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문장> 서문에서 저자 박정태 선생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감사하라.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더불어 살아가는 가까운 사람들을 친밀하게 대하라는 뜻일 것이다.
왠지 나이 칠십을 넘기고서야 비로소 이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왜 나는 그렇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밀하지 못했는가.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나는 내 자신의 앞가림에만 몰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에만 몰두했고,
직장생활을 할 때는 내 위치를 지키기에 스스로를 얽어매었다.
직장을 그만두고서도 내가 하는 일에만 몰두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다.
어쩌면, 내 성장과정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즉 부모의 사랑을 받아보지 못하고 성장했다.
또 어쩌면, 사람을 사랑할 줄 모르는 나의 천성일지도 모른다.
초등시절 통신표가 기억난다, 사회성과 사교성이 '다'였다.
2년간 담임을 하셨던 김채생 선생님은 나는 잘 알아보신 것이다.
이유야 어쨋던 나는 가끔 외로움을 느끼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그 외로움을 고독으로 감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드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인간이 되기 이전에 나무위에서 살 때부터 사회적 동물이었다.
그러니 과연 인간이 홀로 살 수 있을까?
비록, 산속에 홀로 산다고 해도 당사자의 가슴에는 누군가가 들어앉아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람들은 곧잘 인생은 홀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의 본 뜻은
아무도 자신의 삶은 책임져 주지 않으니 스스로 홀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
결코 나혼자 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또 사람들은 곧잘 고독을 벗삼아 홀로 살겠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샛빨간 거짓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벗이 없으니 고독이라는 벗이라도 찾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고독은 고독일 뿐 어찌 고독이 벗일 수 있겠는가.
그런 말은 어떤 남자와 함께 오래살다보면 그 남자가 아내가 된다는 말과 같다.
비록, 지금은 만시지탄이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밀하도록 노력해야겠다.
칠십이 넘은 이 나이에 내 인성이 어찌 변할 수가 있겠나마는.
아무튼, 저자 박정태 선생께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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