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erranean 5

지중해5개국31-터키/알레포-카이세리-카파도키아(Siria Alepo-TurkeyCapadokia)

박희욱 2009. 5. 16. 05:25

5월12일

시리아 알레포부터는 마음을 다잡아 먹고 자전거로 터키의 가지안텝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밤중부터 뇌성이 요란하더니 일어나 보니 비가온다.

이번 여행에서는 비를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는데 하늘이 말리는가 보다.

알레포에서 하릴없이 호텔에 죽치면서 하루를 낭비할 수 없어서 버스로

터키의 안타키야로 넘어가려고 버스 터미널에 가보니 내일 오후 5시에 버스가 있다 한다.

 

마침 1인 요금이 $16달러인 합성택시가 있다. 그

런데 운전사는 나의 자전거를 보더니 $30달러를 내란다. 조금 깍자고 하니까 $25달러를 요구한다.

사실, 하루 더 기다려서 내일 가느니 이 요금으로 오늘 출발하는 것이 낫다.

그러나 나는 미련없는 척하고 두말없이 돌아서버렸더니 $20달러만 내란다.

이런 곳에서는 시끄러운 말이 필요없다.

배짱으로 나가든지 기든지 둘 중 하나다. 승객은 모두 3명이었다.

 

점점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터키 국경에 도착하자 빗물이 도로위를 흘러내릴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

무엇인가 모르지만  운전사가 서류를 들고 왔다 갔다하는데 택시비를 그만큼 받을 만하다 싶다.

출입국 수속을 하는데 줄이 길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처마 밑에서 비를 맞으면서 기다리자니 얼씨년스럽다.

양국간에 무역하는 대형 트럭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데 이렇게 신속한 통관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무역업발전에도 지장이 있겠다. 세관시설도 너무 열악하다.

터키쪽 세관시설도 마찬가지여서 터키의 경제수준도 시리아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했는데

막상 안타키아에 들어와서 보니 시리아와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고 수준이 높고 훨씬 활기도 있어 보인다.

 

터키의 안타키아로 들어오니 시리아쪽과는 확연히 차이가 날 정도로 땅이 비옥해 보인다.

이곳은 지중해 연안에 가까운 곳인데 시리아 측에서는 지도에 자기네 땅으로 표시하고 있는 지역이다.

실재로 이 지역 사람은 아랍인들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좋은 땅인만큼 터키가 양보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시리아 전체가  오랜동안 오스만 터키 땅이었다.

 

중동지역의 땅들이 이렇게 척박하기 때문에 가난하고,

가난하니까 힘이 없고, 힘이 없다 보니 언제나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는가 보다.

고대 그리스, 로마로부터 비잔틴제국, 셀주크 터키, 오스만 터키, 프랑스, 영국 등으로부터 지배를 받아야 했다.

거기다가 어느날 갑자기 유대인조차도 유럽인화하여 돌아와서는 구미세력을 등에 없고

아랍민족 형제들을 쫓아내고 다시 터를 잡으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어쩌겠는가.

힘쎈자들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인간의 감정은 그럴 수도 없는 것이 딜레마이다. 지도자는 국민의 감정에 영합하고 또,

그 감정을 이용하여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미국 워싱턴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기념관과 독일 뮌헨의 다하우 유대인수용소를 구경하였다.

나는 다하우에서 어린 꼬마아이가 엄마손을 잡고 걸어가는 사진 한장을 보고서 오랫동안 눈물지어야 했던 적이 있다.

그 사진 아래에 이렇게 써 놓았기 때문이다. '가스실 가는 길'.

홀로코스트 기념관에서도 비참했던 유대인들의 모습을 보았고,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은 유대인들이 화장되면서 남긴 산더미 같은 안경을 찍은 사진이다.

우리는 모두 신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통하여 나찌의 잔학상을 잘 알고 있다.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마지막 방의 크다란 벽에는 이렇게 써놓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네가 보았던 것을 잊지마라.

그리고 네가 보았던 것을 네 자식에게 전해주고,

그 자식은 또 그 자식에게 전해 줌으로써 영원히 기억되게 하라!

 

내 생각으로는 이렇게 해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유대민족으로서  

그 굴레를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 여겨진다.

나는 용서니 뭐니 하는 그런 쓸데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먼 훗날 또다시, 유민이 되어 세계 각처로 뿔뿔히 흩어져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며,

어쩌면 그것이 유대민족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시리아 알레포에서 터키 안타키아로 가는 길

 

 

 

 

 

 

 

 

 

 

 

 

 

 카이세리에서 카파도피아 가는 길

 

 

 

 

 

 

 

 

 

 

 

 

 

 농촌주택들도 사는 형편이 좋아 보였고,

가정집을 방문한 적이 있는 사람의 말에 의하면 대체로 잘 갖춰놓고 산다고 한다.

 

 

 

 높이 3,912m의 화산. 

 워낙 높은 산이라 카이세리에서 카파도키아에 도착할 때가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여기서 어떤 소치는 노인이 나를 불러서 물을 주었다.

