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Zealand

돌아온 오클랜드

박희욱 2010. 3. 17. 09:08

2월 27일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서 셔틀버스($35)로 예약해놓았던 오클랜드 시티 YHA(인터내셔널 YHA는 만원이었다)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자전거 창고가 없단다. 난감하였다. 도대체 자전거 넣을 창고도 없다니! 15분 쯤 기다려보란다. 리셉션이 중국인 여자였는데 아마도 융통성이 없었나 보다. 밖으로 나와서 보니까 두 YHA가 매우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서, 인터내셔널 YHA에 가서 다음 날 숙박하기로 하고 자전거 박스를 맡겼다.

 

  72일 만에 무사히 돌아온 것이 무척이나 기뻤건만 그 기쁨을 같이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떠날 때 식품을 준비하느라고 몇 번 보았던 한인수퍼 주인아주머니라도 만나면 같이 기쁘해줄 것 같아서 찾아갔으나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지만 여행의 막바지에는  무척 몸조심이 되면서 여행의욕도 없어진다. 3월 4일 귀국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예초의 계획대로 오클랜드 북쪽의 노스랜드(Northland)를 구경할 작정으로 관광버스투어를 신청했는데 내일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사실, 뉴질랜드를 이만큼 구경하면 되었지 돈을 들여가며 굳이 구경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렇다고 그 곳이 그렇게 아름다울 것 같지도  않고. 박스에 포장한 자전거를 다시 꺼내 타고서 돌아다닐 마음은 없었다. 번거롭기도 하려니와 더 이상 자전게 손대고  싶지도 않고 교통사고가 두려웠다.

 

 

2월 28일 

  다운타운과 앨버트 공원을 다녀왔다. 아트 갤러리는 공사중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앨버트 공원의 중국인 연등축제

저녁부터 축제가 열린다.

 

 

낮에 왔다가 싸고 맛있는거나 먹을 수 있으까 싶어서 저녁에 다시 찾아왔다.

역시, 모든 사람들은 먹는데 더 관심이 많았고,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로 내가 끼일 자리는 없었다. 

   

 

 

 

 

 

 

 

 

 

 

코리아의 태권도 시범(시범자는 한국인이 아님)

올림픽 때와는 달리 활기차고 적극적인  공격을 보여주었다.

 

 

 

 

 

 

 

 

 

 

인터내셔널 YHA의 부엌과 식당

 

 

 

 

 

 

 

 

 

 

오클랜드 다운타운 중심가

 

 

 

 

 

오클랜드는 많은 인종이 뒤섞힌 국제도시 같았다

 

 

3월 1일

  오클랜드 부두에서 데븐포트에 정박했다가 랑기토토섬을 지나서 와이헤케섬으로 구경하러 갔다. 자동하로 천천히 드라이브하거나 자전거로 섬을 다녀야 하는데 도로가 몹시 가팔라서 중행이 힘들었다. 게다가 그날따라 조금 더웠다.

 

 

 

 

오클랜드 - 와이헤케섬

 

표시는 왼쪽부터 데븐포트 랑기토토섬, 오른쪽이 와이헤케섬이다.

 

 

 

 

오클랜드항을 떠나는 와이헤케행 페리에서

 

 

 

 

 

와이헤케 관광객들

 

 

 

 

 

 

 

 

 

 

랑기토토 화산섬

 

 

 

 

 

와이헤케항에 들어오면서

 

 

 

 

 

 

 

 

 

 

 

 

 

 

 

자전거로 섬을 둘러보면서 즐기기에는 도로가 너무 가팔랐다.

 

 

 

 

 

하루 $30에 자전거와 헬멧을 렌트했으나 고작 2시간 남짓밖에 타지 못했다.

 

 

 

 

 

 

 

 

 

 

뉴질랜드 날씨로는 무척 더운 날이었다.

 

 

 

 

 

와이헤케섬 선착장을 떠나면서

되돌아 올 때 길을 잘못들어서 선착장에 간발의 차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페리를 보고서도 놓쳐야 했다.

선착장에서 이 섬에 관광왔던 3명의 교민을 만났는데 남은 김밥도 주고 마실 것도 주었다.

그들은 뉴질랜드에 살면서 아직 남섬에 발도 디뎌보지 못했다 한다.

그 중 한 아주머니는 이민온지 20년인데도.

사람들은 지구 곳곳에 대한 호기심이 나보다 훨씬 적은 것 같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에덴에서 호기심에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추방당한 아담처럼

이 고생이다.

