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평등과 공평

박희욱 2012. 2. 29. 06:19

오늘은 오래간만에 모짜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를 DVD로 보았는데, 

하고(?) 싶은 것 다하고, 먹고 싶은 것 다먹고 살아왔던 '돈 지오반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비명과 함께 지옥으로 끌려간다. 그런 다음에,

그의 시종 레포넬로와 함께 모든 출연진이 모여서 사람은 누구나 공평하다는 내용의 가사를 합창하면서 막을 내린다.

듣고 보니 과연 우리의 삶은 공평한 것 같다.

 

내가 혐오하는 말이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혐오하는 것이 있다면 '평등'이라는 단어이다.

평등을 말했던 사람은 주로 정치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개 거짓말쟁이들이다1.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초안했던 제퍼슨은 이렇게 말했다.

 

'만인은 평등하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으로부터 타고난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으며,

그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는 것을 자명의 진리로 확신한다.'

 

이 말을 들은, 세계 도처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이민자들은 얼마나 기뻐하였겠는가만은,

사실과는 거리가 좀 먼 말이다.

사람은 평등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쫓아낸 침묵의 하느님이 그 후예들에게 무슨 권리를 준단 말인가!

아무튼 재퍼슨은 그런 거짓말을 하고 다닌 덕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평등사상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데 크다란 장애가 되는 것은, 그것이 사물을 바로 보는데 하나의 색안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냉철하게 세상을 보려고 하는, 그래서 정직하려고 애썼던 철학자들은 비교적 솔직한 말을 하였다.

예를 들면, D. 리즈먼 같은 사람이다.

 

'인간은 상이하게 창조되었다. 인간은 서로 같아지려고 하다가,

자신의 사회적 자유와 개인적 자율성을 상실한다.'

 

하나 더, 올더스 헉슬리의 말을  소개하면,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은, 평시에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은 동의한 적이 없는 명제이다.'

 

몽상가 <동 키호테>조차도 말하기를 자고 있는 동안에는 모두가 똑같다고 비아냥그렸다.

평등을 말하는 사람은 잠을 자고 있는 중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있는 중이다!2

 

솔론3은 플루타크 영웅전에서 '평등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고 하였지만 그 말에 동의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만 해도 평등사상의 완장을 찬 동무들에 의하여 참혹한 전쟁을 겪어야 했고,

현재도 머리띠를 두르고 주먹을 휘두르면서 평등을 쟁취하겠다는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평등사상은 불필요하고 부당한 사회적 갈등을 야기시키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개인 뿐만아니라 모든 단체의 자유에 대한 침해를 정당화시키고, 그들의 자율성을 저해시킨다.

나는 자유를 위한다면 얼마든지 평등을 희생시킬 수 있다.

그래서 '불평등도 미국인에게는 자유못지 않게 소중하다'고 했던 어느 미국인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평등하지는 않지만 공평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귀족 돈 지오반니나 그의 계약직 시종이었던 레포넬로나 결국은 공평한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학의 다리를 잘라서 오리 다리에 붙이려고 하거나, 산을 헐어서 골짜기를 메우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로또 복권을 샀는데 옆 사람은 당첨되었는데 나는 떨어졌다고 해서 불평등을 말한다면 어리석은 일이다.4

 

아무튼, 세상은 살아서는 모두 공평하니 불공평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또한, 사람은 죽어서 모두 모두 평등하니 불평등을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나에게는 평등은 곧 프로크라스테스의 침대이다.5

그래서 누군가가 무덤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던가!

  1.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라. 그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민중들도 옳은 말보다 듣기 좋은 말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본문으로]
  2. 베이컨은, 모든 色이 어둠속에서는 똑같아진다라고 말했다. [본문으로]
  3. 무슨 의미에서 한 말인지는 몰라도, 그도 정치가이다. [본문으로]
  4.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려고 애씀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자들은 성공한 자들의 탐욕을 삿대질 하면서 불평등을 시정하여 줄 것을 요구한다. [본문으로]
  5.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잘라내고, 작으면 키를 잡아늘인다는 그리스 신화의 침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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