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나의 구한말 역사관

박희욱 2024. 6. 30. 19:43
 

아씨조선말기에 조정에 불만을 품은 군인들이 일으킨 1882년의 임오군란,

박영효가 주도한 1884년의 갑신정변

최재우에 의한 1894년의 동학란, 등의 저변에는 공통적으로,

일부 한국인들에 의해서 국모로 추앙받는 명성황후의 제거가 그 목적이기도 했다.

모든 시도가 실패하고, 마지막에는 1895년에 대원군이

일본공사 미우라에게 민비제거를 부탁했다.

그리하여 대원군이 대동한 일본의 지식인들과 함께 경복궁까지 진입해서

결국에는 일본 낭인들의 손에 살해되었다. 이때 조선의

훈련대도 민비시해에 동참하였다.이것이 1895년도에 발생한 을미사변이다.

 

동학란이 발생하자 민비가 청군을 끌어들임으로써 1894년에 청일전쟁이 일어나고,

일본이 승리함으로써 조선은 500년간에 걸친 중국의 속국신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1904년에 한반도땅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 간에 벌어진 패권전쟁이

바로 러일전쟁이었다. 결국 일본이 승리한 것은 한반도땅의 행운이었다.

 

그 이후 1909년도에 안중근이가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함으로써

이씨조선은 종말을 고하고 1910년에 대일본제국에 병합되어서,

비록 이씨왕조는 일본천황가에 복속되었지만,

오랜 500년간의 오욕의 이씨조선은 망하고 말았다.

이씨조선이 망하자 중국의 지식인 루쉰은 이렇게 말했다.

'조선이 망해도 슬퍼할 것이 하나도 없다. 정말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려고 했다면

일본이 100개라도 어찌 할 수 있었겠는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도 이렇게 말했다.

'조선이 러시아에 넘어가기보다는 일본이 통치하는 것이 낫고,

조선인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나는 1910년도의 한일합방은 한반도땅의 축복이었던 것으로 믿는다.

그 의유를 든다면,

1. 이씨조선 500년동안 최대 40%를 넘나드는 노비를 해방시키고

   신분제를 폐지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노예해방에 해당 하는 역사의 큰 진보였다.

2. 이씨조선 자력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했던 근대화를 이루었으며,

    산업화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3. 일제에 의해서 한반도땅에 비로소 근대교육이 실시되었다.

4. 1910년부터 1939년까지 한반도의 경작지가 50% 증대되었고

    쌀생산량이 2배로 증가하였다.

5. 그 기간에 평균수명이 25세에 불과했던 것이 두배로 늘어나고

   1천만이었던 인구가 2천만으로 불어났다.

6. 한국인들이 수탈이라고 하는, 일제가 거둬들인 세금은

   일본이 한반도땅에 투여한 재정의 1/6에 불과했다.

 

동남아로 진출하려는 러시아는 한반도땅을 탐내고 있었다. 

자국의 보호국이 되어달라고 애걸하는 한반도를 접수하는 것은 시간문제였으나

자기 코가 석자였던 러시아가 그 시기를 미루고 있었다.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점령한 것도 러시아가 한반도를 점령하는 경우를 대비해서

해군기지를 건설하여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일본은 러시아의 남진을 알아차리고, 러시아에 만주땅은 양보하겠으나

한반땅은 중립지대로 하자고 제기했으나 거부당하였다.

그래서 일본은 한반도 39도선을 경계로 하자고 다시 제안했으나

자신만만했던 러시아는 이것마저 거부하였고, 끝내 러일전쟁이 발발하고

양측 모두 20만의 사상자를 발생하고 일본이 겨우 승리하고 말았다.

그 결과 일본은 전세계로부터 한반도땅의 병합을 인정받게 되었다.

 

다시 말지만, 나는 일본의 한반도 병합은 한반도땅의 축복이었다고 믿는다.

만일 일본이 러시아에 패전했다면 한반도땅은 러시아에 복속되고,

소련연방을 거쳐서 지금쯤 카자흐스탄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들 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역사는 반성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지 자랑하거나 자위를 위한 것이 아니며,

더우기 이웃나라의 반성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은 국제상황을 오판하여 오욕의 역사를 반복할 위험성이 있다.

실재로 1592년의 임진왜란도, 1910년의 한일합방도

반일감정으로써 국제상황을 오판한 것이었다.

조선말기, 일본은 한때 조선을 굳건한 독립국가가 되어서 중립화함으로써

서양제국주의에 대한 방파제가 되기를 희망했으나 어림없는 일이었다.

일본의 한반도 병합을 반대했다가 정쟁에 패해서 한반도 통감으로

부임했던 인물이 바로 이토 히로부미였다.

 

안중근이가 그를 살해함으로써 한반도병합이 앞당겨졌고, 그래서 외국인들은

조선을 위해서 가장 해로운 짓을 한 사람을 바로 안중근으로 꼽는다. 안중근이는

한반도땅의 독립에 이바지 하기는 커녕 해만 끼쳤다. 러일전쟁으로 재정이 부족했던

일본이 한반도땅의 병합을 미루고 있었던 것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했고,

조선인에 대한 악감정을 가졌던 데라우치 마사다케가 총독으로 부임하게 됨으로써

탄압을 유발하였으며, 그의 테러리즘으로 조선은 국제적으로 동정을 받지 못했다.

미래에 안중근이와 같이 지나친 반일감정으로 인하여

국제정세를 오판을 하는 한국인이 나타나지 말기를 바란다.

 

작금에도 한국의 정치인들은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정치에 이용하고, 또

그 반일감정에 아부함으로써 국익에 반한 국제외교를 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김영삼 전대통령의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한 머저리 같은 대통령도 있었다. 일본을 향한 적대적 외교는

국익에 반하는 짓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민족주의를 내세워서

반일감정을 부추킴으로써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데 이용하고,

반일, 반미 성향을 부추기고, 대신에 친북, 친중공 성향을 은근히 유도하고 있지만,

그 민족주의는 편협한 종족주의에 불과하다.

 

첨언해서, 서양제국주의 식민지를 개척하는 이유는

첫째, 상품의 시장을 얻기 위해서

둘째, 플랜테이션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셋째, 자원을 값싼값으로 얻기 위해서

 

세계최빈곤국 조선이 일본의 상품시장의 가치가 없었고,

플렌테애션 농지는 물론 아니고,

탐낼만한 자원도 없는 나라였다.

결코 일본이 식민지로서 한반도땅을 탐낸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성난 파도처럼 아시아로 몰려오는 서양제국주의로부터

일본열도를 보전하기 위한 방파제로 삼는 것이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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