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오슬로3(Oslo)

박희욱 2013. 8. 30. 18:17

 

 

 

 

극장앞 광장 분수

 

 

 

 

오슬로 시청

노벨상 중에서 평화상만은 여기 오슬로 시청에서 시상식을 한다.

 

 

 

 

노별로평화센터

 

몇번을 망서리다가 평화상 수상이유나 알아볼까 해서 입장해 보기로 하고 입구에 갔는데 입장료를 받는 것이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무려 Nkr 80이다. 나는 두말 않고 돌어섰다. 이것은 평화센터에서 장사를 하자는 것이 아닌가.

 

노벨상이 제정된 것은 다이나마이트의 판매로 막대한 재산을 모은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노벨이 이런 유언을 하게된 것은 어느 프랑스 신문의 오보기사 때문이라 한다. '죽음의 상인, 죽음을 맞다'라는 때이른 보도를 접하고 충격을 받은 노벨이 노벨상 설립(1901년)의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 신문은 노벨을 격하게 비난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노벨을 비난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다이너마이트를 죽음에 이용한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다이너마이트는 누가 발명해도 결국은 발명했을 것이다.

 

노벨상에는 생리의학상, 화학상, 물리학상, 문학상, 경제학상, 평화상 등 6개가 있는데 5가지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상되고 평화상만은 스웨덴이 노르웨이에 떼어주는 선심을 발휘하였다. 그것은 노벨재단이 평화상수상자선정이 말썽을 일으킬 가능성만 있고 중립을 표방하는 스웨덴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노벨평화센터라면 노벨이 인류평화에 기여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노벨상이 인류평화에 기여했다는 말인가.

내가 어릴 때는 노벨상이 대단한 것으로 알았지만 지금은 매년 열리는 한낮 해프닝 정도로 보인다.

 

건물의 전면에는 'What is European Identities?:"라는 큰 현수막이 내려져 있다.

도대체 평화센터라는 곳에서 유럽인의 정체성을 왜 찾는가?

그렇다면 아시아인의 장체성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타인의 정체성과 분별하자는 것이다.

정체성의 분별에 무슨 놈의 평화가 있다는 말인가?

개인이든 단체이든 정체성을 버리기 전에는 투쟁은 있어도 평화는 없다.

 

노벨평화상을 직접 받지 못하고 비겁하게 대리인을 시켜서 받은 키신저보다는

그것을 무참히 거절해버린 월맹의 레둑토가 더 돋보인다.

 

 

 

 

 

 

오슬로 항구

 

 

 

 

 

 

 

 

 

 

 

 

 

 

 

 

 

 

 

 

 

 

 

 

 

 

 

 

 

바이킹 선박박물관 가는 길

 

곳곳에 이런 보트나 요트장이 많아서 웬만하면 1척씩 가지고 있는 듯하다.

 

 

 

 

주말이라서인지 자전거 타는 사람이 무척 많다.

 

 

 

 

품위를 잃은 기러기들

기러기들이 이런 곳에서 풀이나 뜯어먹고 살 줄이야!

 

 

 

 

바이킹 선박박물관

오슬로 시내로부터는 상당히 먼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오세베르그호

800년대부터 50년 동안 여왕의 전용선으로 사용되다가

여왕이 사망하자 그녀의 무덤에 함께 매장되었다.

1904년에 발굴되었다.

 

 

 

 

 

 

 

 

 

 

 

 

 

 

바이킹의 거주지역은 지금의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지역이었으며, 그 활동 시기는 서기 800년부터 서기 1050년 사이였다.

그 시기에는 북쪽으로는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

서쪽으로는 아메리카 뉴펀드란드,

남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흑해와 카스피해까지 활동무대를 넓혔다고 한다.

 

 

 

 

 

고크스타트호

이 배와 똑같이 만든 바이킹선박으로 1893년 4월 30일 노르웨이를 출발하여 5월 27일 아메리카의 뉴펀드랜드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좌우 뱃전에 15개씩의 노의 장착구멍이 있었다.

그러니까 30명 이상의 인원이 승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투네호

바이킹의 배를 보니까 그들이 얼마나 흉폭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좁은 곳에서 먹고 자고 배설하면서 몇날 며칠씩 항해를 해서 목적지에 이르게 되면 미쳐버릴 것이다.

