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일) 비, 흐림
새벽에 또 비가 내린다.
시간을 아끼는 사람이 시간이 많은가.
시간을 펑펑 쓰는 사람이 시간이 더 많은가.
시간을 펑펑 쓰는 사람이 시간이 더 많다.
삶은 이와 같이 비논리적이다.
논리에 속지마라, 삶은 역설적이니.
에크베르그 캠핑장
뭉크미술관
여기는 에드바르트 뭉크(1863년~1944년)의 후기작품(1904~1944)이 전시되어 있고
그의 전기작품(1882~1903)은 국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
뭉크의 작품 '절규'가 두번이나 도난당한 뒤 이렇게 엄격한 검색이 실시되고 있다.
매우 세찬 소나기가 쏟아졌다.
바깥으로 나가지 못한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국립미술관
소나기가 곧 그쳤으므로 국립미술관으로 갔는데
관람객이 너무 많아서 입장을 통제하는 바람에 긴 줄을 서야했다.
죽은 뭉크가 오슬로 관광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오슬로의 보물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The day after
세계의 전 미술관에서 뭉크의 작품을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그의 전 작품이 여기 오슬로에 오롯이 보관되어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이 거의 팔리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사실, 오슬로에서 그의 첫 전시가 열렸을 때는 물의를 일으켜서 전시를 중단해야 했다.
또, 한 화가의 거의 모든 작품이 한 도시에 이렇게 고스란히 전시되어 있는 경우도 다른 예가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없지 싶다.
다리위의 소녀들
어떤 미술관은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으면 사진촬영이 허용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무조건 금지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아마도 금지하는 이유는 붐비는 미술관인 경우는 사진촬영이 허용되면 다른 관람객들에게 방해가 되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세번째 사진을 슬쩍 찍다가 들켜서 어떤 여직원에게 제지를 당하고 말았다. "No picture here!"
그때 마침 일본단체여행객들도 나를 쳐다보았다. 일본인들은 이런 파렴치한 일은 좀처럼 하지 않는 민족이다.
이런 난국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나! 여기 관람인들은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다. 착한 사람들이다. 나만 빼고.
나는 순간적으로 슬쩍 미소를 지으면서 그 여직원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알고 있어요!"
요렇게 뻔뻔해야 주위의 쳐다보는 사람도, 나도, 그리고 그 관리직원도 모두 민망하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 저 노랑 아시안이 여직원 귀에 뭐라고 속삭였을까?
나처럼 파렴치한 짓을 해서 곤란을 겪지 맙시다!
여기서도 소나기 때문에 잠시 서성이고 있어야 했다.
뭉크의 작품
아래의 사진은 인터넷을 통해서 복사한 것이다.
뭉크의 회화는 주관주의 또는 표현주의로 분류된다.
표현주의는 넓은 의미로는 인상파에 대한 반동으로 생겨난 개념을 이른다.
인상주의를 사물이 작가에게 주는 인상을 표현한다고 한다면, 표현주의는 반대로 사물의 그림을 통하여 작가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감정은 작가의 감정이므로 그러한 표현주의를 주관주의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뭉크는 5살 때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14살이던 바로 위의 누나를 잃었다. 그리고 27살 때는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의 삶은 무척 힘들고, 불안하고, 고독하고, 항상 죽음의 공포가 따라 다녔다고 한다. 그는 후에 정신병원에도 두번 입원하기도 했다.
뭉크의 그림은 그의 그러한 정서를 그림에다 쏟아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뭉크의 그림을 감상할 때는 그가 나타내고자 하는 감정에 나의 감정을 조율하여 공명을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뭉크의 그림은 근래애 들어서 젊은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현대의 젊은이들은 삶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절규
이 그림은 뭉크미술관에도 있고 국립미술관에도 있다.
소리
질투
가난
다리위의 소녀들1
다리위의 소녀들2
당나귀들
병든 아이
병실의 죽음
분열
생명의 춤
마돈나
이 그림도 함부르크미술관, 오슬로국립미술관, 뭉크미술관에 있다.
다시 온 오슬로 항구
오페라 하우스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반이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벌써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서 세수를 하고, WC에서 화장지로 발을 닦고 나왔다.
공연장에는 6시 15분부터 입장을 하였고 곧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1시간 40분 공연 동안 나는 몇 번이나 졸고 말았다.
여기서도 공연의 막이 내리자 박수가 푸짐하다. 최선을 다한 출연진의 노고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박수이리라.
다시 바지를 갈아입고 나와보니 혹시 사라져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했던 깜장야크가 나를 반긴다.
시간은 8시가 훨씬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밖은 아직 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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