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rthern Europe

쿠오피오에서 사본린나(Kuopio to Savonlinna)

박희욱 2013. 10. 3. 19:03

 

 

                                         

 

 



오후 2시 15분에 케미를 출발한 열차는 북유럽 열차답지 않게 진동와 소음은 일으키면서 밋밋한 숲속의 풍경을 뚫고  달렸다. 그러나 멋진 음악과 함께 하는 여행은 전혀 지겹지가 않았다. 열차가 쿠오피오에 다가가자 은근히 긴장이 된다. 도착시각이 늦은 데다가 확실한 숙소도 정하지 않았고, 더구나 위치파악도 해놓은 것이 없다. 숙박비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쿠오피오에 도착하여 패니어를 자전거에 부착하여 숙소를 찾아나선 시각은 이미 오후 8시를 넘어섰다. 편리하게도 철도역사의 2층에 호스텔이 있었으나 출입구가 분명하지 않았고, 그런 출입구조차도 문이 잠겨 있었다. 론플랜의 정보에 의지하여 역사에 가까운 게스트항스를 찾았는데 문이 잠겨 있고 연락처 전화번호만 적혀 있었다. 나는 통신료가 두려워서 휴대폰 로밍을 하지 않아서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 우두커니 서 있자니 투숙객 한 사람이 온다. 사정을 이야기 했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어서 통화를 해보니 빈방이 없단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주말인 금요일이다.

 

지금 이 시각에 지도도 없이 캠핑장을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론플랜에 있는 다른 호스텔의 위치를 스마트폰으로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친절하게도 검색을 해서 지도를 보여준다. 눈이 나쁜 나는 조그마한 휴대폰의 지도를 파악해서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대충 호스텔의 방향과 거리 2.7km를 기억하고 출발하였다. 조금 가다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주머니를 만나서 길을 물었더니 자기를 따라오란다. 굿이다! 대개의 경우 현지인들도 호스텔의 위치를 잘 모른다. 보통 사람들은 호스텔을 찾아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주머니가 아니었드라면 이미 사람의 통행 끊어지다싶은 시각이라 찾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도 역시 문이 잠겨 있고 전화번호만  남겨 놓았다. 그러니까 주인은 퇴근시각이 지나면 재택근무를 하는 것이다. 다행이 호스텔을 나오는 투숙객이 있어서 그 틈을 이용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있어서 방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주인에게 전화로 물어봐야 한다는 거다. 나는 대뜸 만일 방이 없으면 내가 오늘밤을 여기서 지낼 수 있도록 당신이 방을 만들어야 한다고 명령을 했다. 완전 억지다! 좀 미저러블하게 보이는 자전거여행자가 아니라면 당장 걷어 차여서 쫓겨날 것이다. 그녀는 내 억지가 가련해 보여서 씩 웃으면서 주인에게 보고를 한다.

 

그 사이 나는 자전거를 뒷문으로 들여놓고 돌아와 보니 방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안심이다. 이 시각에 어디서 저렴한 방을 찾느라고 헤멘다는 말인가. 조금 여유를 찾은 나는 제일 싼 방을 달라고 했더니 싸고 자시고 간에 50유로 짜리 하나 밖에는 없다고 한다. 돔룸이  아니고서야 이 이하의 방은 어디로 가나 없을 것이다. 방은 욕실이 없는 매우 비좁은 싱글룸이다. 나에게는 더 이상 큰 방이 필요없다.

 

나는 여장을 풀고, 샤워를 한 다음에 식당에서 밥을 한 코펠 가득 지어서 먹는데 그 많든 밥이 쉽사리 뱃속으로 모조리 들어가 주었다. 반찬이라고 해봐야 젖갈과 고추절임, 그리고 미역국이 전부인데도.

식사를 마치자 시각은 벌써 저녁 11시가 가까워졌다.