그렇게 고생을 해서 갔으면 뭔가 집으로 좀 가져가야 하지 않겠는가.

 

 

 

 

 

 

 

 

 

 

 

 

 

 

 

 

 

 

 

 

 

 

 

 

 

 

 

 

 

 

 

 

 

 

 

 

 

 

 

 

 

 

 

 

 

 

 

 

 

 

 

6월 1일(토)

 

새벽에 하늘을 쳐다보니 오늘 비가 올 것 같지 않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면서 소나기성 비가 내린다.

시내까지 걸어서 다닐 정도로 짧은 길도 아니고, 우산도 없고, 그냥 텐트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 오슬로도 그동안 추웠다가 내가 도착하는 그날부터 기온이 올라갔다고 한다.

10시 쯤 비가 그쳐서 캠핑장을 나섰다.

 

먼저 오슬로역에 가서 Egersund행 열차를 예약하였다. 예약을 해야만 하는 노선인데 예약비는 Nkr 50.

예약을 하면 좌석이 지정된다. 자전거 운임은 무려 Nkr 185. 독일의 5유로에 비하면 너무 비싸다.

한국에서는 교통기관에 별도의 운임을 내고 자전거를 실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그러나 자전거가 차지하는 면적으로 따지면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운임은 아니다. 암튼 자전거를 가지고 다니지 말라는 말인 것 같다.

유레일 패스를 소지하고도 4만 5천원 정도의 요금을 더 지불해야 하니 억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다음은 내가 오슬로에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는 뭉크미술관으로 갔으나 무슨 일인지 직원들이 오늘은 휴관이니 내일 오란다.

도리없이 비겔란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지도를 가지고 가는데도 웬지 길 찾기가 어렵다.

 

 

 

뭉크미술관

오늘은 휴관이라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성당 앞 꽃시장에서 만난 루마니아 자전거여행자

 

Anton Duma(antonduma@gmail.com)

facebook-Anton Duma

루마니아을 출발해서 유럽의 해안선을 따라서 420일째 여행을 하고 있는데 3년간 예정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여행이 아니라 자전거 생활이라고 한다.

암! 3개월도 생활이라고 하고 싶은데 3년이라면 당연지사! 사실은 그는 자전거 유랑자이다.

지금까지 주행거리는 43,000km. 잔차 무게는 총 80kg. 그러니까 나의 2배이다.

유료캠핑장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노숙을 한다.

유럽여행을 마치면 어디로 갈지 자신도 모른단다.

그는 鐵人인지, 철이 든 사람인지, 철이 안든 사람인지, 아니면 哲人인지,

아무튼 그는 철인이다.

 

 

 

자신의 스폰서를 보였 주겠다고 하면서 핸들바백을 뒤진다.

그러면 그렇지 스폰서가 있으니까 3년 동안이나 여행을 할 수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꺼낸 것은 하모니카 3개였다.

나는 스폰서라는 것이 여수나 달래주는 것이려니 했는데 그것을 가지고 거리의 악사노릇을 하여서 여비에 보탠단다.

 

 

 

 

언젠가 루마니아에 자전거여행을 오란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불친절하고 얼굴 표정이 굳은 상인데 루마니아는 그렇지 않다고 선전한다.

루마니아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서 자전거여행을 하면 아무나 붙들고 자고 가라, 먹고 가라고 권유한단다.

 

 

 

 

정말 무지막지한 자전거  여행자다.

그는 루마니아인들은 7개의 차크라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알아듣지를 못했다.

아마도 그런 명상법으로 인하여 루마니아 사람들은 마음이 넉넉하다는 말인 것 같다.

 

 

 

 

그가 준 루마니아 관광 브로슈어에는 매력적인 풍경은 보이지 않았다.

 

 

 

 

루마니아 하면 공산당시절의 독재자 차우세스쿠가 생각난다.

그는 결국 군중들에게 총알 세례를 맞았지만

그런 독재자를 군림케한 국민이니까 현명한 국민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 북쪽에 김일성 왕조를 허용하고 있는 한반도의 민족은 세계인들은 어떻게 보는 것일까?

 

 

 

 

이거는  여행용 자전거가 아니라

차라리 이삿짐 센터 자전거다.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만났던 캐나다인 캔의 자전거

그는 세계일주를 하고 있었는데 자전거 무게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출발할 때 무게가 90kg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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