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erranean 5

지중해5개국30-시리아/알레포/시타델(Siria Alepo)

박희욱 2009. 5. 14. 15:49

시타델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여서 BC16세기부터 역사에 등장한다.

그동안 많은 흥망성쇠가 있었는데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이집트의 람세스2세와 자웅을 겨루었던 히타이트가 장악했던 적이 있었고,

1269년과 1400년에 몽고군이 침입해서 요새로 사용한 적이 있다고 한다.

 

성 주위는 헤자로 깊이 파여있고 성은 가파른 언덕위에 우뚝 서있다.

헤자를 건너는 다리는 유일하게 하나이고, 이 다리에 들어서면 먼저 전초성문이 있고,

다리를 건너 안으로 들어서면 7번이나 꺽어야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어서 성문으로 침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워낙 견고한 난공불락의 성이라서 포위해서 물과 식량공급을 차단하는 작전 외에는 성을 깨뜨리는 방법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나중에 알았지만, 지하 60m 깊이의 우물을 파놓고,

최악의 경우를 대비하여 지하통로를 파서 물탱크와 식량창고와 연결시켜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수차례에 걸쳐서 점령과 파괴를 당하였다 한다.

성벽위에 올라서니 알레포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복구공사가 진행중인데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

 

성문을 되돌아 나오니 바로 앞의 옥외 카페에서 나를 호객한다.

나도 바쁘지 않을 뿐더러 이제는 옛날 같이 많이 보겠다는 여행과는 결별하였으므로

테이블에 앉아서 차를 한 잔 시겼다.

웨이트는 자신을 쿠르드족이라고 밝힌다. 어제 박물관으로 안내했던 젊은이도 쿠르드족이었다.

그외에도 스스로 쿠르드족임을 밝힌 사람이 있었다.

자신들의 고유언어(아랍계통이 아니고 라틴계통이라 했던가?)가 있으며 그것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단다.

조국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이 스며나와 나에게까지 전해온다.

그는 터키에서 피난온 쿠르드 난민을 받아준 시리아에 감사한다고도 했다.

 

쿠르드족은 인구가 3천만이나 되면서도 국토가 없다.

그래서 지금은 터키의 동부에서 핍박을 받고 있으며,

그에 따른 쿠르드 반군이 활동하고 있으므로 터키의 동부에 가면 상당히 살벌한 것으로 전해진다.

시리아가 쿠르드족에 대하여 동정을 베푸는 것은 아마도 오스만 터키 치하에서 겪은 동병상련의 정 때문일 것이다.

터키에서도 반미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럴 때는

오스만터키제국과 쿠르드족 독립문제를 그들에게 상기시켜면 입을 닫았다.

 

다음에는 우마야 모스크를 찾았다.

모스크를 찾아갈 때마다 이상한 것은 보잘것없는 출입구가 여럿이며,

건물규모에 걸맞는 큰 대문이 없다는 것이다.

진입로도 마찬가지여서 큰도로가 아니라 작은 골목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스크의 지붕을 눈앞에 두고도 출입구를 찾느라고 헤매는 경우도 많다.

그러니까 중앙집권적 사고 방식이 아니라 지방분권적인 사고방식이다.

아것은 아마도 이슬람교의 평등사상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란에서는 신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하지 않은가.

 

실재로, 모스크 안에 들어가보면 바닥에 단이나 경사가 없이 그냥 하나의 평면이며 설교단도 없다.

이것으로 보아 설교도 없을 것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신과 인간사이에 아무런 중재자도 두지 않는다고 한다.

모스크에서 기도를 주재하는 이맘이 있지만 지도자 자격은 아니다.

그래서, 무슬림은 기도를 통하여 신과 직접 접한다고 한다.

 

누가 누구에게 설교를 한단 말인가!

신의 소리를 감히 누가 통역한단 말인가!

경전은 무엇이며, 그것을 들고 꼬치꼬치 설교하는 자는 누구인가?

