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신유한의 대일본인 관

박희욱 2024. 3. 11. 21:08

한민족은 예로부터 이웃나라를 깔보았다.

중국조차도 사대하면서도 깔보기는 마찬가지였으니,

일본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1719년에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왔던 신유한은 

그 경험을 해유록이라는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왜인들의 말과 행동은 대게가 조잡하고 천박하여

걸출하고 위엄 있어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성정은 속은 조급하고 겉은 경박하여 자기에게 유리할 때에는 좋아 까불며

간과 쓸개를 내놓다가도 조금 마음에 거슬리면 강동강동 뛰며 죽을지 살지 몰라 한다.

대화를 해도 눈치만 보고 일을 만나면 버마제비(사마귀) 수레 막듯 한다.

모두다 박쥐의 마음이며 벌같이 쏘려한다.

넓은 도량을 가지고 앉아 백성들의 무거운 희망을 풀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나라가 안정되고 병력이 강하여 나라에 위급한 일이 없어서 백성들이 풍요롭고

마음이 너무나 편안하니 무슨 사변이 갑자기 일어나면 대책이 있을 성싶지 않다.

 

신유한이는 발전된 일본을 배우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런 태도는 한민족의 오래된 습성이다. 

중국 상해로 달아났던 김구도 그의 백범일지에,

중국으로부터 무엇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조선을 한탄했다.

신유한이가 일본인을 보는 눈은 사돈 남말하는 격이며,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 자신의 눈에 있는 대들보는 보지 않는 격이다.

그가 본 일본은 이미 700여년 전에 한반도 문명을 앞질러버렸다.

 

연암 박지원이 그의 열하일기에 조선인들이 중국의 문자를 빌어쓰는 주제에

중국인의 문장을 트집잡는다고 했드시, 신유한이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의 시문을 자랑하면서 일본인들의 문장을 깔보았다.

이런 남을 깔보는 민족의 습성은 아직도 유전되고 있고,

이것은 이웃나라에 대한 습성일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 서로간의 대인관계에서도 크게 다름없을 것이다.

아직 일본을 따라잡지도 못했으면서도 마치 뛰어넘은 것처럼 까불고 있다.

 

신유한이는 임진왜란으로 처참했던 역사를 기억하고,

분함을 참지 못했으면서도 반성할 줄은 전혀 몰랐다.

작금의 한국인들이 근세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으면서도 반성은 커녕

도리어 일본의 반성을 촉구하는 것도 어쩌면 그렇게도 똑 같은 닮은 꼴일까!

미래의 역사도 똑 같이 반복될 것인가.

그것은 반성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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