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terranean 5

지중해5개국26-시리아/다마스크스(Siria Damascus)

박희욱 2009. 5. 13. 20:55

 5월 7일

 피터와 헤어지는 날이다.

그는 예정된 여정을 끝내고 내일 두바이와 자카르타를 경유하여 호주 퍼스로 돌아간다.

재미있고 좋은 사람이었고 나와 죽이 맞는 사람이었다. 그와 죽이 맞지 않는 사람이 있겠는가만.

내가 영어를 조금만 더 잘할 수 있었드라면 더욱 즐거운 동행이 되었을 텐데 아쉽다.

 

내년 10월에 일본을 거쳐서 한국을 방문하겠단다.

나는 1일은 부산근교의 해안을 같이 라이딩하고, 1일은 부산의 산과 절(범어사, 통도사)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와 작별을 하고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가기위하여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니 합승택시가 호객을 한다.

20JD(1JD=$1.42)! 다른 사람이 10JD! 그 차도 삼성차였다.

자전거와 짐을 트렁크에 넣고나니 20JD란다. 정식가격은 9JD로 알고 있었다.

당장 눈을 크게 뜨고(서양인이라면 실눈을 떴겠지만) "꺼집어 내!"라고 소리쳤더니 3JD만 더 내란다. 승객은 3명.

 

시리아 국경에서의 입국 비자발급비는 $33였다.

시리아에 들어오니 요르단과는 달리 식물들이 자라고 농경지가 보여서 사뭇 풍요로워 보인다.

3시간만에 다마스커스에 도착하였는데 도시의 모습이 요르단보다 못하여 다시 이집트로 되돌아온 느낌이었다.

 

길도 모르는 곳에서 자전거로 숙소를 찾기란 무리였다.

도시의 방향감각을 찾기가 어려웠고 영어가 통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택시를 잡았다. 200파운드라 했다.

젊은 운전사였는데 요르단과 같은 민족이냐고 물어보니 불쾌한 표정으로 아니란다.

요르단에서 물었을 때는 분명히 같은 민족이라한던데.

도착하고 나니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자기는 200파운드라고한 적이 없다고 딱잡아 떼면서 400파운드를 내란다.

젊은 놈이라서 믿었는데 영 아니다.

짐만 없으면 싸워보겠는데, 자전거 몸체, 바퀴 두개, 가방이 6개, 모자 등등을 가지고 있는 내가 싸워봐야 불리하다.

이럴 때는 짐챙기는데 여간 신경쓰이는 것이 아니다.

결국 당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열이 받혔다.

그놈이 별 부담없이 한 번의 양심을 감추는 덕분에 횡재를 한 것에 대하여. 아무튼 영리한 놈이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해보니 만원이라 빈 침대가 없었다.

할 수 없이 600파운드(1파운=25원 정도) 짜리 숙소를 정했는데 덕분에 깨끗하고 조용해서 좋았다.

 

여장을 풀고 구시가지를 둘러 보았는데 완전히 시장으로 변해있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게가 밀집되어 있는 것이 마치 엄청난 크기의 벌집같았다.

우미아 모스크와 아젬궁전을 보았다. 아젬궁전은 궁전이 아니라 대규모의 저택정도였다.

 

다음날에는 더 이상 별달리 구경할 것도 없다.

별다른 유적도 없고,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할만한 공원도 없다.

나는 이 도시가 구약성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오랜 고도이기 때문에 기대가 컸는데 대단한 실망이다.

이 도시는 13세기에 몽골군이 침입하여 30만 명이 학살당하고 철저히 파괴당하여 오랫동안 폐허로 남았었단다.

왜 그랬을까? 이것은 침략자들이 상대의 반란의지를 말살하기 위하여 종종 쓰는 전략이다.

알렉산더조차도 그랬다. 그래도 그렇지! 머나먼 몽골땅에서 여기까지 뭣하러 왔을까!

몽골초원에서 말젖만 짜마시면서 누워있기에는 너무 심심했나?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아리스토텔레스 그 사람 정신나간 사람이다!

만일 인간이 이성적 동물이라면 그 이성을 버려야 할 때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쳤다.

1년에 우리사회에서 자살하는 사람이 왜 1,340명이나 되는 사회가 되었나?

그러면서 광우병 촛불시위는 또 무엇인가?

 

시내의 한 도랑(아주 지저분했다) 옆에 앉아서 싸구려 피자를 먹고 있었다.

어떤 꼬마가 말을 걸어오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피자를 먹고 싶어서 그런가보다 생각하고 줘보니 안먹겠단다.

자꾸 손짓 몸짓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 자기 아빠에게 쫓겨났단다.

나에게 동정을 구하는 것 같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또, 어린 소년이 아버지의 손을 이끌고 지나가면서 나에게 동냥을 구걸한다.

주위에는 수많은 가게가 있었지만 화장지 파는 곳을 찾지 못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서 시리아 경제는 이집트와 요르단의 중간 정도인 것같다.

요르단과 시리아 사람으로부터 한국인의 기술발전과 근면성을 칭찬 받았는데 새삼스러이 한국의 발전을 인식하게 된다.

 

또, 요르단과 시리아는 일본차가 대종을 이루고 그 뒤를 한국차가 바싹 추격하고 있는 상황인 것 같다.

미국차는 볼 수가 없다. 아마도 반미감정의 덕을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나 맥도날드, 콜라, KFC 등은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먹는 것에는 사상을 초월하는가?

말할 것도 없지만 시리아의 경제사정도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만큼 자살율이 높겠는가.

시리아에서도 모자를 썼거나 선그라스를 썼거나 반바지를 입었으면 현지인이라 볼 수 없다.

 

 

       숙소 앞에서

 

슬리퍼 차림으로

출입문 돌계단 아래로 내려와

돌팍에 앉아서

오래간만에, 손톱도 깍고

발톱도 깍았다

 

길가에 주차한 승용차 밑을 보니

사지를 뻗고 누워 있는 고양이의 뒷다리가 보인다

혹시나 싶어서 돌맹이를 던졌더니

벌떡 일어나 손살같이 달아난다

 

 

나의 여행도 주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백을 느끼는 것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유스호스텔에서 만난 세계자전거여행자 켄. 47세.

캐나다 퀘벡에서 북미대륙과 아시아대륙을 의 끝 이스탄불까지 주행을 하고 귀국했다가

다시 이스탄불에 돌아와서 여행을 시작하여 여기까지 왔으며,

이집트를 거쳐서 아프리카로 갔다가 다시 예멘으로 건너올 것이라 했다.

도로의 기복이 심한 요르단을 이 더위에 어떻게 통과할지 상상이 안갔다.

 

 

 

 총중량이 90kg이란다. 아마도 내것은 40kg이 채못된다.

 스페어 타이어와 인형, 저런 것을 왜 싣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바로 앞 가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걸레빵(음식물을 싸서 먹는 접시같이 생긴 싸구려 빵)을 덥석덥석

 줏어서  자전거에 싣는 것을 보니 자전거여행의 내공이 엿보였다.

 이런 짐으로는 무엇보다도 자전거에서의 탈착이 무척 어렵고 번거롭기 때문에 바다를 건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다른 교통기관을 이용하기가 불가능하다.

 대단한 사람이다.

 

 

 

 다마스커스의 우마이야 모스크

 

 

 

 

 

 

 

 

 

 

 

 

 

 

 

 

 

 

  

 

 

 

 

 

 

 

 

 

 다마스커스 시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