신의 말씀으로써 자신의 목청을 높이는 자는 누구인가?

 

신이 무엇 때문에, 인간이 만든 종이에

인간의 손을 빌려서

인간의 언어로써 기록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신의 말씀이라면, 들에 핀 백합은 어쩌란 말인가!

 

그들이 수천년간 설교한 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부질없는 짓이며

있다면 그들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코란은 언어가 아니라 아름다운 노래라 번역할 수 없으니

그것은 꾀꼬리의 노래를 번역할 수 없슴과 같음이다

그들이 옳다.

 

우마야 모스크는 명성과는 달리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십여명의 노인들이 조용히 앉아 있거나 코란을 읽고 있었다.

나는 중앙에 좌정하여 한 참 앉아 있다가 조용히 물러나왔다.

 

시타델을 구경하고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불러세우고 물었다.

"어디서 왔나?"

"한국에서 왔다."

"북한에서 왔나?"

나는 조금 열이 받혔다.

중동지역에서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반드시 북한인지 남한인지 되묻는다.

그런데 이사람은 숫제 북한에서 왔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정색을 했다.

"너는 왜 나를 북한사람이냐고 묻나? 북한 관광객 본적 있나?"

"없다"

"그런데 왜 북한사람이냐고 묻나?"

"너희는 왜 북한 편이냐? 북한은 굶주리고 자유도 없는데?"

"남한은 미국편이지 않나! 그들은 우리의 적이다! 너도 미국을 좋아하나?"

"젊은 사람은 미국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싫어하고 좋아하고 그런거 없다.

다만, 네가 알아야할 것은 한국은 미국을 이용할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이 이렇게 발전한 것은 미국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미국을 적대시 했드라면 발전은 불가능했다."

그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너희들은 역사적으로 미국에 감정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을 싫어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미국과 싸워서 손해가는 일은 하지마라. 

미국은 자국의 이익을 챙긴다. 한국도 그렇다. 모든 나라가 그렇다.

그러니 너희 시리아도 그렇게 해라!

그리고 시리아가 친북한인 것은 양국의 지도자가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자유가 없다. 너희 나라에는 자유가 있나?"

그는 내말에 수긍이 가는지

"나는 너를 만나서 행복(happy)하다. 고맙다"라고 했다.

 

중동을 여행하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미감정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런만큼 반한감정도 동반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여러 중동국가 국민들의 반미감정에는 국가 지도자들의 의도적인 부추김도 작용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자유국가와 교류하면서 어떻게 독재체재를 유지할 수 있겠는가.

국민들의 자신에 대한 불만을 외부로 돌려서 분출시켜 주는 것이 모든 독재자들이 사용해 왔던 수법이다.

아무튼, 한국은 중둥국가를 잘 다독거려서 반한감정이 생기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우리 정부도 그런 것쯤이야 알고 있지 않겠는가.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미감정도 부풀고 있는 것 같다.

약간 염려가 되는 것이, 강자에 대한 항거가 마치 자신의 정의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썻다는 독일의 한 학자에 의하면 정의란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한다.

그렇지만 나는 ' 힘이 정의이며, 공정이란 더 강한 자들의 私利라고 나는 선언한다.

(I proclaim that might is right, justice the interest of the stronger)'라고한

플라톤의 말은 正義의 定義를 떠나서 진리에 가장 가까운 말중에 하나라고 믿는다.

암사자가 자신이 잡아놓은 고기를 숫사자가 먼저 먹는 것에 항거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나라에는 유달리 권선징악적 전래 이야기가 많다.

그것의 거의 대부분은 약자나 가난한 사람은 선한 사람으로 나오고, 강자나 부자는 악한 사람으로 나온다.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흥부전인데 이런 이야기는 이제 접어 넣었으면 좋겠다.

흥부전은 대책없이 살다가 어느날 로또복권 당첨같은 행운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놀부가 나쁜 놈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부자나 강자가 나쁜놈은 아니다.

