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신공양을 신에게 바치는 제물 쯤으로 여긴다. 그것을 인간의 어리석은
행위로 본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는 사람이 어리석다. 인신공양은 고도의 영리한
통치행위였다. 일단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람을 공개적으로 떳떳이 처형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고대에는 국가의 법이 없었다. 그래서 죽음의 공포를 이용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다. 범죄행위자나 통치자에게 반기를 들만한 사람을 골라서
인신공양으로 희생시켰던 것이다. 그런 대상이 없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이용했다. 그리고 공개적으로 처형함으로써 군중들에게 공포심과 함께 자신이
해당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동시에 제공했다. 그래서 수많은 군중들이 모여들었고,
그 현장에서 통치자의 위엄을 과시할 수 있었다.
이런 인신공양은 형태만 달랐을 뿐 고대뿐만 아니라 근현대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비근한 예가 옛소련의 스탈린이다. 그는 무려 2천만명을 인신공양했다. 북한의 김일성도
스탈린으로부터 배워서 인신공양을 저질렀으니 그것이 바로 인민재판에 의한
숙청이었다. 아마도 수백만명이 희생되었을 것이다. 아오지탄광에 보내는 것도
인신공양을 시키고 노동력까지 착취하는 일석이조의 통치행위였다.
남조선에도 이런 영리한 통치자가 등장하였다. 그는 이미 주변의 대여섯명을 은밀히
인신공양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형수 보지도 않고 찢어버리겠다고 공언함으로써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앞날을 본 그늠이 영리한 인신공양의 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그늠의 주변에 붙어있는 늠들은 그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도 없다. 그늠은
현직 대통령까지도 작살내고 감옥에 보낼 수 있는 능력을 과시하였다. 불쌍한 그늠을
그냥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끝내 그늠을 인신공양의 제물로 이용하는 것이다. 이땅의
사람들은 노예근성이라 풀어놓으면 고개를 빳빳이 쳐들지만 눈을 부릅뜨면 당장
무릎을 꿇고만다.
그늠은 이미 사법부와 검찰까지도 무릎꿇게 만들었을 것이다. 내가 보지도 않았지만 뻔할
뻔짜다. 그늠이 겁낼 것은 이미 아무것도 없다. 그늠은 인신공양에 쓸만한 얼간이들을
물색하고 있을 것이다. 설령, 그늠에게 고개를 처드는 늠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짜고치는 고스톱이다. 그것은 멋도 모르고 께춤추는 놈을 골라내기 위한 술책이다. 그늠은
그만큼 치밀하고 영리하다. 그래서 그늠이 5천년 한반도역사상 가장 영리한 늠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소년원에서 수련한 고도의 능력이다. 결코 산속에서는 수련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남조선백성들은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니면 재빨리 그늠앞에 줄을
서는 수밖에 없다. 이미 긴 줄을 서고 있어서 지금쯤 너무 늦었기는 하다. 아무튼
그늠앞에서는 고개를 처들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다. 그랬다가는 필히 인신공양 당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