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자전거여행

17년 10월 남강라이딩1(부산-함양)

박희욱 2017. 10. 23. 03:11

남강자전거여행은 언젠가 해보겠고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실행한 것은 매우 급작스러운 것인데, 

그것은 남해안 섬여행을 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4대강 종주는 물론이고 내가 알고 있는 큰 강은 모두 종주를 해본 셈이지만 유일하게 아직 못해본 곳이 낙동강 지류인 이 남강이다.

남해안보다는 남강쪽의 기온이 낮을 것이기 때문에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먼저 남강여행을 실행한 것이다.


예정은 함양에서 남지까지였으나 진주에서 중단하여야만 했다. 

진양호에 접근하기 시작해서 바람이 점점 세차게 불기 시작했고, 진주를 빠져나갈 시점에는 더 이상 주행이 어려웠다.

즐거워야 할 여행을 힘듬을 무릎쓴 고행이 될 필요는 없다 싶어서 되돌아서고 말았다.

경상남도 지역에 강풍주의보가 발령되어서 내일도 바람이 강할 것으로 예상되어서였다.


우리나라 강들을 종주해보면 모든 강들이 대동소이해서 그 강들의 특징을 말하기가 나로서는 매우 어려운데 남강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자전거길이 나지 않아서 강둑을 따라서 주행하는 완전한 종주는 불가능한데, 머지 않아 자전거길이 조성되기를 기대해 본다.




함양-진주 지도




10월 20일(금) 맑음


오전 9시 10분: 수영현대아파트 출발

오전 10시 20분: 노포터미널 도착

오전 10시 45분: 노포터미널 출발

오후 3시 정각: 함양도착(진주에서 환승)



함양에 도착하여 곧바로 산청까지 주행해서 내 친구 윤강수내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려고 작정을 했었지만 

초행길을 늦은 시각에 주행하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엘도라도 모텔에 투숙을 해버렸는데 그 친구가 모텔까지 나를 데리려 왔다.

지불한 호텔료를 되돌려 받기도 그렇고, 

또 함양에서부터 주행을 하고 싶어서 자전거와 짐을 모텔방에 두고 산청에 있는 그 친구를 따라 나섰다.




출발하는 시각의 수영강은 이렇게 화창하였다.





온천천에는 초등학생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벌써 가을소풍인가?





멀리서 본 함안읍 전경





모텔에 여장을 풀어놓고, 

내일 출발할 길의 초입을 확인하기 위해서 답사차 나와서 보니 멋진 공원이 있었다.





모텔에 투숙할 것 없이 여기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해야했다.





이것이 남강의 상류인데 여기서는 위천이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이것이 산청에 닿으면 이름이 경호강으로 바뀌고 그것이 진양호에 다다르면 남강으로 바뀌는 것이다.





상류측으로 본 모습





붕어곰탕

친구가 산청의 별미라고 붕어곰탕을 추천하였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새로운 것을 먹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서 권하는데 따랐으나

미식가가 못되는 나로서는 별로였다.




10월 21일(토) 맑음

오전 12시 40분: 함양 엘도라도 모텔 출발

오후 04시 정각: 신안 야영장 도착


아침 일찍 친구와 함께 집 뒤로 산책을 나갔다.

친구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함양으로 돌아와서 

오전 11시 40분에 모텔을 출발했으나 모텔의 냉장고에 식품을 두고 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다시 되돌아가서 12시 40분에 출발하였다.




어린 시절의 시골에서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안개낀 풍경을 

도시에 사는 지금은 일년중에서 몇번이나 볼 수 있을까.










나는 구절초라 했는데 친구가 쑥부쟁이라고 알으켜 주었다.





강아지풀은 아침햇살을 받아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나타낸다.















이 안개는 여백이다, 여백이 있는 풍경은 아름답다.

우리 현대인은 여백이 없는 삶을 살고 있지나 않는지.





얘야, 집 잘 지켜라!





친구의 집

부산을 떠나서 여기 산청에 정착한 것이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정년퇴임을 하고나서 지금의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서 제일의 황금기라고 한다.

젊은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고 했는데 그 점은 나도 마찬가지다.





알고 보면 삶은 이 버섯처럼 단순한 것인데...

우리는 왜 그렇게 복잡한가.


이 친구의 정치적 시각이 나와는 사뭇 다른 것 같았다.

사실, 내가 보는 시각은 그와 다르지만 이제는 정치적인 나의 시각도 내 스스로 신뢰할 수가 없다.

한정된 나의 인식능력과 빈약한 정보와 한정된 내 경험을 바탕한 나의 견해가 옳을 수가 있겠는가.

정답은 옳고 올바른 견해가 아니라 무견해이지 않을까 한다.

내가 가야할 길은 역시 무견해이지 싶다.

무견해!


근 30년전 해인사에 하계연수를 갔을 때 강연하시는 스님의 법명이 無觀이었다.

그 스님의 강연내용은 아무런 인상도 남지 않은, 매우 실망적인 것이었지만 그 법명만은 인상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나는 無觀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이 난다, 강연의 제목이 인과법이었다.

그 스님의 강연내용이 믿도 끝도 없었던 것을 나는 인과법이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나는 귀담아 듣기 위해서 의자를 제일 앞쪽으로 들고 가서 앉아서 경청을 했었다.

우리는 그 인과법을 믿음으로서 고통을 겪고 있다, 인과법은 선악을 분별하게 되는 원인으로서 기능한다.

붓다는 결코 인과법을 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들의 몰이해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본다. 


우리가 어떤 견해를 가지는 것은 사물에 관하여 인과법을 통하여 보기 때문이다.

인과법을 가지고서는 無觀에 이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