올 때 각각 3일 밤을 지낸 LA의 가자게스트하우스 사장님에게도 감사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제일 감사할 사람은 나의 아내이다.

일말의 아무 근심도 없이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은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는 집을 지켜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행이 할만한 것은 돌아올 수 있는 집이 기다리고 있어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