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예이랑게르에서 헬레쉴트2(Geirnager to Hellesylt)

박희욱 2013. 9. 12. 05:21

 

 

 

이른 아침이라 승객은 5명 뿐이고 춥기까지 해서 갑판에는 나 홀로이다.

 

 

 

 

 

 

 

 

 

 

 

 

 

 

 

 

 

 

 

 

무지게

사람들은 꿈을 좋아하나보다.

꿈을 먹고 산다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는 아무런 꿈이 없다.

꿈은 무지게 같은 욕망의 일종이다.

 

지금 캐럴 키드의  'When I dream of you.'가 흐른다.

내가 꿈꿀 때가 있다면 그 꿈은 죽음이며

그 죽음이 나에게 있어서는 곧 모크샤이다.

 

 

 

 

하늘 높이 나는 갈매기를 볼 때면

닐 다이아몬드의 'Be'가 생각난다.

학창시절에 좋아했던 곡이지만

나중에 바리톤 고성현의 'Be'를 무척 좋아했다.

출근할 때 현관문고리를 잡고 이 곡이 끝나면 문을 닫고 나가곤 했다.

 

 

 

 

 

 

 

 

 

 

 

 

 

 

Be!, 존재하라!

그러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 사람들은 꿈속에서 산다.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아무리 원대한 희망이라 할지라도

그런것은 욕망의 다른 이름이며,

욕망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

 

이 노래는 육신의 삶을 박차고

하늘 높이 높이 날아올라서 영혼의 소리를 들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수면 위를 날면서

 

 

 

 

어린아이가 주는 문명의 찌꺼기 새우깡이나 얻어먹는 갈매기로서의 삶을 살지 말라.

 

 

 

 

그대는 얼마든지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무한의 존재이다.

Be!

존재하라! 소유하려 들지 말고.

 

'갈매기의 꿈'은 리처더 바크(1936년~)의 소설 'Jonathan Livingston Seagull'을 번역한 것이다. 만일 리처드 바크가 자신의 작품을 '갈매기의 꿈'으로 번역한 것을 안다면 대단히 실망할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거나 아니면 순전히 상업적 목적으로 그렇게 제목을 붙였기 때문이다.

한국의 어느 기자가 한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말씀해 줄 것을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고통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개인적 선택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신체의 일치를 믿는다면 고통이란 여름날 얼음처럼 녹아내릴 것입니다.

자유란 어느 길로 갈지 우리가 결정하고, 운명은 우리 손에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대신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나는 직장으로부의 명퇴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행복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다만 우리가 스스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8년 전에 했던 이 말은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며, 이것은 리처드 바크의 말과 그대로 상통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이며, 그럼으로써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만이 리처드 바크의 말에 공감할 수 있다.

나에게 있서서는 별도의 개체적인 '나'가 없다. 세상이 바로 '나'이며, '나'가 바로 세상이다.

거기에는 한 치의 유격도 없다.

세상은 있는 그대로 진실하다. 그럼으로써 나도 진실하다.

나는 진실하다. 그럼으로써 세상도 있는 그대로 진실하다.

 

 

다가오는 헬레쉴트 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