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연기설을 설명한 것으로, 브리태니커 사전에서 발췌한 글이다.
대승불교에서 중관학파(中觀學派)의 개조인 용수(龍樹)는 연기의 관계성에 주목하여 이로부터 空의 사상을 이끌어냈다. 즉 모든 존재는 연기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은 어떠한 존재도 타자와의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든 존재는 자성(自性)을 결여한 空한 존재이다.
한편 중국의 화엄종에서는 유식과 여래장사상을 결합하여 법계연기설(法界緣起說)을 주장했다. 이것은 현상계를 떠나 따로 실체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이 세계 그대로가 궁극적인 진리의 세계라고 말한다. 따라서 진리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모든 존재는 서로 끝없이 연관되어 있으며, 상즉상입(相卽相入)하여 두루 걸림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그슬러 올라가 보라.
지금의 나,
탄생시점의 나,
자궁속의 나,
수정난의 나,
정자와 난자의 나,
여기까지 나의 불변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유전인자이며, 그 나머지는 음식물이다.
유전인자는 조상으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온 것이다.
그것을 계속 그슬러 올라가 보자.
그 유전인자는 원숭이의 유전인자로부터 내려온 것이며,
그것을 그슬러 올라간다면 아메바에 이른다.
거기서 또 올라간다면 바이러스에 이르고,
바이러스는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선에 있는 존재이다.1
바이러스는 분명히 물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체로서 작동한다.
그것은 물질에도 의식이 있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유전인자라할지라도 그것이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생명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그 구성물질이 미세한 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본다.2
생명의 발생과 진화는 물질의 의식에 의한 것이다.3
지금 나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분자는 태초에
바이러스를 구성했던 분자와 같은 분자에서 연유한다.
지금 나의 폐로부터 흡입한 산소분자는 예수가 흡입한 산소분자일 수도 있거나
아니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바라바가 흡입했던 산소분자일수도 있다.
한번 더 말한다면, 내 머리가락이나, 우리집 강아지의 털에 있는 단백질 분자는
10만전에는 어느 맘모스의 머리카락을 동시에 구성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의식은 우주 만물의 의식에서 연유한 의식이다.
그러므로, 의식에는 경계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바다위의 파도와 같다.
바다로부터 파도를 분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주로부터 나를 분리할 수 없다.
내가 죽어도 나는 그대로 우주에 존재해 있다.
그러나 나는 없다. 본래부터 나라는 것은 없었다.
불교의 연기설은 자아의 개체성을 불식시키는 설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이해의 유의점
연기설의 이해를 보충하기 위하여 역사적 관점에서 생명발생현상을 연기적으로 설명하였지만,
본래의 연기설은 시간적 관점이 아닌, 현상적 관계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연기설을 인과법칙과 같은 시간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