 

 

7월 6일(토) 흐림

 

쿠오피오까지 내려오고 보니 마음이 더욱 편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입구 코펜하겐이 가까워졌다는 것, 이제는 낮은 기온으로 한기를 느끼는 일은 없다는 것, 비가 올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 물가가 조금 낮아서 숨통을 약간 트이게 되었다는 것, 등이 그 이유다.

어제 열차안에서 남은 날짜를 곱아보니 핀란드내에서 자전거를 탈 시간적 여유는 없을 것 같았다. 핀란드 동남부 해안가를 라이딩할 생삭이었으나 포기해야겠다. 사실 좋은 경치도 기대할 것이 없을 것 같아서 아쉬울 것은 없다.

 

핀란드는 숲과 호수가 국토의 80%를 차지 하는 평지의 나라다. 호수는 무려 18만개가 된다고 한다. 그런 호수를 경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쿠오피오에서 사본린나까지 보트여행을 하는 것이라 여기고 쿠오피오에서 배를 타기로 했다. 그러나 사전에 산도 없는 숲에 둘러싸인 호수면을 배를 타고 지나가봐야 별다른 경치를 즐길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하였고, 다만 10시간 반의 항해시간 동안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였다.

 

 

 

푸이요 호

오전 8시 20분 출발

뱃싹은 88유로, 자전거운임은 10유로

 

 

 

 

쿠오피오항

 

 

 

 

 

 

 

 

 

승객은 거의가 관광객들이다.

 

 

 

 

이 승객은 연극구경을 가는 중이다.

 

 

 

하늘은 구름이블을 빈틈없이 깔아놓은 듯하다.

 

 

 

 

물빛은 짙은 갈색이다.

평지에서 흘러들어온 물이라서 유기물이 전혀 산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물은 금수(강산)였다는 것이 옳은 말이다.

비록 때때로 홍수가 나고 가뭄이 닥쳐서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 이어폰에는 웨스트라이프의 'You raise me up!'이 나의 마음을 흠뻑 적시고 있다.

때때로 나로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노래이다.

웨스트라이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지만 아일랜드 그룹이라고 한다.

아일랜드의 노래는 나의 정서에 딱 맞아떨어진다.

역시 아일랜드인과 한국인의 정서가 유사하다는 말이 틀림없어 보인다.

 

 

 

 

 

 

젊은 한 때, 나는 사랑이란 서로의 내적 성장을 돕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정의한 적이 있었다.

무한히 성장하여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었던 욕망에서 그런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You raise me up, more than I can be!'

 

그러나 아무도 자신의 내적 성장을 도울 수는 없다.

단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하여 자신을 살펴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붓다는 스스로를 자신의 등불로 삼아라고 했을 것이다.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You raise me up, more than I can be!'는 아름답다.

그 You는 공이며, 무이며, 침묵이다.

 

 

 

 

 

 

 

어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만난 사나이는 나와 헤어질 때 자전거운전을 조심하라고 일러주었다.

으례히 자전거 타는 사람에게 하는 소리인가, 아니면 나의 어딘가 조급한 듯한 태도를 보아서 걱정이 되어서 한 소리인지도 모르겠다.

조심하여야겠다. 신호등이라할지라도 나의 목숨을 그것에 걸 수는 없는 일이다.

언제나 그러했 듯이 귀국의 날짜가 다가오면 더욱 몸조심을 하게 된다. 마치 제대말년과 같이.

 

 

 

 

 

이런 검은 숲 밖에는 볼 것이 거의 없었다.

 

 

 

 

쿠오피오에서 사본린나까지 11시간 동안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중간에서 여러번 승객이 타고 내렸다.

 

 

 

 

핀란드어의 발음은 상당히 거친 편이라서 조용한 시간을 즐기고 싶었던 희망은 조금 꺽이고 말았다.

점심과 맥주 1잔에 22유로!

 

 

 

 

쿠오피오에서 사본린나까지 호수가 바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고, 이와 같은 3개의 갑문을 통과하여야 한다.

