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th America

출발하면서(On Leaving)

박희욱 2015. 1. 18. 11:51

며칠전 친구와 통화 중에 상대방이 느닷없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희욱이 니는 니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불행하다고 생각하나?"

그 친구의 의도를 모르겠지만, 이런 질문을 이전에는 받은 적도 없었고 또, 내가 다른 사람에게 질문한 적도 없었다.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내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행복하다, 불행하다라고 하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거다."

그랬더니 그 친구도 공감한다는 눈치였다.

 

오랫동안 호스피스 간호사로서 임종환자를 돌보았던 브로니 웨어는

임종전에 환자들이 후회하는 다섯가지를 아래와 같이 말했다고 한다.

 

1. 내 뜻대로 살아볼 걸.

2. 일 좀 적당히 하면서 살 걸.

3.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출하면서 살걸.

4. 오래된 친구들과 좀 가깝게 지낼 걸.

5. 좀 더 내 행복을 위해 도전해볼 걸.

 

1번에 관해서는 내가 매우 긍정적으로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내 뜻대로 산다는 것, 그것은 내 삶의 최대 화두였다.

젊은 시절부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어디에도 얶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욕구로 인하여

미래가 불안했고, 그 불안으로 인하여 많은 고통을 겪기도 했다.

 

1981년 3월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홀로 울먹인 것도

굶어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겠다고 마음을 다지면서였다.

그러한 나의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운이 좋아서였는지는 몰라도

나는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번 항에 대해서도 매우 긍정적이다.

오늘날과 같이 일이 분업화된 시대에는 즐겁게 일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자면, 목공이 나무를 베어서 조각을 하고, 본인이 직접 시장에 내다팔아서 돈들 버는데까지 일괄적으로 일을 하는

산업화시대 이전에는 일 자체로부터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일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일이면서, 스포츠, 레저, 휴식, 사교 등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일은 오직 돈을 벌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일은 피곤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일과는 별도로 스포츠, 레저, 휴식, 사교활동 등이 필요하고, 일하는 시기와 은퇴시기가 분리되어 있다.

 

나는 일하는 것을 무척 두려워하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그런 성향을 가진 것은 내가 조금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인 듯하다.

사실, 일을 적당히 해버린다면 일을 벌리는 것이 그렇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초등학교시절에는 어머니로부터 귀에 못이 밖히도록 게으러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어머니의 노파심 때문인지, 사실로 내가 게을러서 그랬는지는 나도 확언할 수는 없다.

아무튼 나는 일하는 것을 되도록이면 피할려고 한다.

 

내가 명퇴를 할 즈음에 친구와 논란을 벌린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을 했다.

또 아버님도 내가 명퇴를 한다고 하자 왜 일을 하지 않으려 하느냐고 다그치셨고,

나는 왜 일을 해야하느냐고 반박했다.

 

3번 항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봐야겠지만 대체로 긍정적으로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한다.

하고 싶은 말 모두 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최소한 나는 표리부동하고는 거리가 멀다.

 

돌이켜 보니 자랄 때는 무척 내향적이고도 소심한 성격이라 솔직한 감정표현이 어려웠던 것 같다.

게다가 대가족이었고 나의 응석을 받아줄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기를 펴고서 성장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로부터 암퇴다는 소리를 수없이 들어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3번 항은 내 스스로 판단하기는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어떤 친구는 나에게 립스비스를 할 줄 모는다고 했고, 나도 그의 말에 수긍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4번 항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나에게는 가깝게 지낼 오래된 친구가 없다. 

있다고 해도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는 그 사람이 '박희욱'이가 친구라고 선뜻 말할지도 의문스럽다.

초등학교 시절의 통신표에 나타난 나의 사교성은 '다'였고, 사회성도 '나' 아니면 '다'였는데

지금 내 모습을 보면 사회성도 '다'였을 것이다.

