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온 글

시나이반도 다합에서

박희욱 2009. 4. 19. 10:06

  어디로 가나 서양인들은 땡볕 아래에서도 독서를 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머리속에 조금의 여백도 허용하지 않는 그들의 생활습관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들의 건축을 보아도 여백을 그대로 두는 경우가 없습니다. 조각이나 그림이나 문양으로서 채우지 않고는 못배기는 것이 그들의 성향입니다.

 

  동양에서는 그러하지 않지요. 잘 알다시피 여백의 미를 강조하지요. 서양인들은 여백의 중요성을 간과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건축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멍해집니다. 화면의 주체와 여백은 상호보완적이어야 하겠지만, 나로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는 여백이 더 본원적이라고 봅니다.

 

  제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사실은 머리속의 여백의 기회를 많이 갖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음악조차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라는 인터넷이 방해를 하네요.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책을 가져온 적은 없었습니다만, 이번에는 한권의 책을 가져왔습니다. 류시화가 엮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입니다. 그 중에서 시 하나를 회원님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미국 캔터키의 85세였던 나딘 스테어의 글입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운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준비되지 않은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에도 눈길을 자주 주리라


 
의미가 깊은 글이네요... <무소유>의 저자 법정스님과 작가 류시화씨는 같은 코드를 지닌분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역시 류시화의 글은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군요 07.05.01 13:33

 

근데..왜 콩요리는 덜 먹어리라..라고 한 것 일까요?.. 07.05.03 09:19
Maybe, it means that he will follow his feelings, not the thinkings. 07.05.04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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