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Zealand

에필로그

박희욱 2010. 3. 17. 19:02

  내가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는 것은 두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비싼 항공료 때문에 한 지역을 여러번 나눠서 갈 수 없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내 자신의 내면으로 여행하고 싶어서이다. 내면으로 여행하는데는 반드시 외로움을 겪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핸드폰 로밍이니, 노트북 컴퓨터니 하는 것은 나와 동행할 수 없다. 미국/캐나다 여행과 지중해5개국여행을 3개월간 한 것은 내가 홀로 견딜 수 있는 한계라고 보아서였고, 실재로 3개월은 정말 힘들었고 외롭기도 하였다.

 

  이번 여행일정을 80일간으로 정한 것은 여행루트에 따른 것이 아니라 90일간을 견딜 용기가 나지 않아서 10일을 줄인 것이었다. 과연 10일을 줄인만큼 앞서의 두 여행보다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번에는  다른 여행 때는 하지 않았던 트래킹을 많이 하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80일간도 충분한 일정은 아니었다. 스튜어트섬으로 건너가서 리키우라 트래킹을 못한 것은 일정이 부족해서였고, 기대하지 않았지만 밀포드 트래킹도 하지 못했다.

  유럽인들(독일이나 네델란드 사람이 대분이고 호주 사람도 많은 편이며, 그 다음에 프랑스 사람이 좀 있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사람은 눈을 닦고도 찾아보기 어렵다. 아시아인들은 아직도 아웃도어 라이프 여행을 즐길 줄 모르는 것 같다)은 배낭여행자이든, 자전거 여행자이든 보통 2~3개월간의 일정으로 왔고, 짧게는 1개월이며, 길게는 4개월간의 일정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번 여행은 별로 외롭지도 않았다. 유럽으로부터 많은 관광객이 오고, 그들은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기 때문에 할러데이 파크나, 트래킹 코스에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내가 뉴질랜드에서 접촉한 사람은 키위보다는 유럽인이 훨씬 많았다.

  실토하자면 나는 여행중에 눈물을 적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힘들어서일 때도 있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흘리기도 한다. 아무튼 그것은 홀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여행중에 왜 혼자서 여행을 하느냐고 묻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러면 나는 홀로임을 경험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단도직입적으로 둘이서 다니면 울 수 없지 않으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미국/캐나다 여행 때는 전사의 정신으로써 전투하듯이 주행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행거리에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후 3~4시만 되어도 할러데이 파크를 만나면 주행을 중단하였다. 보통 하루에 60~80km 쯤 주행했을 것이다. 최대 주행거리는 크라이스트처치에 갈 때 주행한 130km이다. 미국/캐나다 여행 때는 인적이 없는 곳에서 사위는 어두워지는데 캠핑장은 멀 경우는 사력을 다하면서 눈물을 흘린 경우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정말 힘들었던 곳은 블레넘에서 워드로 넘어가는 길에서 강한 맞바람을 맞을 때와 타우랑기에서 고개를 넘어갈 때 뿐일 것이다. 그 때는 과연 여행을 제대로 끝마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식사는 오클랜드에 머물 때 외에는 아침과 저녁을 꼬박꼬박 취사를 하였다. 주로 참치캔 찌게였으며, 새우나 해물 매운탕도 가끔 해먹었다. 여행초기에는 된장에 미역을 넣은 국을 만들어서 먹었는데, 맛도 없고 열량보급에 도움이 안된는 것 같아서 짐만되다가 종래에는 버리고 말았다. 점심은 빵과 치즈, 햄, 버터, 소세지 등으로 해결하였고, 도시에서는 패스트 푸드, 그 중에서도 섭웨이를 많이 이용하였다. 다른 여행 때는 취사를 할 생각을 못했다. 그것은 조그만 코펠로써는 밥을 짓기가 어렵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실재로 해보니까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밥이 잘되었다. 번거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배를 곯지 않고 여행을 한 것 같다.