 

 

 

 

 

 

 

 

 

 

 

 

 

 

 

 

 

 

Jurgen(52년생), 전자엔지니어, 독일 라이프찌히 거주

www.pisarz.de

핀란드 북부와 노르웨이 최북단(라플란트 지방)을 4주간 여행을 하고 헬싱키에서 페리로 독일로 돌아간단다.

 

 

 

Jurgen의 목공예 솜씨

 

 

부부 자전거여행자

부인은 64세라고 한다.

 

 

 

 

 

 

 

 

 올라빈린나(올라비 성)

사본린나에 도착 직전의 푸이요 호에서 본 올라비 성의 모습

내가 사본린나에 온 것은 사실상 이 성을 보기 위한 것이다.

 

 

 

 

 

 

 

 

 

 

 

 

 

 

 

 

사본린나 항

 

예상한 대로 쿠오피오 - 사본린나 여행은 경관이 별로 볼것이 없었고, 조용한 시간을 느긋이 즐기려고 했으나 사람들도 좀 시끄러웠고 갑판에 오르면 연통에서 나오는 엔진 소음으로 인하여 쾌적한 여행이 되지못하였다. 이 코스의 보트여행은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다.

 

푸이요 호는 오후 7시 30분 정시에 사본린나에 도착하였다. Jurgen 부부는 여기서 7km 떨어진 캠핑자으로 가고 나는 호스텔 부오린나(Vuorilinna)르 찾아 나섰다. Jurgen을 따라서 캠핑장에 가면 13유로에 숙박을 해결할 수 있지만, 유르겐도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3명이 함께 헤메는 꼴을 보고 싶지도 않고, 웬지 늦은 시각에 따라 다니는 것도 싫고, 내일 아침에 다시 7km를 되돌아 나오고 싶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 길을 물어서 찾아갔는데 그 사람은 호스텔을 호텔로 알아 듣고 반대편으로 가르켜 준 것이었다. 되돌아 와서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물어서 찾아갔는데 또 못 찾고 되돌아 왔다. 사실 길을 물어서 정확히 찾아가기도  어렵지만 정확히 알아듣고 출발하지 못하는 악습이 내게  있기도 하다. 찾아 놓고 보니 가까운 곳에 있었다.

 

호스텔 출입구에 당도하고 보니 리셉션은  스파 카지노에 있다고 쒸어져 있다. 리셉션에 가서 돔룸의 베드를 달라고 했더니 조금 딱딱한 표정의 여직원은 한 참 동안이나 켬퓨트를 이리저리 쳐다본다. 지금 사본린나는 오페라 축제기간인데다가 오늘이 토요일이라 찾아오기 전부터 불안했는데 더욱 불안해졌다. 여기서 건물이 4개동이나 되는  쾌 큰 호텔겸 호스텔이다. 만약 풀이라면 늦은 이 시각에 유겐트가 찾아간 켐핑장으로 페달을 밟아야 한다.

 

다행히 방을 주겠단다. 요금은 40유로. 애매한 가격이다. 돔룸 치고는 너무 비싸고, 싱글룸 치고는 너무 저렴하다. 이러나 저러나 길도 모르는 캠핑장을 찾아가기가 싫어서 무조건 오케이 하고 보았다. 어떤 방일까 궁금했다. 건물에 들어서니 이렇게 큰 건물에 나이가 지긋한 노부부 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조도 호스텔로서는 조금 특이하였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그만 콘도처럼 방이 2개, 크다란 욕실과, 주방이 있었다. 그러니까 가족실의 형태이다.  알고 보니 이 건물은 학생들의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곳이라 한다. 결국 가족실 전체를 혼자서 40유로에 사용한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숙소에서 밤을 보낸 셈이다.

밥을 한 코펠 가득 해서 낙지젖갈, 고추절임, 고추장에 미역국으로 밥을 먹는데 술술 잘도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