 

 

 

 터키에서 주택의 지붕과 벽은 저러한 색갈이다.

 

 

 

 터키의 중앙부에 있는 카이세리부터는 자전거로 주행하였다.

교통량도 적고 조용한 길을 하염없이 달렸다.

 

 

 

 한반도 넓이의 3.5배나 되는 터키가 우리나라처럼 아둥바둥한다면 어렵지 않게 부국이 될 것이다.

 

 

 

 이렇게 더넓은 평원은 터키인들로 하여금 일찍이 산업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욕구를 갖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을까?

 

안타키아에서 가지안텝으로 가는 버스는 오후 2시에 있었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시내를 둘러보고 케밥의 고향 터키에서 도네르 케밥을 먹어보니

시리아에서보다 밀빵이 쫄깃쫄깃하고 맛이 좋으며 훨씬 위생적이다.

거기다가 고추피클도 내어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전혀볼 수 없는

매우 조그마한 고추가 적당히 매워서 내 입맛에는 그만이다.

비싸지도 않아서 여행 내내 나의 주식이 되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또 비가 쏟아진다.

아득히 넓은 들판을 우측에 끼고 얼마간 달리다가 높다란 산을 구불구불 올라가는데

만일 자전거를 탔더라면 고생께나 했겠다.

이렇게 넓고 풍요로운 땅을 가지고 있다면 무었 때문에 공업화를 한다고 서둘겠는가.

사실, 터키를 유럽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터키의 농업경쟁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좀 졸다가 눈을 떠보니 좌측창으로 지중해가 보인다. 비가오는 것이 유감이다.

 

버스가 도착한 가지안텝 버스터미널은 시에서 상당히 떨어진 외곽에 있었다.

터미널 주변에 호텔이 있음직한데 보이지 않았다.

자전거에 패니어를 부착하고 시내로 한참 들어가도 호텔이 보이지 않는다. 빗

방울은 굵어져서 길바닥에 빗물이 흐르고,

내 자전거와 지나가는 차량에서 튕긴 시커먼 빗물로 엉망이 되었다.

날은 점차 어두워지고 이상하게도 도시는 제법 큰데도 불구하고 호텔이 나타나질 않는다.

이럴 때는 낭패감과 함께 난감해진다. 현지인에게 물어도 호텔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이렇게 호텔이 눈에 띄 않는것이 참 아상한 도시다싶다.

어떤 사람이 한국의 삼환기업에서 4년간 일했다는 사람을 불러왔는데

한국어가 약간 되기는 했지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시내의 반대편 끝 지점까지 들어가서 겨우 하나를 발견하였다.

빗물에 젓은 자전거와 옷과 패니어를 씻는데 한참 동안 시간을 소비하여야 했다.

호텔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친절히 대해줘서 좋았다.

 

5월 13일

아침에 일어나보니 하늘에 구름이 두껍게 덮혀 있었다. 비를 맞기는 정말 싫다.

더구나 이번 여행에는 비가 내릴 것을 전혀 예상하지 않아서 방수준비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하릴없이 하루를 보낼 수도 없어서 일단 자전거를 타고 호텔을 나서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망서림없이 버스를 타야하니 오히려 잘 됐다.

 

버스가 처음에는 평야를 달리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수많은 산군들 사이로 오르락 내리락 하느라고 허덕거린다.

자전거를 탔더라면 엄청난 생고생을 하였겠다. 정말 자신이 없어 보였다.

비록 내가 록키산맥을 여섯번이나 넘은 적이 있지만.

짙은 안개가 끼인 지역도 있고, 비도 계속 오락가락한다.

 

버스 바깥 기온이 상당히 낮은 것 같고, 5월인데도 불구하고  

버드나무, 포플라 등이 새싹이 나온지 얼마 되지 않는 것 같다.

차창으로 보이는 꽃들도 초봄의 꽃으로 보인다. 

가까운 산에는 잔설이 보이고 먼 곳의 높은 산은 머리에 눈을 이고 있다.

처음에는 위도가 높아져서 그런가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바로 고원 즉, 아나톨리아 고원이기 때문이었다.

도로가 그렇게 기복이 심했던 것도 고원을 오른다고 그러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고원에서는 도로의 경사가 완만하였고 기복도 별로 없었다.

이 고원에는 강수량이 적어서인지 강을 볼 수가 없었고 어쩌다 작은 냇물만 보였다.

버스 차장이 가끔 커피, 콜라, 홍차 등의 음료를 서비스하는데 터키의 차장은 모두 남자이다.

터키도 이슬람국가이기 때문에 여성의 사회진출이 별로 없어 보인다.

여성해방운동이 여성들을 남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지만 그만큼 직업에 구속시킨 결과를 초해하지 않았을까.

오늘날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면서 결국 서로가 편하지 못한 세상이 되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버스는 가지안텝을 출발하여 352km를 달려서 5시간 40분만에 카이세리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