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eland

출발하면서

박희욱 2018. 5. 14. 07:30

2006년도에 학교를 그만두고 퇴직을 한지가 12년이 넘었다.

그것은 사회가, 또는 부모들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의 길이었고, 돌이켜 보면 아무나 할 수 없는 용단이었다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은 성격이라고 생각하는데 어찌 그런 결단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내 뜻대로 사는 자유로운 삶에 대한 갈구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리라.


일찌기 젊었을 때, 무엇을 소유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소진하는 우리 사회가  내게는 하나의 정신병동으로 비춰졌었는데, 

나는 그 병동으로부터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기 직전에 보았던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보면서 나는 온몸으로 전율하였다.

내 삶에서, 나는 그 영화에서 한밤중에 정신병원을 탈출하는 인디언 추장같은 배역을 할 수 있었다고 여기며, 

그것은 전적으로 나의 행운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매년 1~2번 하는 여행이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3개월을 훌쩍 넘어버리는 긴 여정이다.

출발할 때마다 부담스러움을 숨길 수 없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힘든 여행을 계속하는 것일까.

집에 있어도 심심하지 않게 편안히 지낼 수 있지만 동일한 생활을 습관처럼 반복하는 것은 삶의 낭비다.

나는 나의 집에 정체되어 있고 싶지 않다. 진정한 삶은 하나의 과정으로서 존재해야 할 것이다.


바로 곁에 산이 있는데 편하다고 해서 로드바이크로 도로만 탈 수는 없다.

힘들고 고되지만 때때로 산악자전거를 타고 산의 정상에 올라서 멀리 아름답고 광활한 풍경을 보면서 감동의 눈시울을 적시고 싶다.

내 여행의 목적은 목적지만이 목적은 아니다. 목적지만큼 일상을 떠나는 것도 목적이다, 

나는 여기저기를 목적지로 삼아서 자전거페달질을 하겠지만 그 페달질이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기를 좋아하는 것도 일상으로부터 탈출하고픈 욕구의 발로일 것이다.


물론 나는 여행지의 광활한 자연경관과 도시의 건축물과 그곳의 사람과 문화를 엿보러 간다.

그러나 그것이 내가 115일간이나 고생스런 여행을 하는 목적의 전부는 아니다. 

그것이 목적의 전부라면 굳이 자전거여행을 선택할 필요는 없고, 편안한 관광을 택하면 된다.

그러나 관광을 눈으로 보는 것이라 한다면 자전거여행은 온몸으로 여행을 체험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사람을 젊어지게 만드는 2가지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 하나는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여행이라고 했다.

사랑에 대해서는 나는 아는 바가 없다. 내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말은 신이라는 말만큼 허황된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은 사랑이라고 하는 것일까.

사실상 젊을 때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의 사전에서 사라졌다.

안데르센은 여행은 내 인생을 젊어지게 하는 샘물이라고 했지만, 어쩌면 거꾸로 아직 젊기 때문에 여행에 나서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여행하고자 하는 욕구가 오랜동안 나로부터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어느날 영원으로부터 유성을 타고서 이 지구별에 떨어진 여행자이다

그런만큼 내가 가고싶은 곳에는 모두 다 가 볼 것이다

그런 다음 나는 다시 영원으로 회귀할 것이다


현자들은 삶은 끝없는 초극의 길이 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나의 삶도 무척 느리기는 하나 그런 유사한 길을 걸어왔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어디쯤 초극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내 여행 중에서 가장 긴 115일간의 긴 여정을 잡은 것도 조금이나마 그런 초극을 해보겠다는 심정에서 저지른 것이다.

긴 여정을 통하여 나를 나로부터 떨쳐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몸과 마음을 떨쳐버리고, 남루를 걸친 허수아비가 되어서 귀환하고 싶다.

그래서 세상사 모든 것을 나의 겨드랑이 밑으로 불어가는 바람처럼 날려보낼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홀로의 여행이다. 이제는 홀로의 외로움도 전혀 두렵지 않다.
나의 홀로는 선택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알고보면 그것은 손을 잡고 있는 두 쌍둥이다.
이제는 동행자가 있다 할지라도 긴 여정에서 서로 마음을 맞출 자신도 없고, 나의 자유로움을 방해 받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나만 홀로의 삶을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을 외치고, 더불어 살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것은 자신들이 외롭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홀로일 때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내 자신으로부터 무엇을 찾는가, 진정한 내 자신-참나를 찾는 것이다.
참나는 무엇인가? 텅빔이다, 空이다.
그러므로 내면에서 무엇을 발견한다면 즉시 그것을 분쇄해야 한다.
그것이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초인의 길이리라.
나에게 있어서 초인의 길은 非人間의 길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도 내 여행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힘든 여행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날씨가 장애다. 흐리고, 비오고, 바람이 강하게 부는 날씨다.
옛부터 영국은 7월에 겨울이 끝나고 8월에 겨울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예전이라면 내가 할 수 없었던 말이지만, 쉬운 일이라면 그것은 할 가치가 없다.

1997년도에 인도여행을 했을 때, 인간이 얼마만큼이나 비참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 그 여행의 컨셉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얼마만큼이나 오랫동안 불편하고 힘든 일을 감내할 수 있는지를 보러가야겠다.

옛시절 하루 두끼 먹기도 힘든 시절을 견뎌야 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끔 마음이 저려올 때가 있다.

그 시절에 사람들이 겪었을 불편함과 고단함에는 내 여행도 비교가 되지않을 것이지 않은가.


여행동안 무엇보다 사랑스런 솔향이가 보고 싶겠지!

솔향아, 잘 다녀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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