 

 

 

 

 

 

 

 

 

 

 

 

 

 

 

 

 

 

 

 

한인식당

퀸스스트리트에 몰려 있으면서 모두 거의 이와 유사한 매뉴판을 내걸고 있는데 납득이 가지 않는다.

조그만 식당에서 50가지의 음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가히 놀랍다. 조리하는데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더구나 한국음식은 손이 많이 가고, 그릇이 많아서 설거지하는데조차도 시간이 많이 드는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한국음식은 여러가지로 국제경쟁력이 없을 것 같다.

 

한인식당들은 현지인들을 상대로 한 영업에 적극성이 없어보이고, 한인교포나 단체여행객을 상대로 한인들끼리 경쟁한다.

반대로 중국인들은 어떤 곳에 화교 한 사람이 개업하면 주변에는 동종업종을 개업하지 않는다고  한다.

웰링턴 어느 가게의 한인 주인은 4개의 한인 수퍼가 경쟁을 하고 있어서 적자경영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가게의 주인은 중국인이란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먹는다는 속담이 생각났다.

 

일본 여행객은 언제나 혼자서 다니고, 단 둘이서도 함께 다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유럽인들은 커플로 다니거나 아니면, 남자든, 여자든 혼자서 다닌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몰려 다닌다. 한국 배낭족도 몰려 다니면서 유사한 패션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동아시아인을 보면 코리안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래서, 혼자 다니는 나를 보면 모든 사람이 재패니즈인가고 묻는다.

 

그러면 단결력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남북이 갈리고, 여야가 갈리고, 동서가 갈리고, 교회가 갈리고, 교민이 갈린다.

그래도, 이상한 것이 국제 경기가 있으면 붉은 티셔츠를 입고서 메뚜기 때처럼 몰려다니면서 야단법석이다.

일종의 사회적 병리현상이라고 본다. 그 순간 자신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리지어 행동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미물일수록 무리를 짓는다.

무리를 지어면 개체는 생각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필요도 없고 실재로, 개체의 보호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무리를 짓게되면 어린아이보다도 지성이 못하게 된다.

2차대전 때 무리지은  독일국민을 보라.

무리지어 놓으면 가미가제 특공대 자살도 아무렇지도 않게 감행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북괴를 보라.

어떤 호주인이 평양의 놀라운 카드섹션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에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그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국민들을 무리짓게 하는 방법이다.

국민을 무리짓게 만들면 간단하게 우민화할 수 있다. 개인을 우둔하게 만들 수는 없다.

2천 4백만(북한 동포) 마리의  양들을 무리짓게 만들면

한 마리의 미친개(김정일)가 그모두를 요리하는 것은 간단하다.

 

 

 

 

 

드로잉 소재가 될 수 있을까?

 

 

 

 

 

이들의 독서열은 대단하다.

 

 

 

 

 

한가롭고 여유로운 이런 시간이 가장 좋은 시간이다

항상, 그림의 주제보다는 여백이 중요하드시.

 

 

        지식을 넘어서

                                                              패트 패트라이티스

 

우린 아주 열심히 공부한다.

우리의 마음을

지식들로

믿음들로

자료들로

또 세상의 이야기들로 채우려고.

 

그렇게 우린 인간의 생각들이 되어 버리고

그대신 우리 자신을 잃어 버린다.

'어떻게'를

'왜'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목적을 생각하는 분주함 속에서.

 

우리는 우리 존재를

온갖 경험들로 위장한다.

 

평화는

고요함 속에 머무는 것.

그 평화의 자리에서

보다 깊이 아는 것이

무한한 조화와

열린 사랑으로 가는 길이다.

 

 

3월 2일

  오클랜드에서 가장 큰 체육공원 도메인으로 산책을 갔다.

 

 

 

오클랜드 도메인

 

박물관

 

 

 

 

 

 

 

 

 

 

 

 

 

 

 

 

 

 

 

 

 

 

 

 

 

 

 

 

 

이 사진을 찍어준 일본여인도 혼자서 장기간 여행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귀국한 다음날 귀국했다.

앞으로 여행할 때는 가슴이 패이지 않은 반팔티를 내의로 사용해야겠다.

 

 

 

 

귀국한지 며칠이 되지 않았는데도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항인 것은 확실한 것 같은데...

 

 

3월 3일

  다운타운을 하릴없이 어슬렁거렸다.

 

3월 4일

  기쁜  마음으로 공항으로 가는 에어버스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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