 

내 관찰로서는 인간의 윤리는 힘과 상관관계가 없는 것같은데,

우리나라 사람은 강자는 비윤리적이라는 터무니 없는 통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대중의 비위를  맞출 수 밖에 없을 것이지만,

이것이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는 원인이 되는 것 같다. 

힘과 돈은 양날의 칼이라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문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가 있다.

'돈은 행복한 사람 더욱 행복하게 하고, 불행한 사람은 더욱 불행하게 한다'

 

국립박물관에도 들렀다. 건물자체도 초라할 뿐만아니라,

유물은 전시를 했다라기보다 그냥 유리상자에 집어넣어 놓은 것 같다.

시리아 사람들이 언제쯤이나 자국의 역사를 연구하고 유물을 잘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것이 무엇이 그렇게 중요한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일단 관람하는 사람에게는 재미가 없다.

 

유리상자속에 있는 것들은,

애지중하던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어찌, 덧없는 유물이 되어 홀로 남았는가!

우리는 이렇게 덧없는 것들을 위하여 삶을 바친다.

 

다합의 철공소에서 만들어 꽂았던 자전거 볼트에 문제가 있어서 철공소에 갔더니 여간 친절하지가 않다.

세수도 하라고 일러주고, 커피도 주고 물도 내놓는다.

그들은 스스로 아르메니아인이라고 밝힌다.

조국을 잃은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밝힌다.

인도에서 만난 티베탄들도 그랬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제 사회에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알리고자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자신들의 선조는 1915년 터키가 아르메니아땅을 강점하면서 대학살을 저지를 때 시리아로 피난왔는데,

그 때 그들을 품어준 시리아에 감사한다고 했다.

시리아는 현재 터키 땅으로 되어있는 터키의 지중해 일부분을 지도에는 시리아 땅으로 표시해 놓고있다.

시리아 북부 터키 접경지대는 쿠르드족의 땅일 것임에 틀림없다.

먼 장래에 터키가 힘이 약해지고 쿠르드족이 독립하는 날이 오면 그때는 쿠르드족과 시리아는 적대관계가 될 것이다. 

 

자전거 여행을 할  때 길찾기가 가장 어려운 경우는 도시를 빠져나갈 때나 반대로 도심지로 진입할 때이다.

그래서 내일의 수월한 출발을 위하여 미리 그 길을 알아 놓으려고 나섰는데 여간 힘들지 않다.

중동지역은 영어보다는 프랑스어의 영향이 더 큰 것 같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서 수없이 물어야 했다.

또, 여행을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인데 외국인들은 한국사람보다도 지도를 잘 볼 줄 모르는 것 같다.

거주지 주민들한테 지도를 펴보이면서 현재의 위치를 찍어달라거나 거리명을 보이며 알으켜 달라고 하면

한 참 더듬는 경우가 많아서 답답할 때가 많다. 이런 것을 볼 때면 한국사람이 훨씬 더 똑똑한 것 같다.

 

호텔에 돌아와서 매니저에게 'IZAZA로 가는 길을 가르켜 주세요',

'터키 가지안텝으로 가는 길을 가르켜 주세요'라고 시리아언어로 메모지에 써달라고 해서 내일의 출발을 준비했다.

 

 

 

 아래 사진들도 풍경을 위한 촬영이라서 성을 제대로 보여주기한 사진으로서는 부적격이다.

 

 

 

 

 

 

 

 

 

 

 

 

 

 

 

 

 

 

 

 

 

 

 

 

 

 

 

 

 

 

 

 

 

 

 

 

 

 

 

 

 

 

 

 

 

 

 

 

 

 

 

 

 

 

 

 

 

 

 

 

 

 

 

 

 

 

 

 

 

 

 

 

 

 

 

 

 

 

 

  

 

 

 

 

 

 

 

 

 

 

 옛날의 돌포탄

 

 

 

 성으로 진입하는 다리

 

 

 

좌측의 망루는 언덕을 기어오르는 적을 공격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