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1월의 광안리

박희욱 2016. 11. 1. 11:40

<11월>


오늘은 11월의 첫날이군요.

예전 같으면 11월이 가장 싫은 달이었습니다.

푸르러던 나뭇잎이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었다가

한 잎 두잎 떨어져서 나무들이 자신의 앙상한 나신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계절이었지요.

겨울보다 더 추운 듯한 을씨년스런 모습이 내 모습 같아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이를 좀 먹고 보니 그 11월달도 이제는 싫지 않은 달이 되었습니다.

거추장스런 모든 옷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벌거벗은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실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림을 그릴 때도 잎이 무성한 나무보다는 잎을 모두 떨구고 변치 않는 튼실한 둥치와 가지를 더 그리고 싶어집니다.


풍경을 볼 때도 마찬가집니다. 예전에는 숲이 좋았습니다.

이제는 숲이 없는, 일면 황량하고도 광활한 풍경이 더 좋아졌습니다.

이럴테면 볼리비아의 아타카마 사막이나, 알래스카의 풍경이나, 북부 노르웨이의 풍경이 더 그립습니다.

그런 대지가 장엄한 모습을 드러낼 때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움 아닌 아름다움입니다.


오늘 광안리 바닷가에 나가 보니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습니다.

겨울 내음이 물씬 풍기는 듯하는군요.

자랄 때는 추운 겨울이 겁이 났습니다만, 이제는 아무 계절도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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