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못 가서 줄리 가족도 하차하고 나니 마치 나의 전세버스 같다.
중간에서 이번에는 운전사가 교체되었다.
운전사는 토레에서 오후 10시 05분에 하파란다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토레 버스정류소
버스는 오후 9시 25분에 여기 토레에 나를 내려주고서 루레오로 달려갔다.
정류소 전광판에는 오후 10시 05분에 스웨덴 국경도시 하파란다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되어 있어서 속으로 옳거니 싶었다. 배가 고파서 과자를 꺼내 먹어면서 여유있게 기다렸다. 다만 오후 11시 30분 경에 늦은 시각에 하파란다에 도착하여 캠핑장이나 저렴한 숙소를 찾을 수 있을 지가 문제였으나 그것은 거기 가서 부딫혀 볼 일이고 오늘 내로 하파란다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 기분좋았다.
정확히 오후 10시 05분에 하파란다행 버스가 도착하였다.
나는 의례적으로 자전거를 실어도 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운전사가 아닌 차장인지 아니면 버스회사 직원인지 알 수 없는 자가 이 버스는 자전거를 실을 수 있도록 셋팅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전거를 실을 수 없다는 거다.
이럴 수가! 인건비가 비싼 유럽에서는 차장이 없다. 운전사가 요금을 받고, 짐을 챙겨주고 모든 것을 다 한다. 우리나라에도 지금은 그렇게 되었다. 버스는 단 한 사람의 승객도 없는 텅텅 빈 버스였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Please!"
그러나 그는 냉정히 거절하면서 얄밉게도 하파란다까지 자전거로 가란다.
비록 10시가 넘었지만 아직까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정도로 밝기는 하다.
그렇지만 잠도 자지 않고 거기까지 자전거를 타란 말인가!
그는 황야에 홀로 남은 나에게 불콩을 먹이고는 버스의 엉덩이에 박차를 가하고는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황야로 힘차게 달려가고 말았다.
아무리 규정이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도 보지 않는 야밤에 텅빈 버스에 자전거 한 대 실으면 어떠랴!
마치 유태인을 말살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에 군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총을 난사하는 나찌스 친위대 같은 놈이다.
그런 놈한테 불쌍한 표정으로 "Plesae!"라고 하면서 애걸한 나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승차를 거절당한 지금 이 순간에 떠나간 그놈을 잡고 시비를 걸 수는 없다. 자구책을 세워야 한다.
아직까지 하늘은 훤하지만 10시가 넘은 시각이라 시내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 거리지 않고 모든 건물은 문을 닫은 상태라 싸고 비싸고 간에 숙소를 찾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다행히 토레에 도착하기 직전에 보아둔 'Tore Camping' 표지판이 기억났다.
자전거에 패니어를 부착하고 캠핑장을 찾아 나섰다. 캠핑장을 찾지 못한다면?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무단으로 캠핑할만한 공간이 있나 싶어서 사위를 살피면서 달리는데 그럴만한 곳이 보이기는 하는데 물을 얻는 것이 문제이다.
다행히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서 개를 끌고 오는 사람이 있어서 캠핑장을 물었더니 아마도 E4 하이웨이를 따라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한다.
얼마간 그 하이웨이를 따라서 달리니 캠핑장 표지판이 나타났다. 시각이 늦어서 좀 그렇지만 이제 문제는 없다.
앞에서 주차장 같기도 하고 언듯 보면 캠핑장 같기도 하는 공간이 있고, 거기서 몇 사람들이 서성이는 것이 보인다.
캠핑장이 여기서 얼마나 더 가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되지만 거기까지 찾아갈 필요없이 여기서 텐트를 치는게 어떠냐고 했다.
일단 반갑다. 여기나 캠핑장이나 같은데 차이점은 샤워를 하지 못한다는 것 뿐이고 다른 볼 일은 화장실에서 하면 된다.
니클라스(nicklas.burman@edu.lycksele.se)와 토마스(tomas.j.eriksson@ahlsell.se)
이들은 스웨덴인들로 가족과 함께 캠핑카로 여행중인데 아마도 캠핑료를 절약하기 위해서 여기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서 밤을 지새는 것 같다.
이들은 의자를 내놓고 파이 한 조각과 커피를 권했는데 사양할 내가 아니다.
시각이 늦었고 모기떼가 무차별 덤벼들고 있어서 빨리 텐트를 치고 싶었으나 그들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서 잠시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각이 오후 11시 8분인데도 이렇게 밝다.
니클라스가 아이패드로 나의 블로그를 보고 있다.
나는 좀 피곤했으나 숨기고 싶었던 표정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니클라스는 날씬 하면서도 몸이 단단한 것이 스포츠맨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안나푸르나 토롱라패스를 자전거로 오른 모습을 보여주자 입을 쩍 벌리면서 너 미쳤구나라고 했다.