 

  이번 여행의 전반기에는 아침일찍 일어나서(일어는 것은 항상 6시에 일어났다) 화장실가고, 세수 하고, 밥해먹고, 키피 한 잔 하고, 텐트 걷고, 짐을 정리해서 패니어에 넣고, 자전거에 짐꾸러미를 부착해서 출발할 때면 번번히 3시간을 넘어버리기가 일쑤이니 서둘지 않을 수 없었고, 매일 그러다보니 내가 하는 여행이  마치 피난민 생활하는 꼴이었다. 한 지점에서 가사가 이루어지는 집이라는 시스템이 하나의 대단히 효율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외롭지도 않았고, 과도하게 힘도 들지 않아서 다른 여행 때처럼 눈시울을 적시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힘은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발할 때까지 3시간이나 소요되는 것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일찍 출발해야 주행을 일찍 끝낼 수 있기 때문에 아침에는 항상 서둘러야 했다. 여행객은 모두 그러하겠지만 햇살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은근히 불안해진다. 특히 자전거 캠핑 여행자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일찍 도착하기 위하여 서두르다보면 피곤하여진다.

 

  타우랑기에서 통가리로 국립공원으로 가는 고개를 5일간의 식량을 가득 실어서 휘청거리는 자전거로 업힐할 때는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클랜드로 되돌아 와서 시티 YHA에 투숙했을 때는, 남섬에서 4개월간 도보로 여행하고 돌아온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생과 같은 룸에 들었다. 나는 그에게 나도 조금 미친놈(crazy guy)이지만 너는 더욱 미친놈이라고 놀렸더니, 자기는 젊어서 괜찮지만 나이든 당신이 더 미친놈이라고 응수했다. 아무튼, 그 젊은 친구는 내 나이가 되면 오체투지라도 할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귀국하는 전날 역시 독일 친구가 엄청난 크기의 배낭을 지고서 내 룸에 들어왔는데 그도 4개월간의 여행을 하러 왔다고 했다. 앞날의  그를 보니 내 눈에는 불쌍하게 보였다. 나도 이제는 더 불쌍한 놈이 되지 않도록 종전 같은 장기간의 자전거 여행은 접어야겠다. 그런 힘든 여행을 할 용기도 줄었고, 또 이제는 그러한 여행으로써 쉽사리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나도 아닌 것 같다. 그것은 그러한 여행으로는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는 효력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행은 계속할 것이다. 아직도 가고 싶은 곳은 많다. 네팔 히말리아 트래킹 여행, 혜초가 걸었던 실크로드를 통한 인도 캐시미르 여행, 중국 쓰촨성과 운남성 여행, 티벳여행, 그리고 너무 멀어서 포기하려고 했던 남미의 파타고니아 여행, 스칸디나비아 여행, 그리고 비용 때문에 가능할지 모르는 유럽음악여행 등, 여행에는 욕심이 많다. 

 

  여행을 끝마칠 무렵 어떤 키위가 뉴질랜드에 다시 올 것인지를 물었다. 나는 다음에 올 때는 아내와 함께 오겠다고 대답해야 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갈 곳은 많으니 뉴질랜드를 다시 여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간혹 뉴질랜드를 여행했던 때가  생각날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 사진들을 보면서 눈을 감을 것이다. 그럴 때면, 뉴질랜드가 다시 내 곁으로 살며시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뉴질랜드여행의 커턴을 내리면서 에필로그의 에필로그로서 아래의 시를 다시 한번 음미하고 싶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나딘 스테어(85세, 미국 켄터키 거주)

 

다음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긴장을 풀고 몸을 부드럽게 하리라
이번 인생보다 더 우둔해지리라
가능한 한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붙잡으리라

여행을 더 많이 다니고 석양을 더 자주 구경하리라
산에도 더욱 자주 가고 강물에서 수영도 많이 하리라
아이스크림은 많이 먹되 콩요리는 덜 먹으리라
실제적인 고통은 많이 겪을 것이나
상상 속의 고통은 가능한 한 피하리라

보라, 나는 시간 시간을, 하루 하루를
의미있고 분별있게 살아온 사람 중의 하나이다
아, 나는 많은 순간들을 맞았으나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나의 순간들을 더 많이 가지리라
사실은 그러한 순간들 외에는 다른 의미없는
시간들을 갖지 않도록 애쓰리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이 순간만을 맞으면서 살아가리라

나는 지금까지 체온계와 보온물병, 레인코트, 우산이 없이는
어느곳에도 갈 수 없는 그런 무리중의 하나였다
이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이보다
장비를 간편하게 갖추고 여행길에 나서리라

내가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초봄부터 신발을 벗어던지고
늦가을까지 맨발로 지내리라
준비되지 않은 춤추는 장소에도 자주 나가리라
회전목마도 자주 타리라
데이지 꽃에도 눈길을 자주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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