별로 쓸모가 없는 정직성, 준법성은 '가'였는데, 5학년, 6학년의 담임을 맡으셨던 김채생 선생님은 나의 성격을 정확히 보신 것 같다.

그리고 첨언하면 근면성은 '나'였다. 이런 것은 선생님이 조금 잘 봐 주신지 모르겠다. 내가 반장이었으니까.

 

누군들 친구와 가깝게 지내고 싶지 않겠는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누구나 혼자서는 외로움을 타는 동물이지 않을까 한다.

얼마전에 이종사촌 여동생에게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고 실토했더니

단도직입적으로 오빠는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말했는데, 나는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 동생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귀라고 조언을 했고, 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나의 타고난 성정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끄는 매력 또한 인위적으로 될 일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홀로였고, 아무도 내 곁에 없었던 듯하다.

 

일전에 인터넷신문에 '인간관계에 아등바등..당신만 늙어간다'는 기사가 실려서 내가 댓글을 단 적이 있다.

 

누구나 인간관계가 좋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해도 너무 피곤할 것 같다.
오히려, 타인은 나의 지옥이라고 한 사르트르의 말에 공감이 간다.
물욕 뿐만 아니라 人慾도 버려야 할 욕심인 것 같다.
나는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련다.

 

이렇게 댓글을 달았더니 450개의 추천과 7개의 비추를 받았다.

모두 295개의 댓글이 있었고, 나의 댓글은 3위의 추천을 받은 것이었는데

1,483개의 추천을 받은 1위와 818개의 추천을 받은 2위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위

 

이 댓글에 대한 답글 하나를 소개하면,

'사회에서의 어떠한 성공도 가정에서의 실패를 보상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작은 조직이자 가장 중요한 조직인 가정에 충실하시기 바랍니다.'

 

2위

모든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해 아등바등하며 자신을 속박하거나 옭아맬 필요는 없다.

불필요한 관계는 과감하게 정리하고 심플해지도록 노력하자.

 

5번 항에 대해서는 할말이 없다.

나폴레옹이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고 했드시, 나의 사전에는 행복이니 불행이니 하는 단어가 없어진지 오래다.

30수년전 나는 내일의 더 나은 행복을 바라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사실상 행복하겠다는 욕망을 버리고 말았다.

그때부터 불행이라는 말도 사라진 것과 다름없다.

나의 관찰로는 행복과 불행은 빛과 그림자 같아서 앞서거니 뒷서니 하면서 반드시 동행한다는 것이다.

알고보면 불행은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행은 행복이 낳은 것이고, 행복은 불행이 낳은 것이라고 말한다.

 

역효과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무엇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멀어져 가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잃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내가 관찰한 바로는 우리에게 소중한 것일수록 역효과의 법칙을 따르는 것 같다.

즉, 소중한 것일수록 추구하면 할수록 멀어져 가고, 쓸모 없는 것일수록 엄청난 노력해야만 얻어진다는 것이다.

 
군대시절에 야간 경계근무를 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주간에는 무엇을 자세히 보고자 한다면 그것에 시각의 촛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나 야간의 어두운 곳에서는 보고자 하는 물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주변에 촛점을 맞추는 것이 좀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생물시간에 공부한 명소시와 암소시에서의 차이점이다.

행복에 촛점을 맞추면 안된다, 행복도 역효과의 법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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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모래면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리우데자니루로 여행을 떠난다.

지난해 귀국할 즈음에는 다시는 1개월 반 이상의 여행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이제는 음악이나 듣고 그림이나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헛사가 되고 말았다.

7월 말에 귀국을 해서 1개월 가량 블로그 작업을 한 다음에 불과 2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남미여행계획에 몰두하였다.

대충 계획을 마무리하고, 5개의 항공권을 예매한 다음에 서바이블 스페인어를 조금 공부하였더니 어느새 출발일자가 다가왔다.

 

자잔거여행을 떠날 때는 언제나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렇게 여행을 많이 하여도 고생스런 여행에 대한 두려움은 변함이 없었다.