그도 토롱라서킷을 트레킹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거기는 트레킹 코스이지 엠티비 코스는 아니지.
사실 안나푸르나서킷을 자전거로 완주하는 사람은 약간의 또라이 기질이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모기 때문에 더 이상 앉아 있을 수 없어서 헤어져서 텐트를 치는데 그 놈들의 극성이 알래스카 모기떼를 방불케 한다.
이마에 한 방 찔렸는데 금방 부어오르고, 주로 발목을 공격한다. 이놈들이 족발을 좋아하나 보다.
모자를 쓰고 버프를 둘러써서 텐트를 쳤다.
텐트를 쳐놓고 들어가 앉으니 이놈들이 먼저 들어와서 오늘밤은 횡제했다고 좋아서 난리다.
내가 그 꼴을 보고 있을 수 없지! 수건으로 한 참 이리저리 내리쳐서 몰살시켰다.
화장실에서 양치질하고, 물세수 하고, 발도 씻고 나서 잠을 잤다.
좀 불편해도 캠핑료가 굳었다.
7월 4일(목) 맑음
새벽에 일어나니 암모기 한 년이 내 입술을 얼마나 열애를 했는지 제법 퉁퉁 부어 있다.
새까만 연미복을 입은 놈들이었으니까 호모인 숫모기였나? 아니지, 피를 빠는 모든 모기는 암모기이지.
어제 그놈의 차장을 생각하니 아침까지 열받는다. 저녁 10시가 넘은 야밤에, 아니 백야에 자전거를 타고 70km나 떨어진 하파란다까지 가라고 한 그 놈이 얄밉기 짝이 없다. 룰레오-토레-하파란다-토르니오 구간은 유레일패스 소지자는 무료승차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그 놈이 나를 거부한 것인가. 승객도 없고 하니 자전거운임이라도 내라고 하면 응할 용의가 있는데. ㅋ
그 자식은 떠나면서 미저러블한 표정으로 선처를 구하는 나를 보고 뭐라고 궁시렁거렸을까.
'규정을 모르는 아시안들은 저래서 안돼! 일본인들은 동양인이지만 서양인과 다름없고. 싱가포르를 봐! 엄격한 법집행을 하니까 우리를 따라오잖아!'
'그래 임마! 잘못된 규정을 붙들고 잘먹고 잘살아라!'
'그래! 안그래도 너보다는 잘먹고 잘살고 있어!'
'돌대가리야! 죽을 때까지 차장 밥그릇이나마 잘 챙겨라, 임마!'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나 외에 오트바이족 하나가 텐트를 쳐놓았다.
물세수를 하고 텐트를 걷는데 이미 대낮같이 밝은데 또 다시 모기떼가 가미가제식 공습을 한다.
어제 저녁만찬을 즐기고 야식까지 먹은 다음에 나더러 아침밥도 내놓아라 한다.
더우기 기분 나쁜 것이 대머리가 되려고 잡초가 듬성듬성한 나의 정수리에 식탁을 차리려 한다.
안되겠다 싶어서 두번이나 자리를 옮겨서 짐을 싸고 정리하는데 그래도 따라온다.
게다가 벌 한 놈까지 나의 진노랑 방풍자켓을 꽃으로 여기고 달겨든다.
그래도 기분은 괜찮다.
공짜 잠을 잔데다가 평지의 이 길을 슬슬 페달링질만 하면 하파란다가 다가올 것이고, 거기서 강만 건너면 핀란드로 넘어간다.
오전 7시 40분 출발.
광활한 숲을 뚫어서 만든 도로라 별다는 풍광은 없었는데, 아비스코로 넘어가는 길에 만난 자전거여행자는 이 도로가 아름답다고 했다.
아마도 그때 그는 자신의 마음이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도로 경관은 워낙 주관적인 것이라...
도로도 평탄하고 날씨도 좋아서 기분 나쁜 라이딩은 아니었다.
이 강이 좌측의 스웨덴과 우측의 핀란드를 가르는 국경이다.
정오 12시 30분에 하파란다에 도착하여 햄버거(Skr 83)로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30분에 다시 토르니오로 출발하였다.
뒤돌아본 스웨덴의 하파란다
앞쪽의 핀란드 토르니오
토르니오에 들어서니 차선이 4차선으로 변하고, 상하행선이 넓게 이격되어 있고, 노견도 깨끗하고 넓이가 2미터가 넘는다.
굿이다! 핀란드인은 배포가 큰가 보다.
그렇게 기분좋게 달리고 있는데 케미를 5~6km 앞두고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세운다.
돌아보니 2명의 젊은 남녀 경찰이다. 이렇게 일하라고 하면 월급 안받고 일 할 수 있겠다.
