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그냥 산다는 것

박희욱 2015. 12. 11. 11:56

내가 그림을 배웠던 안세홍 선생님의 이야기다.

옛날 선생님 고향 동네에는 부모를 여의고 어린 동생과 함께 사는 소년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살기 어려웠던 시절이라 그 소년의 삶은 실로 참담했다.

평소에 안쓰러워 하던 선생님은 어느날 그 소년에게 물었다고 한다.

"니는 참, 어떻게 사노?"

그러자 그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 삽니더."

그 말을 들은 선생님은 마음이 아리면서도 가슴이 뭉클 했다고 한다.

 

예전에 사촌동생 결혼식장 입구에서 오래간만에 당숙모를 만났다.

당숙모는 나를 스치면서 물었다.

"니는 학교를 그만 두었다면서?"

아마도 왜 퇴직을 하였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그곳에서 길게 말할 겨를이 없었다.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멈칫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뭐,그러살 거 있습니까?"

좀 일찌기 남편을 먼저 천국으로 보낸 당숙모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여러 말보다 그 한 마디가 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한 것이었다.

 

언젠가 대학교수인 선배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거고."

나이가 환갑을 지나고 정년퇴임을 눈앞에 둔 분인데, 사는 것이 무척 답답하다는 투였다.

후배인 내가 선배 앞에서 감히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답했다.

"그냥 사는 것이지요, 뭐!"

 

그냥 그렇게 사는 것, 그러살 것 없이 사는 것, 마 사는 것.

모두 다 같은 말인데, 정말

그러살 것 없이, 그냥 그렇게, 마 살아도 좋은 것일까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선조들로 하여금 피눈물을 쏟게 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아래와 같은 절명시를 남겼다.

 

이슬처럼 떨어졌다가 이슬처럼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런가!

오사카의 영광도 꿈속의 꿈이로세!

 

도요토미가 아무리 미워도, 그의 절명시처럼 인생은 참으로 덧없는 꿈과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인생을 그냥 되는대로 막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삶은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지만, 그 삶은 배움의 삶이여야 한다고 믿는다.

배움이 없는 삶은 아무리 즐거운 삶이라 할지라도 죽음의 삶이다.

내가 어떤 형태로든 배움이 중단되는 때가 오면 그때가 바로 내가 죽어야 할 나이이지 달리 내가 죽어야 할 나이는 없다.

 

인간은 수십겹의 고치를 뒤집어써고 있는 애벌레와 같다.

배움이라는 것은 그 고치를 점차적으로 깨어나가서 종래에는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것이다.

자신이 써고 있는 고치속에서 아무리 재미있게 살아도 그것은 꿈틀대는 애벌레 같아서 바깥에서 보기에는 죽음의 삶이다.

 

그 배움이란 '마 사는 길'. '그러살 것 없이 사는 길', '그냥 사는 길'을 배우는 것이다.

그 길은 바로 새로이 배운 것을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금까지 배운 것울 모두 지워버리는 것이다.

배운 것 중에는 좋은 것도 있을 것이고, 나쁜 것도 있을 것이다.

나쁜 것(惡: badness)을 버리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정작 어려운 일은 좋은 것(善: goodness)을 버리는 일이다.

이를테면, 자유니, 사랑이니, 행복이니, 희망이니, 정의니, 평등이니, 인권이니,

심지어 윤리도덕이니 하는 모든 이원적인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모든 관념은 선과 악이라는 이원성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한 모든 관념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무념, 무심, 무아의 길로 들어설 수 없다.

 

그래야만 진정으로

마 살 수 있고,

그러살 것 없이 살 수 있고,

그냥 살 수 있게 된다.

 

세상 모든 것은 공허한 것이고,

그 공허한 텅빔이 진정한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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