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곧잘 나를 철학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다.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는 이제 단 한 사람도 없다.
인류문명 8천년 동안 철학자들이 발견한 진리는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이 하는 일이란 언어를 이성적으로 조합해서 세상의 진리를 그려내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도 턱없이 빈약하고, 더구나
언어는 결코 세상을 그려낼 수 없는 인간의 손가락에 불과하다.
달리 말해서, 철학적 사유는 이성적 체조에 비유할 수 있다.
체조를 아무리 잘해도 산중에서 짐승을 사냥하는데는 아무 소용이 없다.
호랑이 앞에서 체조를 하는 철학자는 잡아먹히고 만다.
인간의 삶 자체가 논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고 감성적이다.
인과법칙이란 말도 가당치 않는 말이다. 인과해석이라고 해야 옳바른 말이다.
그래서 현대물리학에서는 확률론이 나오는가 보다.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수다.
이성은 빙산의 일각이며, 삶은 수면하의 해류, 즉 감성에 따라서 움직인다.
철학자들은 수많은 개념어를 만들어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삶을 낭비케 하였다. 그래서 옛부터 식자우환이라고 했다.
자신의 가슴에 따라서 살면 그만이다, 사유는 필요없다.
사유는 기껏해야 가슴의 시녀노릇을 해야만 한다.
그런 시녀에 이끌려 다니는 것이 철학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