고속도로를 슬슬 드라이브 하다가 심심하면 둘이서 아무도 없는 오솔길을 순찰하는 척하면서...
"신분증!"
여부가 있나, 신분이라면 확실하지!
그들은 나의 신분을 기록한 다음에 여기는 Motor Way이니 자전거 길이 아니란다.
'노견이 넓어서 자전거 타라고 해놓아는 줄 알았다. 미안!"
그들은 바로 뒤의 케미로 연결되어 있는 도로를 알으켜 주고 떠났다.
캐미의 캠핑장에서 본 앞바다
오후 3시 20분에 케미에 도착하였다.
이웃 텐트의 룰레오에 산다는 사람은 아비스코는 4월이 좋다고 한다.
더 이상 불필오한 로포텐 지도를 주면서 거기에 가보았느냐고 물어보니 가보지 않았는데
자기 사촌이 2주전에 거기에 다녀와서 대단히 아름답다고 하더란다.
그렇게도 멋진 곳을 지척에 두고도 가보지 않았다니!
등잔밑이 어둡다고 했다.
세상에는 바로 발밑에조차도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멀리 있는 화장실에 코를 대고 벌름거리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코를 돌려라!
7월 05일(금) 맑음
케미는 핀란드의 북부지방이라 조금 촌스런 느낌이 들고 사람들도 미소하나마 사미족의 혈통이 섞인 것 같다.
캠핑장도 조금 촌스럽지만 샤워하는데 시간제한이 없는 것이 좋다.
케미에서 쿠오피오로 가는 열차는 오후 2시 25분에 출발한다. 여기 케미에는 아무것도 구경할 것이 없으므로 그 시각까지 자유다.
오늘은 뜻하지 않게 어번 여행의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즐긴다.
처음으로 텐트의 앞뒤 출입구를 활짝 열어놓고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다.
'지상 최대의 합창'과 고성현의 '아무도 모르라고'앨범이다.
내 마음이 푸른 하늘에 한없이 피어오르는 흰구름 마냥 온 우주 끝까지 닿는 기분이다.
그리하여 내 자신이 온 우주를 한량없이 감싸 버리는 것 같다.
그 흰구름처럼 나를 한없이 밀어올려서 한계없이 만드는 노래가 있으니 그것은 고성현의 'Be'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모든 고통은
사회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시스템의 틈세에
나 자신을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로서 끼워넣어 맞물려 돌아가게 하려 했던 것에 연유했다.
그러나 알고보니 나는 한계가 없는 우주전체였다.
말하자면 나라고 여겼던 종이 나가 아니라 종을 싸고 있는 종각자체가 나였던 것이다.
나는 몸과 마음이 아니다
몸과 마음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포장지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그 나는 나의 몸과 마음 밖에 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캠핑장에서의 샤워
캠핑장에서 제일 불편을 겪은 것이 샤워다. 대개 10 크로네에 4분의 여유를 준다. 3분인 경우도 있었는데 3분에 샤워를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실은 10 크로네 동전을 두 번 넣어라는 말과 같다. 4분에 샤워를 마치는 것도 버겁다. 샤워의 수전을 잠그도 시간은 간다. 그래서 나는 미리 샤워타월에 비누를 칠해 놓고서 마치 전투하듯이 샤워를 한다. 그러면 겨우 4분에 샤워를 마칠 수 있다.
처음에는 째째하게 무얼 그렇게 하느냐고 생각했는데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샤워를 하지 않는 사람, 샤워를 1번 하는 사람, 샤워를 2번 이상하는 사람이 모두 같은 금액을 지불하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짜라면 무엇이든지 아끼려는 마음이 없는 것은 서양인이나 동양인이나 마찬가지다. 소변을 보고 나서 세면대에 손을 씻고 물기를 닦아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티슈를 마구 뽑아내서 낭비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샤워도 별도로 비용을 받지 않는다면 물을 엄청나게 낭비할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 캠핑장에 시간제한이 없도록 한 것이 고마워서 자발적으로 물을 아껴서 사용했다.
케미 - 쿠오피오
쿠오피오행 열차는 오후 2시 25분에 출발하였다.
열차의 선로가 구식이라서 진동과 소음이 커서 쾌적성이 떨어졌다.
숲속을 달리는 열차안에서는 아무런 풍경도 볼 수 없었다.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와 앵크리지 사이의 철로 경관과 비슷하다.
핀란드는 호수의 나라이다.
그러나 숲에 둘러 쌓여서 간혹 호수가 나타나기는 하나 산이 없는 호수가 무슨 멋이 있겠는가.
철로변은 주로 자작나무이고 얼마간의 홍송도 보인다.
나무들은 둥치가 굵지 않아서 통나무로나 이용할까 제재목으로는 이용할 수 없을 것 같다.
쿠오피오에 가까워져서야 초지와 농경지가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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