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pal

에필로그(Epilogue)

박희욱 2011. 11. 19. 18:09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영화가 한 편 있다. 잭 니콜슨이 주연해서 아카데미 상 4개부분을 수상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이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아니, 그 보다는 사회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맥 머피가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당하여 결국 뇌수술을 받고 식물인간이 되어버린다는 줄거리이다. 이 영화 시니리오 작가의 시각은 사회를 하나의 정신병동으로 본 것인데,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보았던 이 영화는 나를 전율케 하였다. 그 당시 내가 보는 사회에 대한 시각과 어쩌면  그렇게도 정확하게 일치하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을 한 후, 어떤 친구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내게 물었을 때, 나는 식물인간처럼 지낸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노예처럼 일만해야 할 미래를 생각하니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고뇌의 시기였다. 그런 대답을 한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던 그 친구는 졸업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학교앞 저수지에 몸을 던져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친했던 친구는 아니기에 그 사정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나와 유사한 고뇌를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한다.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였으나 오랜 동안 무척 괴로워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장래에 내가 가져야 할 가정과 사회에 얶매여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서 보니 그당시 나와 같은 고민을 한 동기생들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내 스스로에게 되내이곤 했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라고! 결국 나는 미래에 대한 모든 희망을 버리기로 했고, 오늘 지금 이 순간보다 더 행복한 시간은 결코 기대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다만,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지금도 희망이라는 말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혐오한다. 그러한 말들은 스스로를 기만하며, 지금 이 순간, 여기서 획득할 수 있는 소중한 것들을 뒤로 미루는 하나의 구실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할 때, 나의 이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눠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괴롭고 외로운 나머지 갓 테어난 친구의 아들에게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이렇게 쓴 것으로 기억한다. '경호야! 걸음마를 배우게 되면 네가 사는 5층 아파트에서 계단으로 다니지 말아라. 차라리 베란다에  밧줄을 메고, 그 밧줄을 잡고 오르락 내리락 하여라!' 이렇게 말한 것은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버림으로써 나를 얽어 매고 있는 모든 구속을 끊어버리고 싶은 간절한 심정에서 한 말이었다. 그 동안 3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아기는 성장하여 의사가 되어서 결혼을 하였는데, 지금은 그 당시의 자기만한 아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번에 안나푸르나 서킷을 따라 엠티비 트레킹을 하면서 문득, 내가 베란다에 밧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그러한 유사한 사람이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 맥 머피는 뇌수술을 당하여 사회의 희생양이 되었고, 반면에 그 정신병동에서 벙어리 행세를 하면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인디언 추장맥 머피의 말로를 목격한 후, 칠흙 같이 어두운 어느날 밤에 정신병동 환자들의 절규를 등 뒤로 하고 성공적으로 병동을 탈출한다. 나도 그러한 정신병동을 성공적으로 탈출한 행운의 사나이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에게는 별도의 사회(세상)란 없다.

오직 내가 있을 뿐이다.

사회란 기껏해야 나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나 또한 님(That)의 그림자일 뿐이다. 

 

  이번 자전거 라운딩은 나의 가장 큰 모험여행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러하겠지만 하고 보면 별 것 아니다. 나의 이 블로그를 참고하여 차근차근 준비한다면 엠티비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짐을 싣고 다니지 말고 포터를 대동하여 가벼운 기분으로 즐길 것을 권한다. 나는 포터와의 보조를 맞추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서 단독으로 결행을 하였는데, 포터와 자전거 라이딩의 전진속도는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오랜동안 준비했던 자전거 라운딩을 해냈다는 기쁨은 적지 않다. 만일 내가 이 일을 감행하지 않았다면 미련이 남아서 자꾸 생각이 날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수 있을 것인가? 엠티비를 좋아하고, 자전거 여행과 안나푸르나 트레킹의 경험도 있고, 시간에도 구애 받지 않으니까.

 

  내년은 결혼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밥해주고 빨래해주는 것만 해도 그게 어딘가! 아내에게 선물을 해야겠다. 북유럽 렌트카 여행을 선물할 작정이다. 이 여행은 전적으로 여행을 그렇게 즐거워하지 않는 아내를 위한 여행이 될 것이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실행을 하고자 한다. 2013년에는 미국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존뮤어 트레일에 도전할 것이다. 이곳은 안나푸르나 서킷과 함께 세계 10대 유명 트레일 중의 하나로 꼽힌다. 그래서 이번에 못다한 쿰부히말 트레킹은 2014년으로 미루어져야 할 것 같다. 그때까지 히말라야가 변함없이 기다려주면 좋겠으나 점차 많은 사람들로 북적될까 염려되고, 떠나온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전세계적인 기상이변으로 인하여 카트만두에서 루크라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결항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아무튼, 히말라야에 다시 발을 딛게 될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2011년 11월 19일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Cuckoo's Nest)

 

  좌측의 맥 머피와 우측의 인디언 추장

인디언 추장은 식물인간이 된 맥 머피의 목숨을 끊어준 다음에 정신병동을 탈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