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실질적으로 팝송을 접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점심시간의 학교운동장이었습니다.
잠시 교정에 나가서 휴식을 취하면 그때마다 들려왔던 노래가 사이먼과 가펀클의 앨범이었지요.
아마도 그 방송실 친구들도 이 듀엣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아직도 그 듀엣에 필적할만한 화음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는 모릅니다.
대학에 입학하고서도 그의 노래를 많이 들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아마도 대학생이라면 예외가 없었지 싶습니다.
그의 노래중에서 오늘은 <The Boxer>를 듣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처음으로 그 가사의 내용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내가 왜 고등학교시절에 이 노래에 끌렸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잠이 많은 나는 잠과 씨름하며, 타고난 재주는 별로였지만 나름대로 정말로 치열하게 공부를 하였지요.
이 헝거리 복서 Benny Perat가 장래에 살아가야 할 방편이 복싱이었던 것처럼 나에게는 공부밖에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가난한 교사의 아버지와 5명의 동생을 가진 나로서는 오직 내 자신만 믿을 수 밖에 없었지요.
아버지는 내게 인문계가 아닌 실업계 상업고등학교 진학을 권했습니다.
자식을 모두 대학에 보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지요.
나는 몸이 튼튼한 것도 아니고, 손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술적 소양도 믿을 것도 못되고, 나의 사회성이나 사교성 같은 인성도 부족했으니까요.
대학에 들어가서도 이 노래에 이끌렸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군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신도 없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링에 오르는 복서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고등학교 1년 때도 미래가 결코 행복할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잠시 죽음을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군복무 후 대학에 복학하여서도 미래가 절망적으로 보였습니다.
내가 꿈꾸는 미래란 자유로운 삶이었습니다.
내가 자유를 갈망하는 것만큼이나 그 미래가 절망적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Benny Perat처럼 링에서 쓰러지지도 않았고,
남보다 일찍 링에서 내려와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까요.
쓸데없이 주먹을 날리면서 이리저리 굴러다녀봐야 아무리 잘되어도, 결국은
고향의 시냇가에 앉아서 흐르는 물결과 넌즈시 마음을 같이 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폴 사이먼과 아트 가펑글은 어린 시절 친구사이였으며, 1960년대에 큰 명성을 얻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The Sound of Silence(1964년)’, ‘Mrs. Robinson’(1969년), ‘Bridge over Troubled Water' (1970년)등이며, 이 곡들은 모두 폴 사이먼에 의해 작곡되었습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이 1981년 진행했던 뉴욕 시 센트럴 파크에서의 무료 공연은, 약 5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역사상 가장 큰 공연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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