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관념 - 천동설과 지동설

박희욱 2012. 3. 12. 13:01

 

요르단의 아카바에서 와디럼으로 가는 길

 

 

요르단의 사막 와디럼에서의 일이었다.

 

요르단의 아카바항 페리에서 하선한 다음에,

투어링 자전거를 타고서 와디럼으로 들어가는 길의 풍광은 정말로 경이적이었다.

검푸른 하늘과 돌산이 어우려져서 연출하는 경치는 가히 놀라웠고,

사막의 놀라운 아름다움에 나는 흥분하고 말았다.

나는 요르단의 페트라는 두 번 다시 방문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 와디럼은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

 

 

와디럼으로 들어가는 길

차량과 인적이 무척 드문 도로였고,

나는 생전 처음보는 풍광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어떤 꼬마가 찍어준 것이다.

 

 

돌산 위에서 촬영한 아침 풍경

 

 

나는 거기서 2박3일간 사막야영을 하였다.

그날 밤에는 보름달이 환히 밝은 날인데도 불구하고,

너무 밝은 하늘이라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어도 수 많는 별들이 하늘 가득 반짝거리고 있었고,

심지어 보름달 바로 곁의 별들도 얼굴을 환히 내밀고 있었다.

그만큼 하늘은 맑아서 수증기 한 분자조차도 공기중에는 없는 것 같았다.

 

 

2박 3일 야영한 곳

 

 

그날 저녁 나는 홀로 사막 한 가운데로 저녁 노을을 감상하러 나갔다.

초저녁에 지평선 바로 위에 오리온좌가 떠 있었고, 나는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오리온좌가 지평선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평선이 하늘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올라온 지평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온리온좌를 삼겨버리고 말았다.

 

 

나는 히말리야에서도 이렇게 푸르디 푸른 하늘을 보지 못했다.

같은 검푸른 하늘이라도 고지대의 공기부족으로 오는 검푸른 하늘과

저지대 와디럼의 깊은 푸른 하늘과는 다르다.

 

 

이상한 일이 아닌가! 지평선이 올라와서 별을 삼키다니!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

.

.

.

사실은,

바로 지동설이 나의 머리에 굳어진 관념으로 뿌리박혀 있었고,

나도 모르는 은연중에 지동설의 관념으로써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고즈넉한 저녁의 한가로움을 즐겼다

 

 

과연 지동설이 옳은가, 아니면 천동설이 옳은가?

 

태양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코 행성들이 태양 자신의 주위를 돌 것이다.

그러나  태양도 초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은하중심을 돌고 있으며,

그런 은하도 대충 20억년을 주기로 자전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지구가 탄생한 이후 겨우 두 바퀴 정도를 돈 셈이다.

이런 은하 또한 어딘가를 중심으로 해서 공전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1.

 

 

은하가 공전하고 있다는 것을 인간의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태양이 은하중심을 돌고 있는 것도 눈으로 확인 하는것은 불가능하며,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것도 인간의 눈으로는 영원히 확인 할 수 없다.2

만일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동일한 방법으로 지구를 중심으로 이 태양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사실은 우주 어디에도 중심은 없다.

지구의 위성이라는 달도 지구의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와 달이  함께 양손을 맞잡고서, 태양의 주위를, 소위 말하는 공전하고 있는 것이며,

이 관계는 지구와 태양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3

 

과연 천동설은 거짓이고, 지동설은 진리인가?

이것은 마치 공간이 휘어지느냐 아니면, 빛이 휘어지느냐 하는 문제와 비슷하다.

다만, 천문학자들은 지동설의 개념으로써 천체의 운동을 예측하는 것이 더 편리한 것은 분명하다.

 

오늘도 분명코 이 땅이 나의 발밑을 굳건히 바쳐주고 있고,

아침이면 언제나 해가 뜨고, 저녁이면 해가 지고, 지평선 너머로 달과 별들이 뜬다.

그러므로 천문학자도 아닌 나는 뒤늦게나마 지동설이라는 관념을 버려야겠다.

그래 봤자 변하는 것은 없지만,

다시는 지평선이 별을 삼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지동설이든, 천동설이든 그것은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4

모든 관념을 버릴 때 즉,

무념으로써 세상을 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1. 이런 은하를 보고 있게 된다면 시간도 공간도 사라질 것이고, 사실은 시간과 공간도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 그것이 아무리 있다고 주장해도 관념상에 존재할 뿐이다. [본문으로]
  2. 사람들은 태양계 시스템의 도형이 머리속에 굳건히 박혀 있어서 나의 의견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문으로]
  3. 아령이 자전하면서 공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본문으로]
  4. 이것은 공간좌표의 원점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이다. [본문으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후에 남는 것  (0) 2012.04.05
팔리아치  (0) 2012.04.03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0) 2012.03.05
평등과 공평  (0) 2012.02.29
완벽과 완전  (0) 2012.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