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아비스코(Abisko)

박희욱 2013. 9. 23. 16:59

 

 


                                           

 




7월 2일(화)

 

새벽에 일어나보니 비가 내린다. 쉽사리 그칠 비가 아니다. 드레스덴 다음 두 번째로 하루 종일 텐트에 같혀 있어야 할 것 같다.

결국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텐트에 같혀 있어야 했다.

 

텐트 플라이를 설치할 때 대각선으로 땡겨서 핀을 박아야 한다는 것을 이제사 비로소 깨달았다.

제도판에 제도지를 붙일 때는 항상 그렇게 했으면서도 그간 수백번의 텐트를 쳤슴에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서양의 회사들이 자신들의 상품에 설립연도를 자랑스레 표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경험이 쌓인 역사가 품질을 보증하는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세삼스럽게 지식이 강조되어서 지식의 시대라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어느새 그 말도 요즘은 사라진 듯하다.

그러나 경험이 배제된 지식은 위험해서 자칫하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될 수 있다. 지식은 생각일 뿐일 수 있다는 말이다. 노하우라는 것은 지식이라기 보다는 경험에서 오늘 것이 아닐까 한다. 양보한다면 경험에 바탕한 지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무튼 나는 지식보다는 경험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시장바닥에서 국수를 말아서 팔아도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고 종종 말하곤 한다. 남으로부터 빌린 자신의 지식만 믿고 일을 벌이다가는 실패하기 쉽상이다.

 

 

아비스코

 

 

 

 

 

 

아비스코 캠핑장

좁은 캠핑장에는 텐트는가 겨우 7~8동 밖에 되지 않았다.

 

 

 

 

하루종일 이런 날씨였다.

 

빗방울은 그칠 줄 모르고 도리어 더 굵어져서 끊임없이 텐트막을 두드린다. 무척 염려했던 노르웨이 지역도 무사통과하였는데 예기치 않게 여기 스웨덴의 아비스코에서 드디어 하룻 동안 발목이 잡히나 보다. 지금은 오후 1시 10분. 꼼짝없이 텐트안에 갇혀 지내야 한다.

텐트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잠자는 것과 음악을 듣는것이 전부다. 나는 지금 이어폰으로 타이타닉의 오리지널 사운드를 듣고 있다. 대단히 음울하면서도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이다.

 

나는 누구인가?

텐트안에 앉아 있는 이 몸이 나인가?

아니다.

텐트안에 있는 모든 것, 텐트, 바닥메트, 침낭 등,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감히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도 영화관에 몇 번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단체관람하는 중학교 형들 사이에 뭍혀서 눈치를 보면서 살며시 들어간 것이 전부이다. 그렇게 본 영화 중에는 '왕중왕', '십계', '벤허', '롱쉽(Long Ship)' 등이 있었는데, 그때는 조금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간이 콩알만해지면서 겁을 집어먹어면서 보곤 했다.

 

그 중에서 '롱쉽'의 내용은 이렇다. 한 사나이가 황금종을 찾아서 엄청난 역경을 헤치고 나아가 어떤 섬에 도달하였으나 그 종의 조그만 크기에 몹시 실망하고 만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종은 종을 치는 추에 불과하고, 정작은 그 종을 둘러싸고 있는 종탑이 그가 찾던 황금종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텐트안에 앉아 있는 그 몸과 마음이 나가 아니다.

그것이 주시하고 있는 우주 전체가 나이다.

별도의 개체적인 나가 있다고 생각하는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 우주전체가 바로 無我이다.

그러므로 무아가 그대이며, 그것이 참나이다.

이것은 침묵의  순간에만 알 수 있는 것이며, 그러므로 이것은 침묵의 소리이다.

 

노르웨이 해안에서 아껴두었던 궂은 비가 어제 오후부터 줄기차게 내린다. 타이타닉의 애절한 선율은 계속되고, 비는 화장실에 갈 틈도 주지 않고 내린다. 오줌보를 비우지 않고 끼니를 떼우자니 그렇고, 비좁은 텐트안에 꼼짝없이 누워 있자니 배고픈 줄도 모르겠다. 비가 조금 잦아든 틈을 타서 화장실에 가려고 나와 보니 몇몇 캠퍼는 텐트를 걷어서 떠나고 4동만 남았다. 아무래도 쿵스레덴 트레킹은 나와 인연이 없나보다. 내일 아침에 여기 아비스코를 떠나야겠다.

 

 

 

구름안개가 끼어서 아비스코국립공원의 아무 모습도 볼 수 없었다.

 

 

 

 

캠핑장에서 본 모습

 

 

 

 

 

 

 

 

 

 

이런 우중에도 쿵스레덴(왕의 길) 트레킹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스톡홀름에서 온 사람들인데 6일간 120km를 주파할 계획이라고 한다.