이번에는 자전거여행은 아니지만 10kg 내외의 무거운 배낭을 지고서

근 3개월에 걸쳐서 남미대륙을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다닐 생각을 하니 약간의 긴장감을 숨길 수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읊조려 본다.

 

그대는 반석 위에 서 있다

그대가 흔들리는 것은

반석이 흔들려서가 아니고

지진이 나서도 아니다

그대의 마음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대는 흔들리는 마음이 아니다

바로 흔들림 없는 반석이야 말로 그대이다

반석이 진정한 그대이며,

그 반석이 참나이다

참나는 영원불멸이다

 

나의 최고의 가치는 평온함이다.

내가 여행을 가지 않는다면 나는 평안히 집에 있을 수 있다.

나는 달마대사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평안히 집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평온함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마치 백지가 백지인 것은 그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인 것과 마찬가지다.

굳이 여행을 가는 이유를 변명하자면 미지의 세계에 대한 신비감일 것이다.

어린이처럼 순수한 신비감이 삶의 원동력의 하나이다.

신비감 없는 삶은 죽은 삶이며, 신비감이 사라질 때가 바로 죽어야 할 때이다.

 

3개월의 여행을 떠나자니 발걸음이 선듯 떨어지지 않는 것은 역시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할 가족 때문이다.

이쁠것도 없는 아내, 정말로 이쁘기만한 손녀 솔향이, 아들, 며느리, 그리고 딸 한솔이!

솔향이의 귀여운 모습은 여행 내내 나의 머리속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 쯤이면 '할아버지?'하고 말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여행을 하면서 서양인들의 묘지를 유심히 살펴본 적이 많다.

그들의 묘지에 가보면 거의 모든 비문에는 나는 누구누구를 사랑했노라고 새겨져 있는데,

사랑한 대상은 천편일율적이다시피 자신의 배우자이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다고 쒸어져 있다.

많은 비문을 보았지만 친구의 이름이 쒸어져 있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때는 사랑했다는 말을 굳이 남겨 놓아야 하나 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수긍이 간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마당에 달리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옛부터 회자정리라 했거늘, 언젠가는 가족들과는 물론이고

이 땅, 이 하늘과 이별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지 않은가.

그러니 잠시 동안의 별리에 마음 쓸 것이 무엇이겠는가.

내가 여행을 떠나지만, 인생 자체가 지구별에 온 여행이 아니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의 영광도 꿈속의 꿈인가 라고 했드시,

나의 여행도 여행속의 여행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은 대체로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문화탐방, 역사유적, 자연경관, 미술관 순회, 트레킹 등이 그 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명한 목적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이것 저것 잡탕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좀은 방랑적이라고나 할까, 아니면 여행을 위한 여행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번 여행에서 기대하는 주요 목적지는 브라질의 이과수폭포,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트레킹,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

페루 쿠스코의 잉카유적과 우아리스 산타크루즈 트레킹 등이다.

 

이번 여행은 자전거여행도 아니고, 캠핑도 하지 않고, 취사도 하지 않으므로 좀은 편한 여행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신에 10kg 내외의 배낭을 지고 다녀야 하는 고단함이 있겠지만 며칠간 지고 다니면 곧 적응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예전처럼 많이 보겠다고 서둘지도 않을 것이며,

돈을 아끼려고 무리하지도 않을 것이며,

한국에서의 일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것이며(별로 잊어야 할 것도 없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생각할 것이 없기 때문에,

나는 순간순간에 존재하는 그런 여행이 되도록 할 것이다.

그리하여 즐거운 여행은 아니더라도 평안한 여행이 되도록 하였으면 한다.

남미 항공권을 $2,042에 지를 때는 좀은 마른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지만

지금은 마음이 평온하다.

 

그러나 지구의 반대편에 있어도 보고싶은 예쁜 손녀 솔향이 생각은 지울 수 없겠지.

솔향아, 잘 다녀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