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박희욱 2012. 3. 5. 12:28

지금쯤 나는 고백해야 한다. 내가 여행을 떠난 이유는 도피였다.

어른 손바닥만큼 머리털이 빠져 버린 원형탈모증과 극도로 소화가 안 되는 위하수증,

곁에서 보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병색이 완연하냐는 말을  일과처럼 들으며 극도의 불안증세에 시달렸다.

이러다가 죽을 것 같아서 절박하게 도망을 결심했다.

 

비겁하게 내 고통과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고,

나의 그런 도피를 누군가에게 내뱉을 만큼 용기도 없었다.

나는 나의 여행을 그냥 애초부터 자유로운 영혼이 나에게 맞는 옷을 입히는 것처럼 그렇게 치장했다.

 

벌어 놓은 돈도 없고, 직장을 버린지 오래고, 이제는 변변한 직업도 없으니 내세울 것도 없었다.

그래서 여행이라는 것으로 나를 포장해야 했다.

그 절박함과 참담함이 나를 여행의 길로 이끌었고, 그리하여 1년을 길에서 불살랐다

 

 

 

 

저자 박민우, 그는 33세의 어중간한 나이에 통장잔고 259만원을 들고서 중남미 여행을 질러버린 사나이이다.

나는 그의 3권짜리 여행기 <1만시간의 동안 남미>를 택배로 받아 놓고서는 사뭇 후회스러웠다.

별 도움도 되지 않는, 젊은 객기를 부린 여행기를 3권이나 읽어 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고, 그 책은 내가 읽은 수많은 여행기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책인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는 여행중에 일어났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이 높이 살만했고,

그 문장의 표현력이 다른 어디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창조적이다 못해 기발하였다.

 

보통의 여행기는 자신이 보았던 사물이나 경험을 그대로 서술하는데 치중하는데,

이 여행기에서는 그러한 것은 하나의 구실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며, 글의 구성도 일반 여행기와는 달리 여행경로에 따른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의 반전에 의한 읽는 재미의 극대화를 위하여 시간적 순서를 무시한 신선한 문장구성도 압권이었다.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나도 젊었을 때 '박민우'처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번민이 무척 많았다.

그렇지만, 나는 하고 싶은 것(대학원 진학)을 할 수 있도록 일단, 최소한의 돈이나 벌자는 생각에,

그 당시 우리 회사 직원들이 기피하였던 사우디 아라비아 근무를 지원하였다.

거기서 1년의 근무를 마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서 사표를 낸 다음에, 1년간의 준비끝에 석사과정에 들어갔었다.

이 책의 저자 박민우도 나와 비슷한 번민으로 고통을 겪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는 그의 말대로 남미로 도피한 것이었다.

 

저자는 어머니의 아래와 같은 쓴 소리를 등뒤로 하고 남미로 달아났다.

배부른 소리 하네! 먹고 살기 바쁜데 여행 타령이나 하고...

가려면 결혼이나 하고 가! 어미 속 새까맣게 탄다.

사는 거 다 똑 같다. 다를 것 같아도 다를 거 없어!

 

지극히 옳은 말씀이다.

사람들은 여행이 견문을 넓힌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세상 어디가나 사는 것은 다 똑 같다.

내가 처음 유럽 배낭여행을 간 1990년도만 해도, 친구들은 날보고 혼자서 가면 위험하지 않으냐고 했는데,

나는 사람 사는 것은 어디로 가나 똑 같다고 대답했었다.

여행과 관광의 차이점을 한 마디로 말하면, 여행은 여행지에서  자신을 비춰 보는 것이고, 관광은 말 그대로 <sightseeing>

즉, 풍광을 즐기는 것이다. 

 

박민우는 다음과 같이 여행기를 끝맺고 있다.

누가 나에게 여행하는 동안에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묻는다면

절망에 파묻히지 않고, 기쁨에 점령당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하겠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돌아가도 여전히 돈도 직업도 없을 테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돌아가서 고민할 것이다.

 

과거에 내가 절망으로 고통스러워할 때, 그 절망은 바로 희망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스피노자는 내일 하늘이 무너진다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 나무를 심겠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이 모든 희망을 버리고 단지, 오늘 여기에서 내가 할 일만 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사실, 희망과 절망은 같은 에너지에서 나오며, 동전 던지기와 같이 한 번 희망이 나오면 머지 않아 절망도 나오는 법이다.

 

기쁨과 고통도 마찬가지다. 항상 계속되는 기쁨도 없고, 항상 계속되는 고통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어디에도 연연할 필요없고, 따라서 아무것도 두려워할것이 없는 것이다.

 

소심했던 나는, 먼 사우디 땅에서 일과를 끝내고 침대에 몸을 눞히고 눈을 감으면, 

미래가 두려운 나머지 가위눌리는 듯하였고,

이러다가는 머리가 새하얗게 새버리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했었다.1

박민우는 그런 번민으로 말미암아 원형탈모증이 생겼을 것이다.

그 때 발견한 성경의 한 구절이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내일 걱정은 내일로써 충분하니,

내일의 걱정을 오늘에까지 끌어들이지 말라!

 

나는 귀국하는 비행기 좌삭에 앉아서 눈물로써 결심을 하였다.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노라고!

그리고 귀국후에 회사에 사표을 뎐졌다.

 

박민우는 나에게 이런 유혹의 말을 하고 있다.

  나처럼 얼치기 여행자가 남미가 훨씬 좋다고 말하는 것은 위험한 말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막연히 짐작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거대한 매력이 숨어 있다는 정도로 남미 여행의 자랑을 대신하겠다.

자신을 사랑한다면 한 번쯤 남미로 떠나는 것을 꿈꿔 보라고 말하고 싶다.

 

나도 머지않아 배낭을 매고 남미로 떠나서 거대한 대륙을 한 동안 굴러 다녀 봐야겠다.

더 늙수구리하기 전에!

 

페루의 마추픽추와 티티카카 호수

볼리비아의 소금사막,

칠레의 토레스 델 파이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와 이과수폭포

브라질의 리우 데자네이로,

 

모두들, 나를 기다려라!

내가 간다!

  1. 사실 사우디 근로자 중에는 1년 사이에 머리가 새하얗게 새버리는 사람이 많았다. [본문으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리아치  (0) 2012.04.03
관념 - 천동설과 지동설  (0) 2012.03.12
평등과 공평  (0) 2012.02.29
완벽과 완전  (0) 2012.02.28
명품2  (0) 2012.0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