중간의 산장에 얼마나 시설이 잘 되어있는지는 모르나 나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트레커들

호스텔 리셉션에서 관광안내도  하고 캠핑장 예매도 한다.

리셉션의 여직원도 열차에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는 것에 분개(stupid!)를 한다.

 

여기서 북유럽을 3주간 여행한다는 한국 아가씨 3명이 있었다.

 

여기서 스톡홀름에 산다는 40세의 어떤 남자(미국 시카고에서 2년 거주한 경험이 있다)를 만났다.

그는 증권으로 돈을 벌어서 먹고 살만큼은 가지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직업이 없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일을 안하고 놀면 뭐할 거냐고 한단다.

이것은 서양인도 예외가 아닌 세계인들의 공통된 생각인 모양이다.

그는 스톡홀름에서 사는 것은 스트레스가 많다고 해서 나는 조금 놀랐다.

스톡홀름은 전세계가 부러워하는 복지국가의 수도인데 말이다.

왜 스트레스가 많은지 물었더니, 'too copetative!'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더욱 그렇다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한국이 치열한 경쟁사회라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문명의 발전에 있어서 서양과 동양의 차이는 일찍부터 경쟁이 허용된 사회와 경쟁이 제한된 사회의 차이와 다름없다.

그것은 뒤늦게 경쟁의 제한이 해제된 한국과 수천 가지의 카스트제도에 의하여 여전히 경쟁이 제한된 인도와 같은 경우이다.

몇몇 인도의 한국교민의 말에 따르면 인도인들은 머리가 무척 좋다고 한다.

 

어쩌면 국가의 복지제도가 개인의 행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망상일지도 모른다.

행복은 결국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까.

그리고 복지라는 것이 별다른 것이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뺏은 세금을 다시 나눠서 돌려주는 것이다.

복지국가는 인구밀도 16명의 나라에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인구밀도 504명의 한국에는 맞지 않는 이상국가일 뿐이지 않을까 한다.

 

 

 

 

우중에도 불구하고 장비를 단단히 하고 출발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매우 멋진 호스텔(Skr 280)이었지만 유혹을 뿌리치고 캠핑장(Skr 110)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떤 커플이 크다란 배낭을 갖고 있어서 무게를 물어보았드니 남자는 25kg, 여자는 20kg이라고 했다.

나로서는 불가능한 무게인데, 무게로 보아서는 가파른 트레일은 아닌 모양이다.

 

 

 

7월 3일(수) 비, 흐림

 

어제는 오후 6시가 되기도 전에 잠을 잤다. 여기는 백야지역이니까 한밤중이라도 비가 그치면 쿵스레덴 입구의 맛이라도 볼려고 했는데 지금 시각 12시 30분인데 비는 그칠 줄을 모른다. 쿵스레덴(왕의 길)은 내가 왕이 아니라고 나를 거부하는가. 집에서 마누라가 여왕노릇을 하는 거를 보면 나는 왕이 아닌가. ㅋ

새벽 3시. 비는 그친 듯한데 하늘을 쳐다보니 그렇게 비를 질질 뿌리고도 무엇이 불만인지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여차하면 다시 비를 뿌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아무튼 토요일까지 비가 온다고 했으니 오늘은 아비스코를 탈출해야겠다.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보니 비는 그쳐서 일단 캠핑장을 떠나서 리셉션으로 가기로 하였다.

 

리셉션에서 버스시간을 기다리기로 하고 일단 캠핑장을 떠나기로 했다.

비는 그쳤으나 바람이 좀 강하게 분다.

 

 

 

 

쿵스레덴 입구

버스시간이 2시간 정도가 남았기 때문에 패니어를 리셉션에 떼어놓고 쿵스레덴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자전거가 들어갈 길이 아니라서 곧 돌아나오고 말았다.

 

 

 

 

 

 

 

 

왼편의 굴다리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틀면 쿵스레덴 입구가 나오고,

왼쪽으로 틀면 열차역이 나온다.

 

 

 

 

아비스코 무인역

바로 앞의 도로변에서 버스를 타고 토레로 향하였다.

 

 

 

 

투어리스트 스테이션 겸 호스텔

 

 

 

 

아비스코국립공원 관리소

 

 

 

 

요즘 시대에도 그림엽서를 쓰는 사람있다니 반갑다.

 

 

 

 

 

 

 

 

 

투어리스트 스테이션으로 들어서는 트레커들

서양인들 커플을 보면 남자나 여자나 배낭의 크기가 별로 다름이 없다.

중국인들을 보면 모든 짐을 남자가 진다.

여자는 뒤에서 슬슬 남자를 몰고 다니면 된다.

진작 젠틀맨은 중국인 남자들이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