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으로 가는 길

두려움

박희욱 2024. 9. 14. 23:56

두려움은 현재에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것이다.

현재에 일어나는 위험한 일은 맞대응만 할 수 있을 뿐이지 두려움은 없다.

그러면 왜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는가?

말할 것도 없이 그 두려움은 불안감에서 비롯되고,

그 불안감은 미래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가 확정적이라면 불안할 것도 없고, 불안하지 않으면 두려워할 것도 없다.

확정적인 사형수가 과연 두려워 할까?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긴장은 할지언정 두려워할 것 같지는 않다.

아니다, 나는 군복무 시절에 사고로 인하여 경험하였는데,

죽음에 대한 찰라적인 두려움은 있었지만 곧 사라졌다.

 

그런데, 미래가 확정적이라면, 그래서 뻔한 것이라면 살고 싶은 의욕이 남아있을까?

미래는 모르는 것이며, 그래서 호기심이 발로되고

그 호기심이 살아가는 원동력이지 않을까 한다.

결국은 호기심과 불안감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일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재대로 된 여행이라면 호기심과 불안감이 대동한다. 

그러고 보니 나의 여행은 언제나 호기심으로 계획하고 불안감을 가지고 출발한다.

그래서 온몸을 내던지는 기분으로 출발한다.

 

이 글을 쓸 때는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까 해서 시작하였다.

그러나 별다른 길이 있는 것은 아니지 싶다.

아무리 인생을 세밀히 계획한다고 해도 그대로 시행되는 것도 아니고,

계획대로 된다고 해서 그것이 살만한 인생도 아니다. 

왜냐하면, 호기심이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어떠한 일이 닥치드라도 맞딱뜨리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자세가 되어 있다면 불안할 것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죽은 인생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

최악의 경우 죽으면 된다. 자살하면 된다는 말이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도 미신이고, 생명이 귀중하다는 것도 미신이다.

안락사는 허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자살이 죄악시 되었는가?

신이 제공한 생명을 거부했다는 것이 그 이유지만, 신경 쓸 것이 못된다.

인간이 우주바깥을 생각할 수 없드시 죽음도 삶의 바깥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신은 그대에게 무한한 자유를 부여하였다.

절대로 그대에게 주어진 자유를 유보하지 마라.

최악의 경우, 카프카의 소설 '성'의 주인공 K처럼 마음내키는 대로 살다가

형장에서 '개새끼!'하면서 욕설을 내밷고는 공중에 몸을 매달면 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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