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가 아는 유일한 시제는 현재이다.
그래서 그것은 전혀 긴장이 없다, 완전한 휴식이다.
그대가 전적으로 여기 있을 때,
어제가 그대를 뒤로 당기지 않을 때,
내일이 그대를 다른 곳으로 끌어당기지 않을 때, 그대는 휴식한다.
내게는 이 순간에 존재하는 것이 명상이다.
전적으로 이 순간에 존재하는것!
그때 그것은 그토록 아름답다, 그토록 신선하다.
그것은 결코 늙지 않는다, 결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생각, 즉 사념이 과거나 미래로 가지 않토록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있도록 붙들어 매어야 한다.
생각을 이 순간에 붙들어 매면, 움직이던 공기가 정지하면 바람이 사라지듯이
사념 또한 그런 바람처럼 사라진다. 생각하는 데는 반드시 시간을 요한다.
사념이 사라진 삶의 상태를 존재라 하며, 그 세계를 일러 존재계라 말한다.
그 존재계에 사념이 덧쒸워지면 그것이 곧 마야다.
세상을 마야(Maya)라고 하는 것은, 세상을 온갖 사념으로써 보기 때문이다.
사념을 버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때 실재의 세계, 즉 존재계가 나타난다.
존재계에는 아무런 근심걱정이 없으며, 위기의 순간에조차도 평온하다.
이 존재계를 일러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천당이라 말한다.
사념이 사라진 존재계는 무시간, 무공간의 세계이며 영원의 세계다.
존재계 이외의 천국이나 천당은 없다.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상이다.
기독교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모든것을 맡김으로써, 생각하는 것조차도
신에게 맡김으로써 자신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상태로 되는 것이다.
이 상태를 일러 천국이라고 한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저 세상이 아니다.
선불교적으로 말하면, 명상상태가 바로 천당이다. 다른 천국과 천당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