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온 글

앵그르와 드가

박희욱 2023. 1. 13. 06:40

앵그르는 젊은 미술학도 드가에게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선이라네.

선 그리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게.

선을 제대로 그릴 줄 알아야 색을 칠할 수 있는 법이라네.

그리고 그림의 소재는 본인의 개인적인 경험이나 생활에서 찾도록 하게.

내 기억과 삶을 그릴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화가라네."

 

앵그르의 짧은 충고는 젊은 화가가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하는 사표(師表)가 되었다.

드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수 천 번의 드로잉을 거듭했다.

드가가 그린 인물에서 유독 역동성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그만의 탁월한 드로잉 솜씨가 한 몫 했기 때문이다.

드가의 그림이 다른 인상주의 화가들에게서 느껴지지 않는 구도의 섬세함과 치밀함이 배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그림은 결국 수많은 선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드가는 깨달은 것이다.

 

또한 드가는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그리지 않았다.

즉, 자신이 본 광경을 머릿속에 깊이 간직해 둔 채 작업실로 돌아와

그 잔상을 자신의 다른 기억들과 조합해 형상화 해 냈다.

화가의 기억과 삶을 작품에 녹여내야 한다는 앵그르의 금언(金言)을 드가는 작품을 통해 구현해 낸 것이다.

 

드가는 인상주의의 색채, 역동적인 동작을 포착해내는 예리한 감각,

현실주의(혹은 자연주의)적 관찰 방법과 안정적인 고전주의의 미를 두루 갖춘, 한 마디로 매우 유능한 화가였다.

그래서 후대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인상파 화가였지만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를 초월했다고 칭송한다.

드가가 남긴 대단한 미술사적 족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자화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여전히 가슴이 아려온다.

얼굴이 유난히 길었던 이 화가는 평생 외롭고 쓸쓸했다.

죽은 뒤에 찾아온 영광은 과거로 소급해서 살아 있었던 화가를 위로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술 작품은 위대하게 기억되지만 그것을 만든 화가의 고단한 삶이란 덧없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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