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글

세상과 꿈

박희욱 2016. 10. 1. 07:44

나는 어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으로 부임을 받아서 교무실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잡무를 보고 있었다.

불현듯 부임을 받은지 몇날 며칠이 지나도 아직 담당학급 학생들과 대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이미 오후시간이 되어서 늦었지만 그래도 담당 학급의 학생들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생각에

교실에 들어가 보았더니 몇몇의 학생들이 교실에 있었다.


그들만이라도 모아놓고 대화를 해보겠다고 학생들의 의자에 앉아 있는데 밖에 나가 있던 여러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다시 교탁으로 자리를 옮겨서 학생들을 자리에 앉히고 인사말을 시작하였다.

먼저 부임을 받은 이후 여지끝 대면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해서 학생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에,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는 그들에게 각성이 되고 조언이 될만한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하였다.


그런데 교실의 분위기가 무척 산만하였고,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주목하도록 주의를 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재차 주의를 주어도 주목은 커녕 일부 학생들은 일어서서 체육시간에 받은 물품들을 서로 나눠주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는 교사로서의 권위가 무너지고 힘이 빠지는 순간이다.

결국, 내 경험을 그들과 공유하여 주겠다는 의도가 무참히 깨지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오늘은 이것으로 끝!"하는 말을 내뱉으면서 나는 교실을 나와버렸다.


아침에 깨어보니 이것은 꿈이었다.

나는 깨어나서도 무례한 그 학생들이 무척 불쾌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뇌리속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꿈속의 그 학생들에게 화를 내고 있지 않은가?

그 학생이 문제인가, 그 꿈이 문제인가?

그 꿈은 내가 꾼 꿈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문제는 그런 꿈을 꾼 내가 아닌가!


꿈은 꿈일 뿐이다.

그러니 꿈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꿈을 꾼 내가 문제 아닌가?


마찬가지로, 내가 사는 세상은 그런 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사는 세상은 아무른 잘 못도 없고, 아무런 책임도 없다.

더 나아가서, 내가 사는 세상이 바로 나이고,

그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지 아니한가.


세상과 나는 둘이 아닌 하나이다.

梵我一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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