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에크는 사회주의는 이성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에서 나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성이 정당하게 사용되려면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이성이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주의자들은 이성적이라기보다 기계적인 논리에 천착함으로써 미친놈들처럼 보인다.
나라를 망가뜨리고 있다. 조선시대 이씨왕조처럼
나는 중학교 기차통학시절 선배들이 단체기합을 주려고 할 때 겁도 났지만 분개했다.
대학에 입학해서도 고교선배와 학과선배들이 단체기합을 주려고 할 때 경악을 했다.
소위 지성인이라는 자들이 이런 발상을 하다니!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근 50년이 지잔 지금도 그 잔재가 있는 모양이다.
이 단체기합에서 한국인들은 몹시 집단주의적 상향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이루어지려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공동체, 또는 어떤 집단, 더 나아가서 사회가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오죽하면 my wife가 아닌 our wife라 하지 않는가.
내가 오래전에 우려했던 한국인들의 집단주의 의식이 오늘의 한국의 고질병으로 나타난 것이다.
치유가 불가능해 보인다. 집단이 움직이면 강물에 들어가서 빠져 죽는 쥐떼처럼.
한국인들의 식사문화에서도 여실히 그 성향을 알 수 있다.
매운탕에 이 숟가락 저 숟가락이 들락날락하는 것을 보면 서양인들은 기겁을 할 것이다.
일본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학 새내기일 때가 생각난다.
하숙집에서 고교선배가 빳다를 들고 나더러 업드리라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나는 엎,드리는 면서 내가 잘못했으면 때려라,
그러나 선배라고 해서 때리지는 말라고 했더니 감히 내리치지를 못했다.
2002년 월드컵때 광적인 집단행동이 불만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빨갱이들의 공작이었다.
평양의 카드섹션과 프레이드의 닮은꼴이었다.
한국인들은 집단속에서 자아를 잊어버리는 순간에 이끌리는 습성이 강하다.
그것은 자유민민주주의에 걸맞지 않다.
한국인들은 이렇게 무리속에 들어가고 싶어한다.
유독, 동문회, 동기회, 동우회, 동향회, 계 등을 만들어서 홀로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그러면 무리속에서 니체의 말처럼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가? 아니다.
네팔의 어느 마을에서 본 개떼처럼 아침마다 피터지게 싸우면서 무리내에서 서열싸움을 벌이는 것이다.
옛 야생시절의 습성이 남아 있는 것이다.
니체는 그의 저작 '권력 의지(will to power)'에서 이렇게 말했다.
무리에서 벗어나서 나만의 길을 가라.
인생을 쉽게, 그리고 안락하게보내고 싶은가?
그렇다면 무리 짓지 않고서는 한시도 견디지못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면 된다.
언제나 군중과 함께 있으면서 끝내 자신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